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944새그물에 걸린 새는 스스로 제 발을 움켜쥐고 죽을 때까지 펴지않으며,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스스로 제 주둥이를 그물눈에 꽂고는 죽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중의 어리석은 자는 잡으면 버릴 줄 모르고, 나아가면 물러날 줄 모른다. 현명하다는 사람은 아는 것을 고수향하여 돌려 생각할 줄 모르며, 있는 것을 잡고 놓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물고기와 새의 어리석음을 웃을 수 있겠는가.
대체로 인물人物이 생生을 받으면 집념한 것을 지식이라하고, 있는 것을 몸이라고 하여, 환상과 꿈의 경지境地를 헤매면서 항상 습기의 구사하는 바 된다. 진실로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누가 능히 간파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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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 꿈에 범나비가 되어 기분 좋게 훨훨 날다가 깨어 보니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이에, 사람이 꿈에 나비로 화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사람으로 화한 것일까, 하고 의심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과연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깬 것인가를 알 수없다. 사람이 나비 꿈을 꾸었다면 나비는 사람의 꿈속에 나타난물건일 것이고,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꾸었다면 사람은 나비의 꿈속에 나타난 물건일 것이다. 사람과 나비는 다 같이 꿈속의 환상幻像일 뿐이다. 어찌 반드시, 그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꿈이라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가운데에 스스로,
일찍이 사람도 아니고 일찍이 나비도 아닌, 꿈 아닌 것이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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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쪽 다리 끝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꽤 저물어 있었다. 아아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다리 앞에서 잠시 몸을 돌려 우리가 떠나온 뉴저지 쪽을 바라보았다. 북쪽에서부터 허드슨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키가 큰 나무들이 노을보다 더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주황색과 보라색이 섞인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의 철골 구조물과 그 아래 철제 케이블들은 수채화 위에 어울리지 않게 덧입혀진 동양화의 검은 먹선처럼 보였다. 아야와 내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가 생각하고 있는데 아야가 물었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 논문이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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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에 관해 생각한다. 이를테면 포트 리의 카페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 그것이 아야일 확률. 내가 이 시간 이곳에 오게될 확률과, 아야가 내가 오기 전이나 떠난 후에 오지 않고 정확하게 주문하고 있는 시간에 올 확률.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볼확률, 내가 다리에 가자고 말할 확률과 아야가 그것을 수락할 확률, 아야와 내가 각각 도쿄와 서울에서 태어날 확률 삽십여 년 뒤뉴욕에서 만날 확률. 하나의 다리가 지어지거나 무너질 확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모든 종류의 경우의 수.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하나의 사건에 이르러 지금 마주보며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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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는 것은 쓰기에 적족하여 결핍함이 없음을 말함이고, 귀貴라는 것은 몸이 영화되고 이름이 높음을 일컫는 것이다. 녹봉祿俸이 이미 쓰기에 넉넉하고 벼슬이 이미 이름을 영광스럽게 할 만하면 마땅히 분수를 편안히 지키고 명수에 순종하여 선행을 닦고 직책에 부지런하여, 이것으로써 자신의 몸이 늙어 가고 자손을 위하여 좋은 계책을 남겨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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