67번 버스가 달려와서는 바람처럼 남자를 실어간다. 버스가 지나가고, 길은 이내 흐름 없이 고요하다. 창문가에 서 있던 여자는 생각 끝에 방에 불을 켜고 잘 말린 낙엽하나를 어둠 저편으로 날려보낸다. 사흘 동안 여자의 방에 놓여 있던 낙엽은 금방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검은 허공의 길들을 여기저기 들러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그것은 팔 초 정도 지속된다. 여자는 거기까지 세다가 자기도 모르게 셈을 멈춘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같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여자는 환한 방, 창가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 저어본다. 마치 누군가와 이별하듯이, 아니 초원의 여자처럼 누군가를 맞이하듯이. 버스는 다시 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침묵하는 하느님의 대리석같이 차가운 얼굴을 향해 터질 이 외침으로 인해, 이 말을 내뱉은 자는 가까운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우리의 친구가 된다. 잘려버린 핏줄에서 피가 쏟아져 나가듯 믿음이 우리를 떠날 때, 우리를 죽이는 것들에게 계속해서 애정 어린 말을 건네는 우리 자신이 된다.
어둠이 짙어져야만 별은 드러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의사가 실수로 결석에 의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잘못된 주사를 놓았다. 잠시 뒤 내 얼굴과 가즘은 토마토처럼 빨간 반점으로 덮이고 혈압은 급격히 떨어졌다. 의사는 알레르기 반응을 멈추기 위해 앰풀을 깨뜨렸고,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눈을 감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만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손길이 나를 온전히 보호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작아져 있었고, 몸과 영혼을 그 손에 맡겼다.
다소 묵직하고 주름진 그 손은 나의 피난처, 확신, 모든믿음이 되어주었다. 메뉴인과 오이스트라흐의 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손은 삶이라는 신성한 붉은 손이 검게 변하다가 이내 차갑게 굳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아름다움에는 부활의 힘이 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충분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천국에 들어서지 못하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오직 그 이유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그것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부여한다. 술라주의 그림 앞에서 나는 세탁실 빨랫줄에 널린 검은 침대 시트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림들은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무감각해진 채로 살아 엎드려 있는 거대한 짐승 같다. 하얗게 빛나는 빛이 짐승들의 옆구리를 비춘다. 그들의숨결은 무겁고 더디며 고요함에 젖어 있다. 불멸의 검은 풀을 되새김질하는 짐승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홍수보다 훨씬 더 위압적인, 술라주의 그림들이 내뿜는 질은 정적에 휩싸여 몽펠리에는 사라지고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