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판단 정지 상태에서, 대부분 술 취한 듯한 상태에서 목청 좋은 자들의 소리만을 크게 반주하는 자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그래서 두려움이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가장 높은 정신의 움직임을 다룬다는 문학에서까지 ‘목청 높은 자들과 그 소리만을 듣는 자들이 계속 많아져간다는 사실은 두렵기 짝이 없는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목청을 높인 자의내부에는 무언가 거짓이 숨어 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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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깊이 숨어 편안하게 세상을 살게끔 충동질하는 내 자신의 분신인 것이다. 책읽기는 즐거운 일이어야한다. 그러나 어쩌랴. 대부분의 경우 책읽기는 즐거운고통이다. 나는 그 고통을 최근에 윤흥길의 『황혼의 집을읽으면서 다시 느꼈다. 그가 고통스럽게 읽은 세상을 나는 그의 책을 통해 즐겁게 접근해갔는데 그 책을 덮고 나니까 다시 그가 느낀 고통만이 내 속에 남아 있었다.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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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편의 『윌리엄 포크너』(문지, 1986)에서 읽은 포크너의 기억할 만한 말: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있는 일이란 일밖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255).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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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반으로 하여금 아이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없도록, 소설 제작에 한참 열중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정신과감정을 주제의 측면에만 단순화하여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구조적으로 갖추고 있는 상상력에 의해 도스토옙스키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게 층을 이루고 있는 ‘물체‘로서반응을 하는, ‘낯설게 하기‘ 된 어린아이가 문학표현의 말로 발휘하고 있는 힘. 그리고 구조적인 깊이. 분절화되어 층을 이루는 깊이를 신화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융과 켈레니의 협동작업이 필요하다. 켈레니가 신화학의 입장에서 융이 심리학의 입장에서 유아원형(幼兒原型)을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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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이미지에 대한 기호)는 만의 근본적인 버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 위에서 아쉔바하가 본, ‘가짜젊은이‘는 이 중편의 구조 안에서 앞으로도 몇 번이나 기능적인구실을 하게 되는, 그와 같이 기능적으로 효과 있는 블록으로서의분절된 이미지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이미지를 여행을 떠난 대작가가 금방 발견하고 그것을 독자와 공유하게 하는 방법은, 여행을하게끔 한 ‘약간 당돌한 풍채의 사나이‘를 설정한 것과 같이 소설의 방법으로서는 너무 빈틈이 없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노인의 이•미지는 이쉔바하가 유럽 정신의 위대함과 동일화되어 있는 내면에, 다음과 같은 그림자를 던지며 이미지 자체가 구조화되어 분절화의 정도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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