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평온한 시기에 법치주의 체제만 갖추면 되는 국가라면 이런 헌법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건은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실의 정치는 규칙대로 절차를 밟아서 작동될 수 없었다. 고심해서 만든 정치제도는 오히려 비합법 수단인 쿠데타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쿠데타만이 현실에정치적 보장을 제공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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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정오가 가까운 시각, 프러시아군 보병이 켈레르만군이 포진한 발미 Valmy 언덕 앞에 산개했다. 포격이 시작됐다. 프러시아왕은, 군주가 중심을 잡고 있지 않은 군대는 대포소리만 들어도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패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상퀼로트의 군대는 패주하기는커녕 오히려 투지를 더욱 불태웠다. 켈레르만은 칼 끝에 모자를 걸고 흔들면서 ‘프랑스 국민 만세!"를 외쳤다.
외침이 대대에서 대대로 퍼져나갔다. 프러시아 보병은 전진하기를주저했고, 브룬슈빅은 공격이 실패로 끝났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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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모두 봉건제와 절대왕정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주의의 도입 · 발전이 시도될 경우 체제모순이밀려와 생산자 대중의 어깨를 짓누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봉건제와 자본주의라는 이중의 압박이 농민과 도시 하층민들로하여금 들고 일어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급격한혁명을 피하기 위해 절대왕정을 점진적으로 개혁하려던 계몽가적인운동 자체가 민중의 혁명적 에너지를 불러내 혁명의 예행연습 같은것을 몇 번이고 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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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의지에 토대를 둔 강력한 국가권력을 구상한 루소는 그것을 통해 현실에서 무엇을 추구하려 했을까. "사회에서는 어느 한사람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불행이 된다." "다수자는 항상 소수자에게 희생당하고, 공중(公衆, 공공)의 복리는 개인의 이익에 희생당한다." 다수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 속의 자연인인 농민 대중이다.
농업은 ‘인간이 종사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가장 정직한, 가장 유용한 것이며, 따라서 가장 고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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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바로 그곳에서 눈물에 얼룩진 침묵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벽에 이마를 기댔다. 그리고 이 돌 속에 숨어있는 익명의 슬픔을 진정시켜주고만 싶은 마음으로 손바닥에 온 힘을 실어 벽을 지그시 눌렀다. 끝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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