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모든 만물이 나오기 전에 마음이 있었다고 봅니다. 마음이 물질보다 더 고차원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고차원에서 저차원이 나오지, 저차원에서 고차원이 나오는법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주만물이 있으려면 먼저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주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입장입니다.그런데 이 4가지 원소들은 마음의 대상은 될지언정 마음 그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인식능력이 없습니다. ‘무지無知한 것이죠. 그러니 거기에서는 불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 불성을어디서 찾을 것이냐? 당연히 인식능력‘을 지닌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그런데 마음의 차원도 다양합니다. 오감의 영역대가 있고,‘감정‘의 영역대가 따로 있고, ‘생각의 영역대가 또 따로 있어요.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의 저장소 역할을 하는 무의식의 영역대가 따로 있고, 이러한 모든 영역을 넘어선 참 마음의 영역대가또 따로 있지요.
단지 자신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가르침과헤아릴 수 없는 신묘한 뜻을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이르시길 "모든 중생들을 두루 관찰해 보니 모두가 여래의지혜 덕상德相자비)‘을 갖추고 있다." 라고 하신 것이다..또 이르시길 "각종의 헛된 변화가 모두 부처의 원만한 깨달음의 신묘한 마음에서 생겨난다."라고 하셨다. 따라서 이 마음‘을 벗어나서는 ‘부처‘를 이룰 길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但識自心恒沙法門無量妙義不求而得故,一家人,智德相 又太一切衆生 種種化 皆生如來를少心是和特化心外無物成
선禪이라는 것은 고요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시끄러운 곳에있는 것도 아니며, 일상의 인연에 대응하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생각으로 헤아리고 분별하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우선적으로 고요한 곳, 시끄러운 곳, 일상의 인연에 대응하는곳, 생각으로 헤아리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지 말고 참구하여야한다.禪不在靜處亦不在鬧處不在日用應緣處不在思量分別處然第一不得捨却靜處處日用應緣處思量分別處參
초단편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자랑할수 있는 말이 있다. 언제나 이 말을 할 때면 속으로 몰래우쭐해한다. "초단편은 쓰다가 안 써지면 언제든 버릴수 있습니다. 짧으니까! 버려도 별로 안 아깝거든요.. 안써지면 다른 거 쓰면 되지!" 농담처럼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사실이다. 장편 소설은 쓰다가 막히거나 안 써져도어떻게든 꾸역꾸역 써내야 한다.
이야기에서 ‘패턴‘을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 있을까?‘틀‘일 수도, 구조일 수도, ‘형‘일 수도 있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면 일정한 양식이나 유형 정도로 정의된다. 이야기에는 정말 패턴이 있을까?‘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말이 있다. 오직몇 가지 이야기가 존재하고, 나머지는 그 변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