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묘사할 수 있거나 묘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무엇을 불러내고 어떤 장면을 실제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의선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어쩌면 익숙함 (말하자면 해변을 해변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과 놀라움(특별한 구체성의 근거를 제공해 그 장면을 일반적인 것들로부터 구해 내는 것은 무엇인가?)을 자아내는 것은 그저 그런몇 가지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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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 언저리에서 파도에 쓸려 와 서로 뒤엉켜 있는 거머리말을 보면, 영락없이 어떤 카세트가 토해 낸 아주 얇은 테이프처럼 보인다. 나는 자연의 존재와 인공의 존재를 병치하는 이 직유가 마음에 든다. 거기에는 어쩐지 내재된 코믹한 측면이 있다. 관찰하는 대상과 그 비교 대상 간의 거리에서 유머가 나올 수 있다. 번들거리고 향긋한 수중 식물과이제 한물간 기술이 되어 버린 자성을 이용해 음악을 채운작은 플라스틱 상자 간에는 먼 거리가 있다. 단일한 비유적표현 내에서 식물과 인공물,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작고 거대한 것을 연결하는 방식은 사고가 형성되는 구역인정신에서나 만날 듯한 요소들의 의외의 부딪침을 통해 언어에 활력을 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휘트먼은 그런 연결을이용해 풀잎을 묘사한다.

아니면 주님의 손수건인지도 모른다.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로운 선물이자 기념물,
귀퉁이에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인가를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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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갈망, 즉 자신이 본 것을 음미하고 명명하고 주장하고 가져올 필요는 묘사의 연료가 된다. 릴케는 위대한가들 가운데 지각하는 사람의 내부에서 부활하는 세상을 주제로 하는 제9비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 무한히 우리 자신으로 바뀌기를.. 그런 갈망을 단지 찬양이나 긍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지나친 단순화가 될 것이다. 그것도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가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끔찍하거나 억압적이거나 가슴 아픈 경우도 흔히 있다. 언어는 이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언어는 모든 것을먹어 치우길 원한다. 퇴색하고 무너지는 세계도, 심지어 비참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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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출중한 시는 고유한 지각적인 특징을 세상에 새긴다. 보는 것을 표현하려는 비숍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보는행위를 하는 자에 대한 정밀한 묘사를 제공한다. 여기에는구체적인 특유의 감성이 있다. 시는 성문聲)이다. 출중한시에서는 특정한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의 존재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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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다시 솟구쳤다. 내 꿈이 뭔지아나, 그가 말했다. 자네에게도 꿈이라는 게 있단 말이야, 내가 말했다.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낡은 배를 한 척 구입해 한1년 항해를 하다가 그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침몰해 사라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그렇게 하게, 말리지 않을 테니까, 내가말했다. 다시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래, 절멸, 절멸이야, 한참 후 P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 다시 나를 놀라게 했다.
소리 내서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절멸이야. 자네는 없나, 소리 내서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앙숙, 내 경우에는 앙숙이라는 단어가 그래, 내가 말했다. 그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그가 말했다. 어쨌든 앙숙이라는 단어도 괜찮군, 울림이좋은 단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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