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내심 오영이 항변해주길 바랐다. 무슨 말이라도 당당히 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오영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볼 뿐이었다. 총대 옆에 앉은 학생도, 프리랜서 둘도 마찬가지였다. 스크린 속에서 상을 받은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불편한 고요가 흐르는 와중에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걸까. 왜 모두가 제일 아닌 양 좌시하는 걸까. 사랑하면.... 사랑하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저는 지난 삼 년 동안 세 번의 유산을 겪었습니다.앞선 두 문장의 장점을 합친 대사를 중얼거리며 그것의 효과를가늠하고 있을 때, 복도 저편에서 17번 지원자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그 기세에 놀란 배우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불안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자리에 앉은 은화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어쩌면 준비해온 것보다 더 강렬한 사연이 필요할지몰랐다.
그들은 나를 철두철미하게 밑바닥까지 조사했다. 내가 살던 모든 장소, 고향 집은 물론 학교, 만수 형이 다니는 회사, 옥희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샅샅이 다 뒤지고 흔들어보고 털어봤다. 일제 때 할아버지가 불온사상 때문에 재판을 받은 것까지 다 나왔을 정도였다.그들의 조사는 역설적으로 나의 결백을 증명해주었다. 내가 별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자 그들은 오히려 대단히 실망스러운 눈치를 보였다. 내가 그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인간은 신념과 강한 의지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우리는 배웠다. 해외토픽에 보니까 교통사고가 나서 자기 아이가 차에깔려 죽게 되자 엄마가 트럭을 번쩍 들어올려서 애가 살아났다. 우리 집 아랫집에 사는 아저씨는 양잿물에 발을 담가서 병원에서도포기한 무좀을 고쳤다. 옆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좀 있으면 세상이불과 물과 기름의 심판으로 망할 거다. 그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모든 재산을 하나님한테 바치고 하나님이 지정해놓은 장소에 모여있으면 천국으로 가는 양탄자가 내려온단다. 그걸 타면 천국까지순식간에 날아가는데 양탄자를 타는 표를 따로 팔고 있다.
그날 죽은 돼지 두마리는 동네 사람들이 나눠 먹었다. 돼지가 죽는 바람에 피를 뽑지 못해서 고기는 질기고 냄새가 많이 난다고 했다. 원래 돼지값의 반밖에 받지 못해 아버지는 무척 화가 났다. 덜익은 돼지고기를 먹고 동네 사람들 중 절반 가까이가 토사곽란에시달렸다. 그래도 워낙 싸게 먹은 것이라 돈을 돌려달라고 온 사람은 없었다. 설사도 할아버지가 준 약을 먹고 나았다고 했다. 내 알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