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딴 계집애들처럼 나폴대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굽이 십 센티나 될 것 같은 구두를 신고 모델처럼 또박또박 우아하게 걸어들어왔다. 한때 며느리였던 여자와마주 앉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하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나는 아기의 이런 울음소리를 듣자 느닷없이 가슴에서 젖줄이 넘쳐, 정말로 펑펑 넘쳐 옷섶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것처럼느끼며 이런 풍요한 젖줄과 목마른 아기를 굳이 떼어놓는 어머니에게 격렬한 적의마저 품었다.

점심시간은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워낙 몹시 운 끝이라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흑흑 느끼느라 김밥 하나를 제대로 못 넘겼다. 내 조그만 허영이 불쌍한 조카의 일학년 첫 소풍의 추억을 이렇게 슬프게 얼룩지워놓고 만 것이다.

버스가 강원도 지방으로 접어들자 산을 휘감은 비탈길이 많아 헉헉 숨이 차했지만 그곳은 맑은 날씨여서 훨씬 덜 불안했다. 진부에 닿은 것은 서울을 떠난 지 여섯 시간 만이었다. 거기서 유천리까지 갈 버스를 기다릴 동안 요기를 하기 위해 국밥집에 들렀다.

더위와 악취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한잠도 못 잔 나는 주인여자가 일어난 기척을 듣고 따라 일어나 그동안 신세가 많았다고 치하도 하고 자기소개도 했다. 주인여자는 시골 여자답지 않게 냉담하고 도도하게 "신세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건 겸사의 말이아닌, 돈 받고 하숙 치는 관계일 뿐 신세를 주고받는 관계가아님을 강조하는 말투였다.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니었다. 훈이를 키우는 일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러이러하게 키우리라는 새로운 방도를전연 알고 있지 못하니, 후회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세상은 그대를 두고 남의 글 애써 읽고 이를 쓰고 가르치기에 삶을 탕진한 사람이라 하는데 사실이냐. 그렇다면 필시 그속에는 작가 박완서의 글도 들어 있되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있지 않겠는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 점이 조금 궁금하다. 멍석을 깔아놓겠으니 한번 말해보겠느냐.
원고청탁서치고는 조금 유별하긴 해도 이에 내가 응한 것은오직 <대학신문>이었기 때문.

마치 겁쟁이가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가볍게 건드린 것같이짧게 살짝 울리는 차임벨의 ‘딩‘ 소리를 대가족의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흥겨운 소란 속에서 나는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어렵다. 나는 그 일이 끔찍하다. 그 시간의 이 집안의 시끌시끌함을 무엇에 비길까.

내가 반했을 당시의 그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좀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번번이 대문간에서 잠깐 낮을 가린다. 그이는그런 나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리 방으로 걸어들어간다.

이제 늠름하게 자란, 이목구비가 수려한 내 아들들을 보면꼭 거저 얻은 한 쌍의 보물 같다. 나는 내 아들들보다 더 잘생긴 얼굴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으므로 내 아들들이 쌍둥이라는 데 지극히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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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이혼에 따른 전반적인문제, 심리적 후유증, 법적인 문제, 재산분할, 가족의 역할 등등. 할 말을 못다 해서 잠시 멍하고 있다가 안 하길 잘했다고생각을 고쳐먹었다.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건 질색인 시누이였다. 서두만 듣고도 머리를 흔들고 끝까지 들으려고도 안 할 것이다. 남들의 통속적인 속내에 전혀 호기심 없는 태도 자체가도덕적인 해결책보다 훨씬 도움이 될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파출부 다음으로 해야 할 오늘 일에 대한 부담이 한결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쿨하게 쿨하게. 바로 그거야.

시누이는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내놓은자식 취급당하니 살 것 같다고 했다. 넉넉한 위자료와 아이들양육권까지 챙긴 그녀는 자식 뒷바라지도 잘해 좋은 외고도보내고 명문 대학도 보냈다. 곧 유학을 보내거나 결혼만 시키면 완전 프리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도 자식이나 남의이목에 신경쓰며 사는 건 아니었다. 동창들 사이에서는 직접적으로나 한두 다리 건너서 알 만한, 꽤 괜찮은 유부남들하고염문도 잘 뿌리고 헤어지기도 잘했다. 아마차버렸을 것이다.
찼든 차였든 임자 있는 남자와의 염문에 지저분한 뒷소문이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그 비결을 물어보면 ‘쿨하게‘ 였다. 만병통치, 그놈의 쿨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아무튼 부러운 능력이었다.

