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내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독립하고싶었다. 나는 내 귀여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 집 문을쾅쾅 두드리게 하고 싶었다. 조카애들보다 작고 위축된 내 애들의 차임벨 소리를 가려내는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올케와 나는 마주 보고 눈을 찡긋했다. 나는 올케 편이었다.
나는 이웃사촌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이구동네가 싫었다. 도대체가 남의 집 일에 너무 관심들이 많았다. 뉘집 아들이 일류 대학이나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면 서로 제 일처럼 신이 나고, 떨어진 집엔 심란한 얼굴로 위로를 하러 몰려가고 노인네들 생일엔 서로 청해서 먹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남의 집 내막을 알아내서 풍기고 흉을 보는 데도 선수들이었다.

그럭저럭 이삿날이 가까워졌다. 어머니는 새삼 묵은 근심을들춰내서 또 걱정을 시작했다.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된 세대간의 그 독립성이란 게 암만해도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혼자서 살림을 할 수 있다는 나의 독립성조차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이 와서 살림 참견을 하자니 사위고 딸이고 그래주십사고 청하지도 않는데 자청한다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어머니는 우리 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니 매사를 좀가르쳐주고 도와주라고 그 여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머니의부탁이 아니더라도 나는 단박에 그 여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여자네 살림살이는 어찌나 알뜰하고 아기자기한지 꼭 동화 속에 나오는 방 같았다. 나는 꼭 그 여자네 방처럼 꾸미고 싶었다. 나는 꽤나 수줍어하면서 가구나 실내장식에 대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자는 조금도 염려 말라고, 이 아래 상가가구점이랑 커튼센터랑 없는 게 없다고 일러줬다. 아파트란 참 너희 올케 말 짝으로 편한데로구나 하며 어머니까지 좋아했다.

서양 여자들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듯이 이곳아파트의 여자들은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순전히 남을 닮기위해 다이어트를 했다. 나는 이런 닮음에의 싫증으로 진저리를 쳐가면서도 철이네만 있고 우린 없는 세탁기를 위해 콩나물과 꽁치와 화학조미료와 철이 엄마식 요리법만 가지고 밥상을 차리고, 철이 엄마는 내가 살림 날 때 올케한테서 선물로받은 미제 전기 프라이팬을 노골적으로 샘을 내더니, 오로지그녀의 요리법 하나만 믿고 형편없는 장보기를 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이 문제였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어린 남매는 이른 저녁을 먹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9동 음대생한테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금요일 저녁에서 후텁지근하고 아슬아슬한 간음의 냄새를 맡았다.
희열과 초조로 통통한 몸뚱이가 거의 파열할 듯이 불안해뵈는 금요일,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의 그 여자의 걸레쪽 같은 허탈, 일요일부터 다시 번뜩이기 시작하는 그 기분 나쁜 희열-, 도대체 의심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금요일이 되었다. 나는 희열은커녕 뜻하지 않은 불안으로안절부절을 못했다. 나는 내 복권에 대해선 전연 관심이 없고다만 철이 엄마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 것이 당첨될 리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는데 철이 엄마 것은 꼭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같은 무기수 중 하나만 이유 없이 석방되는것을 봐야 하는 남은 무기수의 심정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이런 고통은 철이 엄마쪽에서도 마찬가지였던가보다. 우리는 핏발 선 눈으로 서로 마주 보는 데 어지간히 지쳤다. 우리중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게 복권을 살 때부터 네 것 내 것 없이 같이 사서 아무거나 당첨이 되면 반씩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고 두말없이 이에 합의를 보았다

나는 죽고 싶도록 비참한 심정으로 그애들에게 그걸 물을수밖에 없다. 그애들은 그런 내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깔깔대며 "엄마, 내가 형이야" "응, 그래 난 동생이구" 한다. "너희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내가 모르겠는 걸 쉽게 알고 있는 그애들이 수상쩍은 나머지 이런 멍청이 같은 질문까지 하고 만다.

나는 지쳐빠진 나머지 그까짓 형 아우쯤 뒤바뀌면 어떠랴,
한 뱃속에서 동시에 생명이 비롯되어 나란히 한자리에 앉았다가 다만 세상 밖에 누가 몇 분 먼저 나오고 나중 나온 걸로 결정된 형 아운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고 눙쳐 생각하려 든다.

