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신의 종자를 보살피고 선업 종자를 심고 물을 주고 불선업 종자의 현행을 억제하면 성숙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 고작 사나흘의 수행 후에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사람들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화해하고 행복을되찾았다. 새 출발, 깊은 관찰, 변화, 치유와 연관된 자들이 지극한 보살핌을 받자 이숙 과정이 순식간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할수 있다. 우리의 아뢰야식 속 종자로부터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킬 수있다. 더욱 긍정적으로,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불가능하다고생각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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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 자체를 접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는 그렇다고 말한다. 당신이 꽃 한송이를 있는 그대로 직접 본다면 그 꽃은 진여의 현행일 수 있다. 인식 차원에 따라 우리는 꽃의 진여를 접하기도 하고, 우리마음이 조작한 이미지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본체, 성경을 보는 차원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물을 인식할 때 우리가 보는모습은 주로 대질경이나 독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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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공성을 간파할 때 당신은 자신이 곧 아버지라는것을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관련된 것은 단 하나도 갖고 싶지 않아. 정말 화가 나거든." 그렇지만 사실 당신은 상속된 당신 아버지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신 자신과 아버지를 화해시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저 밖에, 당신과 별개로 존재하지않는다. 그는 당신 속에 존재한다. 이것을 알고 화해할 때, 그제서야 평화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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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은 평안, 자유, 윤회의 종식을 뜻한다. 깨달음은 밖에서오지 않는다. 누가 주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붓다도 주지 못한다. 깨달음 종자는 우리의 아뢰야식 속에 이미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불성(佛性, 본래부터 갖춘깨달을 수 있는 성품)이다. 우리는 그 씨앗을 잘 키우기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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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가장자리 및 바로 이웃한 골목에서는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기발한 제품들이 거의 균등하게 영역을 나눠 갖는다. 저기, 파비오 리에티가 그린 가짜 건물 창문-보부르 공공주차장의 통풍관을 감추고 있는 우아한 트롱프뢰유-에 서있는 여인의 영원불멸한 시선 아래에, 퐁피두 센터와의 근접성에 이끌린 화상(畵商)들이 오스만 대로나 라 보에티 거리에있는 이미 너무 오래된 본점들보다 더 활기찬 미술 화랑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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