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면의 삶은 어느 모로 보나 무한히 광대한 우주처럼 놀랍고 불가해하고 신비롭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이 있는 존재의 개별적 표현이며, 우리가 우주 속에 있는 만큼 우리의 내면에 광대한 우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매우 오래된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가장 위대하고 낯선 모험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의 진리로 깨어나고 개인으로서, 또 인류 전체로서 생각할 수있는 가장 발전된 삶을 살기 위한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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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명백히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신을 찾는 것일까요? 신은 모든 보이는 모습, 소리, 냄새 속에 있습니다. 나무들과 꽃들, 새들 속에, 자동차의 굉음 속에, 심장의 박동속에 있습니다. 이런 말들 속에, 바깥에 있습니다. 하얀 종이와 검은 잉크 속에 있습니다. 공간 속에도 있고, 침묵 속에도 있습니다.
사이에도 있고, 보이는 것 속에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 속에도있습니다. 삶의 맥박 속에도 있고, 죽음의 평화 속에도 있습니다.
아기의 울음 속에도 있고, 노인이 임종,
내는 가래 끓는 소리에 에도 있습니다.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으로서, 신은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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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나 이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 순간은결코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쉽게부서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마지막으로 의자를 보고, 마지막으로 천장을 보며, 마지막으로 카펫을 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손을 봅니다. 마지막으로 숨을 쉽니다. 당신에게 또 하나의날이, 또 하나의 순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순전히 오만입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요! 어째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순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점은, 우리는 받을자격이 없는데도 또 하나의 순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총입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또 하나의 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지 않을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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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른바 물질세계에서 만족을 얻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에 관심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수십억 원의 은행 잔고나 더 빠른 자동차, 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은 더 이상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제는 깨어남이 목표입니다. 이제는 깨달음이 목표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 자동차 대신 신비한 의식 상태를 원합니다. 새로운 인간관계 대신 영원한 지복(至福, 더없는 행복)을 원합니다. 세속적인 성공 대신 깨달음을 원하고, 에고라는 것을 잃어버리기를 원하며, 마음이라는 것을 초월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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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심판받을 거라고 믿으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은 대체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믿으면 저세상에서 일어날 일을 계속 두려워할 것이고, 사랑과 선善 자체를 위해 사랑하고 착하게 살기보다는 사후에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척, 착한 척 살아갈 것이다. 두려워서 하는 행동은 사랑해서하는 행동과는 다르다.
임사 체험 동안 나도 살면서 잘못한 것들을 후회했지만, 그 후회는 온전히 나 스스로 한 것이지 외부의 어떤 존재에 의한 것이아니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내가 잘못하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잘못하자 이때다 하고 처벌하는, 나와 분리되어 있는 심판자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자신이 감시받고 심판받으며 그 심판은 우리밖의 누군가가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원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이원성의 세계에서는 오직 순수한 의식,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그리고 완전한 수용만이 존재한다. 우리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의식의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와 그들이 아니라 우리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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