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답답했으면 일 년에 몇 번 마을에 나타나는 각설이떼를 할아버지는 전에 없이 반기셨다. 전에는 각설이타령 듣기싫다고 얼른 찬밥이건 쌀이건 주어서 보내라고 호령을 치시던할아버지가 실컷 놀고 난 후에 주라고 바가지를 들고 나가는식구들을 만류하고 그들의 신바람을 끝까지 즐기셨다. 중이동냥을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들어보면 다 덕담이니중툭을 자르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라고 이르는 할아버지의 음성은, 그 까탈스러운 쇳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바람 든 무처럼퍼석했다.
마흔 살이란 늦은 나이답게 수줍게 문단을 두드린 게 처녀작 『나목』이었다. 사적인 경험을 우려낸 작품이니 유니크하지만 등단작으로 끝나는 일회적인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한심사위원의 조심스러운 전망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의 우려가격려가 되어 그후 나는 열심히 글을 썼고 문단과 독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 종종 인기작가 소리도 듣게 되었다. 초기에쏟아낸 6·25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선 비극적인 가족사를 반복적으로 우려먹는다는 평도 들었지만 나는 반전소설로읽히길 바라고 있다. 유연하게 성공적으로 가정주부에서 작가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후의 작가생활도 결혼생활처럼 풍파없이 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