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신념으로의 그런 도약,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한 최선의 선택을 바른 행위right action, 正業‘라고 말했다.
미리 계획하지 않고 저절로 일어나는 행위이다. 이는 에고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존재와 통합된 행위, 지혜, 사랑,
자비의 차원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 행위와 접촉할 수도 있고 접촉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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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의 삶은 어느 모로 보나 무한히 광대한 우주처럼 놀랍고 불가해하고 신비롭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이 있는 존재의 개별적 표현이며, 우리가 우주 속에 있는 만큼 우리의 내면에 광대한 우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매우 오래된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가장 위대하고 낯선 모험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의 진리로 깨어나고 개인으로서, 또 인류 전체로서 생각할 수있는 가장 발전된 삶을 살기 위한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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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명백히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신을 찾는 것일까요? 신은 모든 보이는 모습, 소리, 냄새 속에 있습니다. 나무들과 꽃들, 새들 속에, 자동차의 굉음 속에, 심장의 박동속에 있습니다. 이런 말들 속에, 바깥에 있습니다. 하얀 종이와 검은 잉크 속에 있습니다. 공간 속에도 있고, 침묵 속에도 있습니다.
사이에도 있고, 보이는 것 속에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 속에도있습니다. 삶의 맥박 속에도 있고, 죽음의 평화 속에도 있습니다.
아기의 울음 속에도 있고, 노인이 임종,
내는 가래 끓는 소리에 에도 있습니다.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으로서, 신은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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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나 이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 순간은결코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쉽게부서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마지막으로 의자를 보고, 마지막으로 천장을 보며, 마지막으로 카펫을 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손을 봅니다. 마지막으로 숨을 쉽니다. 당신에게 또 하나의날이, 또 하나의 순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순전히 오만입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요! 어째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순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점은, 우리는 받을자격이 없는데도 또 하나의 순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총입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또 하나의 순간이 주어집니다. 그러지 않을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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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른바 물질세계에서 만족을 얻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에 관심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수십억 원의 은행 잔고나 더 빠른 자동차, 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은 더 이상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제는 깨어남이 목표입니다. 이제는 깨달음이 목표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 자동차 대신 신비한 의식 상태를 원합니다. 새로운 인간관계 대신 영원한 지복(至福, 더없는 행복)을 원합니다. 세속적인 성공 대신 깨달음을 원하고, 에고라는 것을 잃어버리기를 원하며, 마음이라는 것을 초월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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