나는 그가 불쌍하고 불쌍해서 가슴을 조이며 내 앞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이 좋았다. 나는 그가 불쌍해서,
서럽도록 불쌍해서 좋았다.

뭔가 저질러야겠다는, 꼭 저지르고 말리라는 준비태세로 온몸이 조바심했다. 마치 오랫동안 맛대가리 없는 배합사료로사육돼오던 들짐승이 어떤 계기로 촉발된 싱싱한 야성의 먹이에 대한 식욕으로 이빨이 견딜 수 없이 근질대듯 내 온몸이 이빨이 되어 근질근질 조바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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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가 들어오고 있었다. 딴 계집애들처럼 나폴대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굽이 십 센티나 될 것 같은 구두를 신고 모델처럼 또박또박 우아하게 걸어들어왔다. 한때 며느리였던 여자와마주 앉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끼리 합석하는 것보다 더 어색했다.

나는 아기의 이런 울음소리를 듣자 느닷없이 가슴에서 젖줄이 넘쳐, 정말로 펑펑 넘쳐 옷섶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것처럼느끼며 이런 풍요한 젖줄과 목마른 아기를 굳이 떼어놓는 어머니에게 격렬한 적의마저 품었다.

점심시간은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워낙 몹시 운 끝이라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흑흑 느끼느라 김밥 하나를 제대로 못 넘겼다. 내 조그만 허영이 불쌍한 조카의 일학년 첫 소풍의 추억을 이렇게 슬프게 얼룩지워놓고 만 것이다.

버스가 강원도 지방으로 접어들자 산을 휘감은 비탈길이 많아 헉헉 숨이 차했지만 그곳은 맑은 날씨여서 훨씬 덜 불안했다. 진부에 닿은 것은 서울을 떠난 지 여섯 시간 만이었다. 거기서 유천리까지 갈 버스를 기다릴 동안 요기를 하기 위해 국밥집에 들렀다.

더위와 악취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한잠도 못 잔 나는 주인여자가 일어난 기척을 듣고 따라 일어나 그동안 신세가 많았다고 치하도 하고 자기소개도 했다. 주인여자는 시골 여자답지 않게 냉담하고 도도하게 "신세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건 겸사의 말이아닌, 돈 받고 하숙 치는 관계일 뿐 신세를 주고받는 관계가아님을 강조하는 말투였다.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니었다. 훈이를 키우는 일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러이러하게 키우리라는 새로운 방도를전연 알고 있지 못하니, 후회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세상은 그대를 두고 남의 글 애써 읽고 이를 쓰고 가르치기에 삶을 탕진한 사람이라 하는데 사실이냐. 그렇다면 필시 그속에는 작가 박완서의 글도 들어 있되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있지 않겠는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 점이 조금 궁금하다. 멍석을 깔아놓겠으니 한번 말해보겠느냐.
원고청탁서치고는 조금 유별하긴 해도 이에 내가 응한 것은오직 <대학신문>이었기 때문.

마치 겁쟁이가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가볍게 건드린 것같이짧게 살짝 울리는 차임벨의 ‘딩‘ 소리를 대가족의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흥겨운 소란 속에서 나는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어렵다. 나는 그 일이 끔찍하다. 그 시간의 이 집안의 시끌시끌함을 무엇에 비길까.

내가 반했을 당시의 그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좀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번번이 대문간에서 잠깐 낮을 가린다. 그이는그런 나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리 방으로 걸어들어간다.

이제 늠름하게 자란, 이목구비가 수려한 내 아들들을 보면꼭 거저 얻은 한 쌍의 보물 같다. 나는 내 아들들보다 더 잘생긴 얼굴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으므로 내 아들들이 쌍둥이라는 데 지극히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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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이혼에 따른 전반적인문제, 심리적 후유증, 법적인 문제, 재산분할, 가족의 역할 등등. 할 말을 못다 해서 잠시 멍하고 있다가 안 하길 잘했다고생각을 고쳐먹었다.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건 질색인 시누이였다. 서두만 듣고도 머리를 흔들고 끝까지 들으려고도 안 할 것이다. 남들의 통속적인 속내에 전혀 호기심 없는 태도 자체가도덕적인 해결책보다 훨씬 도움이 될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파출부 다음으로 해야 할 오늘 일에 대한 부담이 한결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쿨하게 쿨하게. 바로 그거야.

