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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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이모네 집은 어둑하고 낡았지만 제법 큰 저택이었다. 담장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수국이 핀, 협소한 듯 꽤 길고 깊은 정원이 있었다. 마당도 따로 있고 복층 구조의 내부까지 있는 그냥 문을 열고 들어서기만 해도 이야기가 쏟아 질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그 집은 여전히 그대로이겠지만 이모네는 더 이상 그 곳에 살지 않는다. 그저 이제는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외삼촌과 이모들과 외사촌들이 옹기종기 모이면 오빠 방에 불을 끄고 둘러앉아 막내 외삼촌을 조른다. 귀신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지금처럼 티비에서 영화에서 세련된 공포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그런 매체가 드물었었다.

외삼촌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지금 생각하면 다 헛웃음이 나오는 과장도 많았지만 손에 땀을 쥐고 마음을 졸이면서 어둠속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들었었다.

 

나는 조선희 작가가 신작을 발표하면 당장 사는 열혈 독자 중 하나일 것이다.

피곤한 퇴근길의 지하철에서도 한 권을 집중해서 읽어버릴만큼 그의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 때 그렇게 두근거리며 듣던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난다.

나는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무섭지 않다. 밤중에 혼자 앉아 읽어도 괜찮을 만큼 튼튼한 담력을 가지게 됐다.

어린시절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그의 책을 읽으며 떠올리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것이 그다지 순수한 그리움만은 아니다.

침을 꼴딱 꼴딱 삼키며 책장을 넘기는 흥미진진함은 이번 모던 아랑전에 속해 있는 <금도끼, 은도끼>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게 됐다.

이게 뭘까... 무섭지도 않고 복잡하기만 한 이야기.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던 어느 순간 밀려드는 씁쓸함. 그럴 수도 있겠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편백나무 숲 할머니처럼.

"나는 네 이야기가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런데 그렇게 우는 네가 더 무서워서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나는 이제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무섭지 않다. 무서운 건 이 이야기들의 서늘한 슬픔이지 않을까 싶다.

이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의'여름밤'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날 밤 처럼 순진무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도 다정한 친척들의 순한 마음도 깜깜한 밤을 밝혀주던 별빛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가끔 기분좋게 간질이던 산들바람도 그저 아쉽고 그리울 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책'을 읽는 나는 이미 조금은 튼튼해진 담력을 가진 어른이고 그때는 몰랐던 이면의 이야기들마저 읽어냄과 동시에 나 자신을 읽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래도 이야기책이 주는 어느 여름밤의 심상이 나는 항상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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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남자
신이현 지음 / 이가서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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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현을 꽤 좋아한다. 신이현의 소설은 특이하고 또 지리멸렬할 뿐 아니라 대체로 충격적이거나 가끔 변태적이기도 하다. <숨어있기 좋은 방>이 첫만남이었고 장정일과 결혼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런 기분이다. 고속터미널의 더러운 여자 화장실 구석탱이에서 노골적인 광고를 봤던 기분, 거기다가 일반행 고속버스를 대여섯 시간 타고 지루한 여행 끝에 먼 타지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겨울이 될듯 말듯한 저녁에서 밤사이의 어중간한 그 시간에... 다름 아닌 장기매매 알선, 유흥업소 종업원 모집(일과 숙식제공), 무모증으로 고민하십니까?, 파출부 대모집, 주부 부업 등등등등...

더럽고 불쾌하고 꾀죄죄한 기분. 몇시간 참고 참은 오줌보를 쥐고 뛰어나가 주렁주렁 짐을 나름 과학적으로(?) 더러운 문짝에 붙은 고리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서 급하게 바지춤을 내리고 앉아서 시원하게 싸고 나와도 시원하지 않은 그런 기분... 그냥 교양있게 말하지 않아도 똥구덩이에 빠져서 암모니아 냄새로 정신이 헤롱거리는 그런 기분이 든다는 거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이어서 나온 비슷한 그러나 역전된 상황의 <잠자는 숲속의 남자>.

