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딸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아무것도 덧붙일 필요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천진하게. 투명한 햇살에 조금씩 눈이 녹아내리는 새하얀 산을 향해 달려가는 검은 개를 바라보다 그가 딸쪽으로 시선을 다시 돌리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딸의시선이 그를 맞이했다. 그들은 그렇게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정한 공모자들처럼. 설산 저편의 구름 사이로 곧 사라져버릴 희미한 한 줄기의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에게는 집도 차도 아내도 있었고, 경기도권 신도시이사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도 있었지만 무언가가 틀림없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 구멍은 갈수록 커졌다. 손을 쑥 밀어넣을수록 자꾸자꾸 커지는 어둠, 깊이를 알 수 없는 버려진동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이런 말은 그들이 그저 마련했기에노력하지 않았기에 가난하게 죽는다고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하지만 마련하지도 않을뿐더러 몸을 갈아가며노력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죽는 것을나는 너무나도 많이 봤다.
자식들은, 특히나 궁하게 자란 자식들은그저 부모의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하지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다.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