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당신을 큰 곤경에 빠트렸던 경험을 써보라.
독자들이 그 일과 관련해서 당신은 100퍼센트 희생자라고생각하도록 설득력 있게 써야 한다.
위의 경험을 당신이 100퍼센트 비난받아 마땅하다고생각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써보라. 둘 중 어떤 버전이독자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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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들켰던 나의 거짓말
지금 내가 있고 싶은 곳
사탕을 가져온 목수
놀이터에서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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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정치가를 예로 들면 1960년대의 존 케네디나 로버트 케네디의 옷맵시는 아직 양복이라는 것과는 인연이 없던 십대 초반이었던 내 눈으로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멋있었다. 그들은아메리칸 트래드를 정말 멋지게 자신을 갖고 차려입었다. 지금생각하면 거기에는 양복을 입는다‘라는 단순한 물리적 행위를뛰어넘은 좀 더 깊고 중후한 뭔가가 있었던 듯이 느껴진다. 거기에 있는 냄새나 촉감 같은 것이 공간을 초월해 찌르르하고 직접 전달되는 듯한 위력이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당시 아메리칸이스태블리먼트 Establishment (기성의 여러 특권계층을 의미하는 말옮긴이)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계승한 강인한 자기 확신 같은 게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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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 현지에서 극도로 융성하고 있는 페미니즘 문학 비평에 딱히 불평을 늘어놓는 건 아니다. 그러한 새로운 측면에서새로운 시점으로 문학을 이해하는 건 확실히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하며, 비평 분야에서도 얼마간 유익한 역할을 한 것도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그런 관점은 앞으로 소설 쓰는방식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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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산도의 연주를 들으러 갔다. 쿠바 음악 전문가인 무라카미류의 말에 따르면 산도발 같은 사람은 쿠바 음악적 수준에서 보면 그리대단하지 않아, 정도지만 재즈 측면에서 들으면 상당히 "그럴듯한데" 하고 깊이 감탄하게 되는 점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현대 재즈에서의 하나의 맹점 같은 걸지도 모른다. 어쩐지 서커스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육체적으로 재즈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면이 있어도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윈튼 마살리스에게는 아쉽게도 이런 유의 아크로바틱한 매력은 없다. 디지나 레드 알렌, 암스트롱, 패츠 나바로는 청중이그저 ‘우아아‘ 하고 감탄하게 하는 육체적인 호소력이 있었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즈의 하나의 원점이 아닐까. 물론 이것밖에 없다면 약간 피곤해지겠지만.
지난번 보스턴에 있는 재즈 클럽에서 요즘 좋은 평가를 받는 조슈아레드맨=팻 메스니 콰르텟의 연주를 들었는데 왠지 열 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 ‘양갓집‘ 처녀와 데이트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뭐 그런대로 즐겁기는 했지만 다음에 다시 데이트를 한다면, 나로서는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도 없고 억제도 없는 산도발 씨 쪽을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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