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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264 : 아름다운 저항시인 이육사 이야기
고은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19년 7월
평점 :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絶頂)」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나는 한 청주에 있는 한 학원에서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처음 했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입시교육이라는 것을 받는다는 것 말이다. 중학교 때 교육은 단순히 27명의 친구들 중에서 변별력을 가리는 교육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때 상당히 아닐하게 공부를 했고, 또 공부는 진리 혹은 즐거움을 찾는 하나의 길이라는 어리숙한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말이다.
그래서 처음 받아본 입시 위주의 교육은 나에게 상당히 맞지 않았고 어려웠다. 지금도 많이 팔릴 개념원리의 기본 문제를 푸는데도 끙끙 거렸던 것 같다. 뿐만인가. 영어 문제를 푸는데 있어 문장은 왜 그렇게 길고 복잡한지, 영어 문법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물리는 무슨 공식이 그렇게 많고 유도된 문제가 많은지. 중학교 때와는 차별화된 교육, 그리고 그러한 교육을 선행해서 받지 못한 나는 고등학교 입학 직후부터 수능 모의고사에서 200점을 간신히 넘기며 아주 그냥 무너져 내렸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국어였다. 도저히 우리나라 말인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상적인 언어가 이렇게 복잡한지 안 것은 처음이었다. 비문학은 간신히 3문제를 풀면 2문제를 맞출까 말까 했고, 문학 부분은 3문제를 풀면 2문제를 틀렸다. 한심했다. 그리고 국어에 대한 나의 재미 또한 떨어졌다. 어디 문제를 푸는 재미 뿐이었겠는가. 아이에 해당 과목을 혐오하게 됐고, 별 볼일 없는 것을 배운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 가지. 그리고 깊이 뇌리에 박힌 몇 작품이 있었다. 그건 바로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였다. 그들의 시가 기억났던 이유는 단순히 짧아서 빨리 읽을 수 있다는 효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둘의 시는 그 짧은 그에서 느껴지는 기백 그리고 섬세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당시의 시대가 얼마나 엄혹했는지, 언어를 모르는 나에게 아주 선명하게 가르쳐 주었다.
윤동주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의 말루가 어떠했는지 나는 영화 <동주>를 보며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육사는? 감옥에서 죽었고, 그의 이름조차도 저항을 하기 위해 이육사로 바꿨는데. 그는 어떠한 삶을 살았나.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 <그 남자 264>를 신청한 것 이었다. 험혹한 시대를 살았단 문학인의 삶이 어떠한지,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시대를 풍미했는지, 그들이 느꼈을 다체로움 고통들의 향연과, 복잡한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이 책 <그 남자 264>는 그런 나의 욕망이 충실히 해소될 수 있는 책이어서 좋았다.
이욱사의 짧은 생애만이 아니라, 작가 고은주는 이육사의 가장 상징적인 삶의 여러 국면을 여러 층위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아마 이육사의 짧은 생애가 아닌, 그 짧은 생애에 들어있는 다양한 이육사들을 보여준 점이 이 책 <그 남자 264>의 가장 좋은 장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