그녀답지 않게 가벼운 설교까지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안 하던 짓이었다. 그거 하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느냐는 가벼운 질책은 시누이 노릇이라기보다는 우정에 가깝다.
시누이로서보다는 친구로서 그 여성이 고맙고 의지가 되는사실이다. 그러나 나도 고분고분한 성미는 아닌데 처음부터도 아니고, 시집살이 무섭던 옛날에도 고방 열쇠 물려받을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시어머니한테 꼼짝 못하고 쥐여 살게된 사정은 내가 생각해도 하도 치사스럽고 한심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남편은 어머니의 위장 가난 때문이었는지 한때의 시대정신때문이었는지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의 변두리를 돌다가 군대갔다 와서 간신히 취직한 회사에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그래도 취직하길 참 잘했다 싶은 건 나에게 청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아직까지도 가끔 말하는 걸 보면,
이 남자가 나하고 결혼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건 확실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유를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게 돈의 힘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팔순이다 된 노인에게 그렇게 많은 사교모임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기적인 것만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되는 것 같았고, 친구네 혼사 생일 입학 학위취득 등 축하를 핑계로 모이기도 하지만 언짢은 일도 위로한답시고 꼬박꼬박 챙겼다.

희수 해에는 그 비슷한 모임이 몇 번 더 있었다. 희수니까.
나도 될 수 있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허울뿐인 맏며느리 노릇에 충실하려고 했다. 4.4모임 외에는 다들 L호텔보다는 싼데서 했지만 여러 번 치르는 걸 보니 그게 다 내 주머니에서나간다면 수월치 않은 액수일 테니 마냥 좋은 얼굴만 할 수는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달이 시어머니 아파트로 시누이 말 짝으로 파출부나가게 된 경위가 대강 이러했다. 절대로 자식 신세 안 지고사는 잘난 노인들의 잘난 노인다운 이 착한 일을 내가 미력이나마 - 한 달에 한 번이니까- 거드는 일을 영광스러워는 못할망정 파출부라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줄 안다. 그러나그날이면 아침부터 심사가 꼬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신역이고돼서는 절대 아니다.

배불리 잡숫고 나서 남은 음식은 싸달라고 했다. 어떤 분은잡채를, 어떤 분은 야채전을, 혹은 북어구이를 싸달라고 하면서 손님 치르고 나면 남은 음식이 제일 곤란하잖아, 이렇게 생색을 냈지만 집에 기다리고 있는 영감님이 있는 사람이 주로싸달라는 것 같았다. 영감님이 계신데도 남은 음식 차례가 안간 이에게는 넌 가다가 김밥이나 족발이라도 사가지고 가렴,
일러주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제 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그런다고 당장 나오긴 좀 뭣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제야곗돈들을 모으다 말고 누가 느닷없이 말했다.
야, 그 배고프던 그 시절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드나드는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게짧고 나풀나풀한 치마를 입고 있다. 커피빈 안쪽 벽은 완만한둥근 곡선인데 선을 따라 턱을 만들어놓아 걸터앉을 수도 있게 꾸며놓았다. 동성끼리나 사무적인 관계로 보이는 남녀만테이블에 마주 앉고 사귀는 사이로 보이는 커플은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그쪽에 가 앉아 있다. 남자 무릎 위에 올라앉은 계집애도 있고, 남자 목에다 제 팔을 감고 있는 아이도있다. 그 자리는 남녀의 친밀한 신체 접촉을 위해 꾸민 자리인듯했다. 근데 가만히 보니 상대를 주무르고 있는 건 주로 여자고 남자는 수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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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답답했으면 일 년에 몇 번 마을에 나타나는 각설이떼를 할아버지는 전에 없이 반기셨다. 전에는 각설이타령 듣기싫다고 얼른 찬밥이건 쌀이건 주어서 보내라고 호령을 치시던할아버지가 실컷 놀고 난 후에 주라고 바가지를 들고 나가는식구들을 만류하고 그들의 신바람을 끝까지 즐기셨다. 중이동냥을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들어보면 다 덕담이니중툭을 자르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라고 이르는 할아버지의 음성은, 그 까탈스러운 쇳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바람 든 무처럼퍼석했다.

마흔 살이란 늦은 나이답게 수줍게 문단을 두드린 게 처녀작 『나목』이었다. 사적인 경험을 우려낸 작품이니 유니크하지만 등단작으로 끝나는 일회적인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한심사위원의 조심스러운 전망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의 우려가격려가 되어 그후 나는 열심히 글을 썼고 문단과 독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 종종 인기작가 소리도 듣게 되었다. 초기에쏟아낸 6·25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선 비극적인 가족사를 반복적으로 우려먹는다는 평도 들었지만 나는 반전소설로읽히길 바라고 있다. 유연하게 성공적으로 가정주부에서 작가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후의 작가생활도 결혼생활처럼 풍파없이 순탄했다.

세 여자를 만나 나의 시골집까지 오는 동안은 간략하게 내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알맞은 거리이다. 멀리 울산바위가 보이는 우리 마을은 앞벌만 빼고는 삼면이 짙은 숲에 둘러싸여 있다. 녹색도 극에 달하니까 지쳐 보인다. 힘겹게 저장하고 있는과중한 수분을 언제 토해낼지 모르게 둔중한 빛을 하고 있다.
친구의 어머니 유해야 찻건 말건 내일은 나도 떠나리라. 망설이던 마음을 별안간 굳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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