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어 결정자의 의미를 밝히려고 할 때 문제는 그 모양이 너무간단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사의 결정자는 명사의 결정자에 비해대개 해독하기가 더 어렵다. 행동은 그림으로 포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걷는 두 다리 모습의 결정자는 ‘사냥‘과 ‘가다‘와 ‘서두르다‘ 를 의미한다(‘머무르다‘와 심지어 ‘멈추다‘도 의미한다). 관념은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결정자도 있었다. 둘둘 만 파피루스 두루마리 그림은 ‘쓰기‘ 같은 추상적인 것을 나타냈다. 이것은 독특하고 복잡한 체계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일부 쐐기문자는 비슷한 전략을 이용했고, 영어는 직접 비교할것이 없지만 개략적으로는 유사한 것들이 있다.
고 있다. 이집트의 필사공들은 비웃을 마음조차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엉성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나나데시칸은 이렇게 이어갔다. 이집트의 필사공들에게 무엇이든 몇 개의 부호를 필요로 하는 어떤 단어를 쓰는 것은 우습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글자들은 상자 안에 무리를 지을 필요 없이 그저 한 줄에 흩어져 있을수 있었다. 얼마나 추가! 그리고 어떤 단어를 적는 데 그 단어의 의미를 직접 가리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그림문자의 단서가 없었고 결정자가 없었다) 단어를 힘들여 발음한 뒤에야 그것이 이해가 됐다. 얼마나 성가신가!
기이한 성체자 체계는 여러 해 동안 이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1824년 무렵에 샹폴리옹은 거의 모든 혼란을 헤치고나아갔다. 그해 6월에 그는 사르데냐 왕이 새로 구입한 방대한 이집트 유물 수집품들을 검토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리노로 떠났다. 그 비장의 보물들에 쓰인 성체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딱한 명, 샹폴리옹뿐이었다. 왕의 수집품은 조각상 . 미라·관 수백 점, 그리고 파피루스에 쓰인수많은 문서들이었다.14 샹폴리옹이 왕궁의 한 작은 방에 들어가자 파피루스 잔편이 높이 쌓인 책상이 보였다. 숨이 턱 막혔다. 그는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냉정한 상상력마저 흔들릴것 같아." 일부 잔편은 너무 작아서 누군가가 방문을 열자 공중으로 떠올랐다.
분명 샹폴리옹과 영 사이의 반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모든분야의 거인은 부러움과 시샘에 따른 분노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지만(천재성과 엄청난 자존심이 폭발하기 쉬운 혼합물을 만든다) 과학과 문자해독에서의 경쟁은 다른 어느 분야에서보다 더 격렬한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크리스토퍼 말로라는 경쟁자가 있었지만, 적어도 두천재는 누가 먼저 <햄릿>을 쓰느냐 하는 경쟁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측면에서 샹폴리옹과 영의 경쟁은 뉴턴과라이프니츠 같은 다른 지적 맞수들의 경쟁과는 달랐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뉴턴이 없었다면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고안했을 것이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샹폴리옹과 영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과학의 한 징표는 위대한 혁신가가 자신의 성과를 전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턴의 법칙은 공유 재산이다. 그 지식들은 뉴턴의 통제를받지 않는다. 달이 해를 언제 가릴지, 포탄을 성벽 어디에 맞힐지 누구나 뉴턴이 찾아낸 지식을 바탕으로 계산할 수 있다. 샹폴리옹은 딱히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수학은 무미건조하고영혼이 없는 것이라고 여겨 아주 싫어했다. 그러나 그가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채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을 경멸하고, 자신이 정확히어떻게 해서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열심히 설명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과학 진영의 일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근거 없는추측(그는 이 두려운 단어를 강조했다)을 하지 않고, 확실하고 어렵게 모은 많은 관찰에 의존했음을 자랑스럽게 천명했다."
1829년 6월, 샹폴리옹은 고고학의 역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축에 속하는 발견을 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거의 만들었다. 그는 와디알물루크(‘왕들의 계곡‘) 부근의 데이르엘바하리라는 유적지에서 비문을 읽다가(그가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사람이었음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놀랍게도 자신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왕이 언급된 것을 발견했다고 자신의 일기에 썼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문을 읽으면서 그들이 통상적인 파라오의 옷을입은 이 수염 난 왕을 언급할 때마다 명사와 동사가 여성형이었다는것이다. 여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는 그같이 기이한 것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최고의 조각상은 세계 미술의 보물이다. 아마도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핫셉수트의 얼굴(왕관을 쓰고 수염이 나 있다)에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길이 3.4미터, 무게 7톤의 화강암 스핑크스일 것이다. 수많은 조각들을 다시 짜맞추어 이루어진 그것은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방문객들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이 숨이 멎을 듯한 조각상은 3500여 년 전에, 현재의 위치에서 거의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 사정의 상당 부분은알 수 없는 영역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작은 글자 하나(‘T‘에 해당하는)가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 있음을 샹폴리옹이 우연히 보게 된 덕분이다.
예를 들어 랠프 월도 에머슨은 샹폴리옹이 성체자의 본질을 놓쳤다고 확신했다. 그는 샹폴리옹의 성과에 박수를 보냈지만(실제로 그는샹폴리옹이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괴테와 동급이라고 선언했다) 샹폴리옹의 위업을 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틀림없이 샹폴리옹은 고대 이집트의 "모든 일꾼들의 이름과 모든 기와의 가격을발견" 했지만, 이집트인들의 진정한 지혜는 포착하지 못했다고 에머슨은 꾸짖었다.
말하자면 샹폴리옹은 최초로 산술이론을 발표한 일부 초기 천재와 같은 위치였다. 이 명석한 학자에게 숫자를 주어 더하고 곱하고나누게 하면 그는 어떻게 계산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는 매번 자신이 맞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알 수 있지? 이런 상황에서 발견된 카노포스석은 뒤에 해답의 열쇠를 붙인 산술 교과서와 같은 것이었다. 이제 샹폴리옹을 직접 검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성체자로 된 <카노포스 칙령> 내용을 샹폴리옹의 방식대로 번역하고, 그 결과를 카노포스 그리스어 번역본과 비교했다. 일치도는 거의 완벽했다. 당시 한 학자는 이렇게 찬탄했다. 마치 고대 이집트인 하나가 갑자기 붕대를 벗고 일어나 우리와 이야기하고, 우리가 자기네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듯했다.
사제들은 길고 형식적인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영원으로 가는 암호를 발견한 그들의 어떤 지식에 따른 것이었다. 파라오들은 자기네무덤을 체스판과 사냥용 창으로 가득 채웠다. 내세에서의 오락을 위해서였다. 고깃덩어리와 술병도 넣었다. 천국에서 잔치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샹폴리옹 같은 불신자에게 그런 의례는 오래된 미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에 열렬하게 몰두했지만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진정한 아들로 남았다. 사후의 삶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샹폴리옹은 이집트인의 믿음을 영광스럽게 했다. 그의 작업은 깊숙하면서도 얽히고설킨 진실을 입증해냈다. 불멸해야만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너무도 짧은 생애 동안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죽은 언어와 파묻힌 문화를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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