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지팡이도 짚지 않았고 건강한 사람의 걸음걸이로 내려온다. 손에는, 먹을 것이라도 들어 있는지 작은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다.
목구멍에서 슬픔이 차올랐다. 어머니가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곧 네 자식 중에 하나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받을 충격과 슬픔이 이사쿠의 가슴을 후벼팠다.
이사쿠는 아버지가 한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배를 바다 쪽으로 돌려 물결을 타고 먼 곳으로 가버리고싶었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체불명의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사쿠는 해변을 향해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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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나무를 베고 토대를 만들어라?"
어머니는 일어나 산길 방향으로 돌아갔다.
이사쿠는 집으로 가서 술이 가득 담긴 통과 연장을 챙겨 숲속으로 돌아왔다. 나무줄기를 도끼로 친 후에 나무를 쓰러트리고 손도끼로 가지를 쳐서 바위 옆에 쌓아두었다. 어머니는땅에 나란히 늘어놓은 나무들 위에 쌀가마를 올려두었다. 먹다만 여덟 번째 쌀가마니까지 전부 운반하자 해가 저물었다.
이사쿠는 짚을 엮어 만든 비옷과 멍석으로 쌀가마니를 덮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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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쿠도 기치조를 따라 해변에서 길 쪽으로 올라갔다.
집에 들어서자 화로에 걸려 있던 냄비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동생들은 화롯가에 앉아 있었다. 이사쿠는 멜대(양끝에 물건을 걸어서 어깨에 메는 데 쓰는 긴 나무-옮긴이) 양 끝에 물통을 걸고 근처 우물에 가서 물을 길었다. 바다가 환해지기시작했고 하늘 한편에서는 여전히 별이 희미하게 보였다. 집에 돌아와 화롯가에 앉아서 그릇에 담긴 죽을 떠먹었다. 어머니에게 무사히 소금 굽기를 마쳤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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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분화할 때 배출되는 물질의 양(量)은 상상이가지 않을 정도로 막대하다. 도시와 도로가 깨끗이치워졌다는 말은 당연히 재와 경석을 어딘가로 치워버렸다는 뜻이다. 그곳으로 안내받았다. 언덕 기슭의 기다란 공터에 재가 섞인 경석이 산더미처럼쌓여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경석부터주먹만 한 것까지 있고, 어떤 것은 손에 쥐면 간단히 부서지고 또 어떤 것은 단단하다. 옅은 악취를 풍겼고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경석이 쏟아질 때 어떤 소리가 났을지 궁금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소리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테고, 들렸다 해도 듣지못하는 상태였을 거란 생각에 굳이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다양한 소리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는 소리였을지 궁금했다. 아마 소름 끼치는 소리였겠지만, 자연이 하는 일이니 의외로 그렇게 무섭지 않은소리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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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에서 사방용 테트라포드 이야기를 듣고 여느때처럼 니가타의 해안을 막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테트라포드를 연상한 이유는 수긍이 되지만, 왜테트라포드가 이토록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의문이 다시 생긴 점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물건이라 할 만한 물건을 쌓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차곡차곡 쌓은 것은세월과 나이뿐인데 그것은 내 의지로 쌓아온 것이아니라는 쓸쓸함이 있다. 화장지 교환 장수에게 폐신문을 잘 묶었다고 칭찬받았을 때까지는 좋았는데어설피 트럭을 배웅한 탓에 연상이 일어나 왠지 묘하게 숙연해져서 앙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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