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쿠도 기치조를 따라 해변에서 길 쪽으로 올라갔다.
집에 들어서자 화로에 걸려 있던 냄비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동생들은 화롯가에 앉아 있었다. 이사쿠는 멜대(양끝에 물건을 걸어서 어깨에 메는 데 쓰는 긴 나무-옮긴이) 양 끝에 물통을 걸고 근처 우물에 가서 물을 길었다. 바다가 환해지기시작했고 하늘 한편에서는 여전히 별이 희미하게 보였다. 집에 돌아와 화롯가에 앉아서 그릇에 담긴 죽을 떠먹었다. 어머니에게 무사히 소금 굽기를 마쳤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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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분화할 때 배출되는 물질의 양(量)은 상상이가지 않을 정도로 막대하다. 도시와 도로가 깨끗이치워졌다는 말은 당연히 재와 경석을 어딘가로 치워버렸다는 뜻이다. 그곳으로 안내받았다. 언덕 기슭의 기다란 공터에 재가 섞인 경석이 산더미처럼쌓여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경석부터주먹만 한 것까지 있고, 어떤 것은 손에 쥐면 간단히 부서지고 또 어떤 것은 단단하다. 옅은 악취를 풍겼고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경석이 쏟아질 때 어떤 소리가 났을지 궁금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소리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테고, 들렸다 해도 듣지못하는 상태였을 거란 생각에 굳이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다양한 소리 가운데 어떤 부류에 속하는 소리였을지 궁금했다. 아마 소름 끼치는 소리였겠지만, 자연이 하는 일이니 의외로 그렇게 무섭지 않은소리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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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에서 사방용 테트라포드 이야기를 듣고 여느때처럼 니가타의 해안을 막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테트라포드를 연상한 이유는 수긍이 되지만, 왜테트라포드가 이토록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의문이 다시 생긴 점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물건이라 할 만한 물건을 쌓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차곡차곡 쌓은 것은세월과 나이뿐인데 그것은 내 의지로 쌓아온 것이아니라는 쓸쓸함이 있다. 화장지 교환 장수에게 폐신문을 잘 묶었다고 칭찬받았을 때까지는 좋았는데어설피 트럭을 배웅한 탓에 연상이 일어나 왠지 묘하게 숙연해져서 앙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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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굵은 뿌리 사이로 얼핏 적갈색 빛이 보였다.
살펴봤지만 어두웠다. 그러나 보는 위치에 따라 언뜻 빛이 보였다. 어디선가 굴절되어 들어온 빛 같았다. 살짝 손을 넣어 더듬어보고 깜짝 놀랐다. 희미하지만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따뜻했다. 게다가 축축이 젖은 바깥쪽만 봤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 안은 보송보송했다. 숲 전체가 젖어 있는데도 말이다. 고목의 중심부로 생각되는 부분은 새로 자란 나무의 뿌리 아래서 보송보송했고온기를 품고 있었다. 손끝이 비에 젖어서 차가웠기때문에 반대로 있을 리 없는 온기와 확실히 느껴지는 보송함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손이었다면 감지하지 못했을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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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날 것이고당신도 떠날 것이다이것이 우리의 공통점이다그 밖의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나는 지금 살아남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소멸로부터 살아남기가 아니라봄까지 슬픔으로부터 살아남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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