시누이는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내놓은자식 취급당하니 살 것 같다고 했다. 넉넉한 위자료와 아이들양육권까지 챙긴 그녀는 자식 뒷바라지도 잘해 좋은 외고도보내고 명문 대학도 보냈다. 곧 유학을 보내거나 결혼만 시키면 완전 프리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도 자식이나 남의이목에 신경쓰며 사는 건 아니었다. 동창들 사이에서는 직접적으로나 한두 다리 건너서 알 만한, 꽤 괜찮은 유부남들하고염문도 잘 뿌리고 헤어지기도 잘했다. 아마차버렸을 것이다.
찼든 차였든 임자 있는 남자와의 염문에 지저분한 뒷소문이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그 비결을 물어보면 ‘쿨하게‘ 였다. 만병통치, 그놈의 쿨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아무튼 부러운 능력이었다.

그녀답지 않게 가벼운 설교까지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안 하던 짓이었다. 그거 하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느냐는 가벼운 질책은 시누이 노릇이라기보다는 우정에 가깝다.
시누이로서보다는 친구로서 그 여성이 고맙고 의지가 되는사실이다. 그러나 나도 고분고분한 성미는 아닌데 처음부터도 아니고, 시집살이 무섭던 옛날에도 고방 열쇠 물려받을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시어머니한테 꼼짝 못하고 쥐여 살게된 사정은 내가 생각해도 하도 치사스럽고 한심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남편은 어머니의 위장 가난 때문이었는지 한때의 시대정신때문이었는지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의 변두리를 돌다가 군대갔다 와서 간신히 취직한 회사에도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그래도 취직하길 참 잘했다 싶은 건 나에게 청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아직까지도 가끔 말하는 걸 보면,
이 남자가 나하고 결혼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건 확실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유를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게 돈의 힘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팔순이다 된 노인에게 그렇게 많은 사교모임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기적인 것만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되는 것 같았고, 친구네 혼사 생일 입학 학위취득 등 축하를 핑계로 모이기도 하지만 언짢은 일도 위로한답시고 꼬박꼬박 챙겼다.

희수 해에는 그 비슷한 모임이 몇 번 더 있었다. 희수니까.
나도 될 수 있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허울뿐인 맏며느리 노릇에 충실하려고 했다. 4.4모임 외에는 다들 L호텔보다는 싼데서 했지만 여러 번 치르는 걸 보니 그게 다 내 주머니에서나간다면 수월치 않은 액수일 테니 마냥 좋은 얼굴만 할 수는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달이 시어머니 아파트로 시누이 말 짝으로 파출부나가게 된 경위가 대강 이러했다. 절대로 자식 신세 안 지고사는 잘난 노인들의 잘난 노인다운 이 착한 일을 내가 미력이나마 - 한 달에 한 번이니까- 거드는 일을 영광스러워는 못할망정 파출부라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줄 안다. 그러나그날이면 아침부터 심사가 꼬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신역이고돼서는 절대 아니다.

배불리 잡숫고 나서 남은 음식은 싸달라고 했다. 어떤 분은잡채를, 어떤 분은 야채전을, 혹은 북어구이를 싸달라고 하면서 손님 치르고 나면 남은 음식이 제일 곤란하잖아, 이렇게 생색을 냈지만 집에 기다리고 있는 영감님이 있는 사람이 주로싸달라는 것 같았다. 영감님이 계신데도 남은 음식 차례가 안간 이에게는 넌 가다가 김밥이나 족발이라도 사가지고 가렴,
일러주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제 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그런다고 당장 나오긴 좀 뭣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제야곗돈들을 모으다 말고 누가 느닷없이 말했다.
야, 그 배고프던 그 시절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드나드는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게짧고 나풀나풀한 치마를 입고 있다. 커피빈 안쪽 벽은 완만한둥근 곡선인데 선을 따라 턱을 만들어놓아 걸터앉을 수도 있게 꾸며놓았다. 동성끼리나 사무적인 관계로 보이는 남녀만테이블에 마주 앉고 사귀는 사이로 보이는 커플은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그쪽에 가 앉아 있다. 남자 무릎 위에 올라앉은 계집애도 있고, 남자 목에다 제 팔을 감고 있는 아이도있다. 그 자리는 남녀의 친밀한 신체 접촉을 위해 꾸민 자리인듯했다. 근데 가만히 보니 상대를 주무르고 있는 건 주로 여자고 남자는 수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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