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가다 어느 날문득 소설을 쓰기 시작했듯,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글도 쓰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글과 완전히 멀어져 헤어질 수밖에 없을 때가. 조금씩 각오하고 있다. 만약 십 년 뒤에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면, 첫 문장을 고민하며 서너 계절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그때에도 누군가가 당신은 어째서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삶을 충분히 살아서 더는 그럴 필요 없는 사람이길.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겐 소설이 필요합니다, 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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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장들 말고 소설의 문장을 쓰고 싶다. 그런데 소설의 문장이란 무엇일까. 소설 같다는 느낌은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나는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하고 소설을 써왔다. 아니 소설이라고 믿는 것들을 써왔다. 믿음이란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다. 믿음의 토대는 믿음밖에 없으니까. 나는 그 믿음에 의지해 소설을 쓰지만 믿음이 흔들리면 고아처럼벌벌 떠는 연약한 무능력자다. 소설가가 쓴 긴 글은소설이 되는 걸까. 아니면 소설이 되는 긴 글을 쓰면소설가가 되는 걸까. 왜 나는 아직도 이런 하나 마나한 생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걸까. 하지만 허비되지 않는 시간이란, 낭비되지 않는 시간이란 가능한가. 허비되고 낭비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언어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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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스스로에게 좋은 인생을 살았을까? 스토너처럼 문학에 들린 사건 같은 순간이 내게 있지는 않았다. 성장기를 에운 환경이 문학적이었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할머니와 지낸 어린 시절, 농경과 방언의 세계, 들과 산에서 자란 자연의 아이, 아홉 살에진학한 늦은 아이로서의 자의식, 주산부에서 문예반으로 데려간 선생님, 시골에서 소도시로 나아간 여로…………… 물론 어디까지나 책이 몇 권 쌓이고 나서 갖게 된 생각이다. 작가가 되는 조건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숨 막힌 입시 생활이야말로 나를문학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나는 숨을 쉬려고 일기장을 끼고 살았고, 자취방에서 소설을 쓰고 읽고, 비슷하게 숨 막혀 하는 친구들 몇과 동인지를 만들었다.
원서 쓸 무렵이 되어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갈 곳은거기밖에 없다는 듯이 문학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학에 자연스럽게 편입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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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장편 『스토너』는 평생 대학 강단에섰던, 존재감 없던 한 교수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미주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고향을떠나 농대에 진학한다. 이 젊은이는 졸업하고 나서부모 곁으로 돌아가 농부로 살아갈 인생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2학년 교양과목인 영문학 개론을 듣다가 운명이 바뀐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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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도 행운을 빌어, 동생, 나는 생각했다. 네 배가 들어오기를 바라. 돈이 생기면 갚아 그리고 전 아내, 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여자. 그녀는 살아 있고, 그녀는 또 건강하다 어쨌든 내가 아는 한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상황은 이보다 훨씬 나빴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지금의형편은 모두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운이 따르지 않은 것뿐이다. 상황은 곧 바뀔 수밖에 없다. 아마 가을이면 다시 좋아질 거다. 기대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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