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뻑 젖어버린 전단지를 바닥에 던지고 벤치에 앉았다. 도대체난 왜 이 배은망덕한 개새끼를 찾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이에 뭐대단한 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개는 낑낑댄다 싶으면 밥을 주고, 냄새가 난다 싶으면 배설물을 치워줘야 하며 말썽을 피우면 두들겨 패줘야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개를 찾다보니 어느새나는 나 자신이 개를 찾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소라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우는 소라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인 걸까. 잘 모르겠다.
정말 소라의 말대로 개는 내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관절염에 걸린 다리로 단숨에 뛰쳐나가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것일지도, 지금까지 들인 돈과 치운 똥을 생각하면열받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 이해한다. 기왕에 도망치고 싶었다면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쳐라. 다시는 내 손에 잡히지 않게. 주에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족발 뼈와 구겨진 종이가 잡혔다. 그것들을차례대로 강에 던졌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검은 강이 뼈와 종잇조각을 삼켰다. 물위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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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는 참 많이 사랑을 하고 살았다. 자신을 버려둔 채 연락이끊긴 부모님도, 길에서 건강 팔찌를 파는 할머니도, 나도, 제제에게는 모두 공평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덕분에 제제는 양 손목에옥으로 만든 팔찌를 주렁주렁 차고 있으며, 다단계에 빠진 미용실아줌마에게 영양제 다섯 통을 사와 밥 대신 먹기도 했다. 평생을한동네에서 살았지만 말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 없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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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혹은 일상을 살아갈 때) 홀로 먼지 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손에 뭔가 닿은 것처럼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감히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말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주먹을 꽉 쥔 채 이 사소한 온기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내 삶을,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롯이 나로서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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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별명 짓기.
카일리 미노그를 듣다 꼬여버린 인생이라 카일리라고지은 건 아니고, 그냥 이름이 예뻐서. 어차피 이것이랑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판인데 나 듣기에 제일 예쁜 이름을 붙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카일리.
맞아. 마돈나나 아리아나, 브리트니나 비욘세보단 카일리지. 아무렴.
그 이름을 후회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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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예상처럼, 차트의 숫자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가장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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