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에서) 우리 동네의 작은 창들은 어느새 대부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이미 수없이 보았지만 볼 때마다숨을 멎게 만드는 그 풍경에 매혹되어 짙푸른 물감이 점점더 번져가는 동네가 별빛 가득한 우주의 가장자리처럼 보일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우주의 가장자리에서 M이모가, 나의 개 봉봉이 살았고, 길고양이 시몬과 장폴이, 나의 이웃들이 살고 있다.
나는 거울 속처럼 고요한 우리 동네 풍경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지만 밤이 다가오고 있는 기척을 느낀다. 밤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모든 걸 쓸고 가버릴듯한 커다란 갈퀴를 끌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이따금씩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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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장 인도의 맛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이서 함께 설날을 보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올겨울 엄마는, 연말부터 연초에 걸쳐 아무르의 단골손님들과 함께 골프와 쇼핑을 하러 하와이 여행을 갔다.
중매쟁이 아주머니도 함께였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설날을 맞이하게 됐다. 물론 집에는 엘메스가 있다. 나는무늬뿐인 설음식을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서 엘메스와마주한 채 조촐하게 설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엘메스에게 말했지만 당연히 반응은 없다.
기분전환을 위해 엘메스 목욕시키기에 열중하기도 하고, 가끔 눈밭에 자유롭게 풀어 주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을 때는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찻잔의 때를 전용 스펀지로 깨끗이 닦아내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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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귀에 힘이 없고 유백색의 가느다란 수염에도 생기라곤 없다. 털실 뭉치 같은 동그란 꼬리를 손가락 사이에끼워 봐도, 여전히 토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설령 내가 지금 이 토끼를 마음껏 간질인다 해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나는 손바닥을 신중히 토끼의 배 쪽에 넣고 양손으로들어 올려 보았다. 토끼의 심장은 마치 살아 있는 날것그대로를 만진 듯이 손바닥 바로 가까이에서 격렬하게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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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터가 될 주방도 구마 씨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훌륭하게 꾸며졌다. 나는 가져온 겨된장을 엄마의 지저분한 부엌에서 깨끗한 주방으로 당장 옮겼다.
내가 주방을 꾸미면서 최우선으로 고려한 점은 밝고,
청결하고, 또 사용하기 편할 것.
나는 최소한의 도구로 요리를 만들기 때문에 식기세척기도 전자레인지도 전기밥솥도 필요 없다. 꼭 있어야ㅏ는 냉장고, 싱크대, 가스레인지, 오븐만큼은 최근 폐업한 마을의 중국집에서 싸게 물려받았다.
싱크대는 아직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작은 내 몸 사이즈와 딱 맞았다. 고육책으로 양철 양동이를 재활용한 레인지 후드는 익살스러운 느낌이 나서 좋았다. 무엇보다서쪽 벽을 부수고 전면을 유리로 마감해 아름다운 빛에싸인 채 요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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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페리, 「전시 조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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