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방 곳곳에 남아 있는 얼룩이그를 어룽어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흙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운전에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진 건 내 안의 욕구불만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일 것이다.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을 때마다 무작정 주차장으로 달려내려가 시동을 걸었다. 혹은 주차장에만 있어도좋았다. 차 문을 잠가놓고, 등받이를 한껏 뒤로 젖히고선 눈 감고 음악을 들으며 심호흡했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바다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질문들 앞에서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떠올린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위대한 시인이 우리(여성) 안에 살아 있다고,그녀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한다면,비록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가난 속에서 기울이는 노력이라 할지라도 가치가 있다고 썼다. 내일의 가치도 거기에 두고 싶다.
하지만 현명한 어른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지혜를 궁리하고,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몸을 던져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어른은 글을 쓴다. 씀으로써 돌파한다. 거기에는 질문이 있고, 질문을 기다리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글이 나만의 어디로든 문이 되길 고대하고 있다. 문을열면 그곳엔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