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면 시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오히려 편한 공간에 있으면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카페에서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집이나 편한 공간이 아니라면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려울 것 같다‘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사실 밖에서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그럴 마음이생기지 않는다. 나는 방에서도 많이 움직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낸다. 밥도 책상에서 먹고, 책도 책상에서 읽고, 시도 책상에서 쓰며, 게임도 책상에서 한다. 잠을 자거나 ‘낭비 시간‘을 가질 때가 아니라면 항상 책상에 앉아 있다.

현재 나는 세 개의 키보드를 사용하는데, 그때마다 사용하는 키보드가 다르다. 매일매일 키보드를 바꿔 가며 사용하는 건 아니고, 평균적으로 계절마다 한번씩 바꾸는 것 같다. 키보드가 손에 익숙해지게 되면새 키보드를 사기도 한다.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하며,
그중에서도 청축 키보드를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청축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 중에서도 키압이 낮은 편인데, 그 키감이 좋아서 제일 선호한다. 자판을 누를때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마음에든다. 시를 포함한 모든 글은 한글2022 에 작성하고있는데, 일정 주기마다 판형을 새로 만들어 가며 글을쓴다. 예전에는 좌우로 넓고 위아래로 짧은 판형에 시를 썼는데, 요즘은 그것보다 좁고 긴 판형에 시를 쓰고 있다. 보통 키보드를 바꿀 때마다 판형도 새로 만들어서 사용한다. 만약 PC가 없는 시대에 내가 태어나 글을 썼다면 펜과 노트를 여러 개 쓰게 되었을까?

오래요즘에는 솔직한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선명한 느낌이다. 어떤 솔직함은 무해하지만 어떤 솔직함은 누군가를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거짓말쟁이를 싫어하는데, 우리가 솔직함을 긍정하고 사랑해서 그렇다. 그러면 ‘솔직한 시‘는 무슨 시인 거지?
작가가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하면 ‘솔직한 시‘가되는 걸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누구라도 글을 쓰면서 살 수 있고,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라고, 작가도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사람들이 직업으로서 물건을 만들어 팔듯이 작가는 문장으로써 그럴 뿐이라고, 작가는 좋게 말해 봐야 문장노동자에 불과하고, 나쁘게 말하면 대부분 시간을 백수로 지낸다고. 작가의 삶에 가지는 환상이 오히려 작가로 사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루틴에 관한 자기 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다. 나도 다른 글에 루틴 이야기를 한 대목 쓰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루틴이란 다만 개인의 성공을위한 습관이 아니라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이야기했다. 루틴을 틀에 박힌 행동이나 어떤 일의 반복이라고 본다면, 지구가 일정한 궤도로 태양 둘레를 돌고또 달이 지구를 도는 것도 루틴이다. 어김없는 계절의변화나 해류의 순환 등도 마찬가지다. 이 우주적인 차원의 루틴 없이 세계는 존속할 수 없다.

물론 개인의 삶에도 루틴은 중요하다. 그때그때 닥치는 일만 해결하며, 되는대로 살아서는 죽도 밥도 안되기 십상이다. 그 사실은 내가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 전업 작가로 살아온 요 몇 년간은 루틴을 만들고그것을 지키려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타인과의 다툼이라면 지든 이기든 벌써 승부가 났겠지만, 나는 나를떠날 수 없어서 이 싸움은 지금도 지루하게 이어지고있다. 내 루틴이라고 해 봐야 글을 쓰기 전에 집안일을 하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거르지 않고 제때제때 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일상적으로 늘 반복해서 하지못하는 일을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뻔한 소리지만,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똑같은 행동도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무의미한 반복일 수도 있고, 루틴이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징크스와 루틴은 한 끗 차이다. 물론 그 한 곳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꽃나무」에관한 해석을 찾아보니 하나같이 꽃나무를 화자의 모습이 투영된 객관적상관물로 분석하고, 화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나는 읽기를 거듭할수록 이 시의 주인공은 ‘나‘가 아니라 ‘꽃나무‘ 같다. 내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도달할 수 있든 없든, 화자가 나를 떠나가든 말든, 열심으로 꽃을 피우는 저 꽃나무 말이다.

