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둡다. 밤의 첫 커브가 아닌 마지막 커브, 나의 시간이다. 곧 이 필연적인 어둠에서 빛이 솟을 것이다. 나는, 내가좋아하는 표현을 쓰자면 변덕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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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신비를 풀어나가는 도중에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나는 첩스의 대 피라미드를 응시한다. 다만 이번에 나는 엄청난 모래바위 더미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를, 아니 실제로는 몇몇 아이디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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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이지 않는 힘은 신성하며 신화적이지만, 항상 현존하고 있다.
과학은 그 힘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중요치 않은 것처럼 얼버무리려애쓰는 잘못이 있다. 진정한 ‘만물 이론‘은 세 개의 모든 현실 수준에서 같은 힘과 안정감으로 사는 기술을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성자들은 바로 그런 점까지 도달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깨달음이다.
이것은 신의 신비가 세상의 신비와 똑같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인간적인 마음도 결코 상상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 예수의 약속은 우리가 사는 동안 실현되어왔다. 실제로, 저명한 덴마크물리학자인 닐스 보어가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이상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이상하다"
고 선언했다. 우리는 신비가의 주요한 믿음 중의 하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신에 의해서 창조되어서어딘가에서 실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면 또 다른 세상에실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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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우리는 영적 여정 전반에 대한 윤곽이 보인다. 신을 펼쳐내는 것은 뇌가 자신만의 잠재력을 펼쳐내는 능력에 의해 가능해지는 과정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경이로움·사랑·탈바꿈 · 기적이 내재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간절히 바라서가 아니라 그것들이우리의 타고난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뉴런은 이런 고귀한 염원들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진화해왔다. 뇌의 모태에서 새롭고 유용한 신이 솟아 나온다. 좀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매일 따라갈 흔적을실마리로 남겨 놓는 7가지 형태의 신이 솟아 나온다.
우리가 왜 신을 알려고 애써야 하는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기적일 것이다. 나는 창조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성의 궁극적인 약속이다. 당신이 자기 실존에 대한 작가, 즉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이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약속이다. 당신의 뇌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위해 이 일을 수행하고 있다. 양자영역에서 당신의 뇌는언제든 적절한 반응을 선택한다. 우주는 어찌할 수 없는 혼돈이다.
그것은 이치에 맞게 해석되어야 하고, 암호가 풀려야 한다. 그러므로두뇌는 현실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일곱 개의 반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양자영역이 바로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는 곳이다.
신을 알려면 당신은 의식적으로 이 여정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자유 의지의 목적이다. 표면적인 삶에선, 우리는 훨씬 더 하찮은 선택을 하고선 그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인 체한다. 실제로는, 당신은자신이 인식하는 세상에 대해서 7가지의 근본적인 선택을 끊임없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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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데에서 나아가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기만의방이 가지는 의미는 더 각별해진다. 메리 올리버는 말했다. "장작은 고독을 요한다"(메리 올리버, 『긴 호흡』). 덧붙이자면 고독은장소를 요한다. 휴대전화를 꺼놓을 수 있고, 창문을 닫아둘 수있으며,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장소실생활과 최대한 먼 장소, 영감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침잠하고몰입할 수 있는 장소.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리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나의 서사를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나에대해 말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한 번 살아내기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뭉뚱그리지 않기.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
분노, 슬픔, 상실, 결핍을 다시 한 번 겪어내기. 그것은 나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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