매일 똑같은 것 같아 마음의 두려움과 어둠도 늘 그대로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리게 쪼개어 들여다보면, 매 순간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당연한 것은 없고 새롭게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 이런 새로움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사소한 반복의 반복 속에서 변화를 감각하고 연습합니다. 아침 일찍 일정이 있는 날에는 기상 시간을 앞당겨서라도 물, 사과, 커피의 루틴을 이어 가는 편입니다. 조금 피로할 수 있어도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을 관리하는 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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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말해,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지 않으면 그날은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이는 생각보다 엄청난 재앙이기도 하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일을분배해야 하는 프리랜서에게 루틴은 정말 중요하다.
루틴 없이,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일한다?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정해 두지 않는다? 아주 잠깐은 가능하겠지만 건강을 위해 이런 방법은 오래 추천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을 정해 두지 않으면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리고 경계가 모호해지면 언제든 일이 모든 시간을 침범하는 때가 오게 된다. 마감이 급한데 시간이 없으면 첫 번째로 마감하며 식사를 대충때우고, 두 번째로 잠을 줄이게 된다. 조금만 늦게 자면 마감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커피와 술은・・・・・・ . 사실 시를 쓰는 동안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시를 쓰기 전, 혹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마시는 편이다. 술 같은 경우는, 원래술 마시고 시를 쓰는 경우가 없었는데, 평소에 ‘혼자술을 마신다 시를 못 쓴다‘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조금씩 술을 마시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즐거운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물론 취할 때까지 마시진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시를 쓰는 게 더 즐거우니까.

요즘에는 솔직한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선명한 느낌이다. 어떤 솔직함은 무해하지만 어떤 솔직함은 누군가를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거짓말쟁이를 싫어하는데, 우리가 솔직함을 긍정하고 사랑해서 그렇다. 그러면 ‘솔직한 시‘는 무슨 시인 거지?
작가가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하면 ‘솔직한 시‘가되는 걸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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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다 보면 자기가 만든 논리나 세계에 매몰되곤한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집이라는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 거기선 놀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니까 글을 카페에서만 쓴다. 웃긴건 내게 친구들과 함께 쓰는 작업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5분만 걸어도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런데 거기서는 시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 친구들이 보통 저녁에 작업실에 오기 때문에 낮에 거길 가면 똑같이 외롭고, 시간의 주인이 된 것 같겠지만. 그래도 시는 카페에서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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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마감이 코앞에 있거나 그날쓴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으면 그 시간에다시 방으로 들어가 글을 쓴다. 산책을 하면서 생각의 환기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 짧은 삼십 분 동안 새로 쓰는 글은 비교적 만족스럽고, 다음 날 수정하거나삭제하는 부분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삼십 분간 평온하게 책을 읽으며 쉴 것인가, 새로글을 써서 내일의 일을 조금이나마 덜 것인가. 요즘은주로 후자를 선택한다. 읽고 싶은 책은 쌓여만 가고나의 글은 한 발 나아간다. 하지만 더 멀리 나아가기위해서는 그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쌓아둔 책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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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에 대해 『명종실록』에는 외부의 시선이미치지 않는 구역이라 섬 주민들이 방종하게 살고 있다며 개탄하는 내용이 있다. 사촌이나 오촌 사이에도결혼하며, 홀아비와 과부가 마음 맞으면 쉽게 동거하고, 남녀가 한강을 건널 때 옷을 걷거나 벗는 게 예사이고, 그럴 때 서로 몸을 붙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명종실록』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여의도로 나와 있다. 하지만 ‘너른벌‘이라는 이름 그대로벌판이었던 여의도보다는 뽕나무가 많은 밤섬 쪽이남녀상열지사를 치르기에는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싶다. 조금만 걸으면 되는데. 내 추측이 아니라 조선과학실록』을 쓴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의 의견이다.

반복되는 수재에 진저리를 낸 주민들도 있었다.
한강에 홍수가 나면 밤섬 주민들은 며칠씩 섬에 갇혀 굶주리곤 했다. 1950년대에는 그런 상황에서 정말 아사자가 나왔다. 밤섬 주민이 4일째 고립되어 있다는소식을 전하는 1962년 『조선일보』기사에서 이 지역동장은 "백 명 이상이 탈 수 있는 동력선이 마련되거나 케이블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한다.

몇백 년 전 거리에 놓인 커다란 바위나 자갈이깔린 길을 보며 아기장수나 대장장이 초능력자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밤하늘의 별들을 이으며 큰곰자리니 작은곰자리니 하는 전설을 만들어낸 그리스인들의 심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이 매일 보고 경탄하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불확실하게나마 상대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뉘앙스를 입혀서 자신들의 삶 속으로 껴안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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