신이현의 책은 지금 구하지 그렇게 쉽지 않다. 대부분 절판이 많기 때문이다. 발품을 수고스럽게 팔아줘야 읽을 수 있는데 사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잠자는 숲속의 남자>를 나는 단숨에 읽었고 그만큼이나 단숨에 나는 너무 슬퍼졌다. 눈물이 쭈륵 흐를 정도로. 삶의 얼굴은 사실 너무 비참하다. 이 개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웃어라, 긍정적이어야 한다,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라, 사랑하라, 용서하라, 기타등등의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한편으로는 자기수양으로 개개인의 자존감 형성에 영향을 주는 캠페인을 펼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교묘히 이용해서 노동력을 좀 더 착취해가려고 지랄을 떤다. 하지만 삶의 본연은 결국 비루하고 서울역이나 더러운 공중화장실이나 구역질이 날 것같은 쌩비린내 풀풀 나는 그런 더러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외. 롭. 다.

강변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있는 단어 그대로를 담백하고도 덤덤하게 발음할 뿐이다. 의연하게도 아니다.

외로워서 결혼을 한다. 연애를 한다 변명을 하지만 외롭다. 그것은 원죄다.

 

어느 비 오는 날 술집 처마 밑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기생오라비처럼 쭉 빼입고 서서 초조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꽁초는 비에 젖어 더 이상 연기도 나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는 장롱 안에 든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고 향수를 듬뿍 뿌린 꽤나 멋있었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찌그러진 성냥갑처럼 볼썽사나웠다. 젖은 담배를 던지다 그 앞에 선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비틀거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줄곧 기다려온, 버림받기 직전의 연인을 만난 것 같은 미소였다.

나는 남자를 데리고 와 뜨겁게 데운 술을 한잔 주었다. 누구라도 나를 애인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그는 뜨거운 술을 마신 뒤 양복저고리를 벗었다. 앙상한 어깨뼈가 드러나는 낡은 와이셔츠가 나왔고 바지를 벗자 궁둥이 부분이 너덜너덜한 사각팬티가 나타났다. 그러나 구두만은 어디서 훔쳐 신은 것처럼 번쩍거렸다. 그는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은 채로 나에게 다가와 가장 두근거리는 연애의 한순간을 재현해 주었다. 그런 뒤 그는 벗어놓은 후광들, 양복과 셔츠를 입고 사라졌다.

그리고 끝이었다.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이상 외롭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남자는 누구라도 자신을 애인으로 생각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리의 아담, 거리의 천사다.

어느 날 당신 눈에 전봇대 뒤에 구부정하게 서서 수상하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 혹은 사람 많은 역  광장에 꿈쩍도 않고 혼자 서 있는 남자, 혼자 캄캄한 도로에 서서 주머니 속에 든 술병을 꺼내 한모금씩 마시며 추위를 달래는 남자, 그런 남자가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이 몹시 외롭다는 신호다. 그럴 때는 주저 말고 그 남자에게 미소를 지어보라.

그 남자가 당신에게 무슨 위험한 선물을 줄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는 아주 귀엽고 상냥한 남자다. 그는 먼저 당신의 마른 입 안에 흰 각설탕을 넣어줄 것이다. 그런 뒤 그 설탕을 녹일 커피를 마시게 할 것이다. 뜨거운 커피가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설탕은 작은 모래 언덕처럼 허물어지면서 당신 혓바닥 위로 흘러내릴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을 설탕을 가장 맛있게 먹는 한 가지 방법을 안 것에 대해 조금은 위로를 받고 기분 전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이고 끝이다.

이 이야기는 안주머니에 술 한 병과 면도기, 빗을 꼽고 오늘도 어느 벽에 기대서 있는 그 남자에 대한 것이다. 행복한 당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눈에도 행복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입 안이 너무 바싹 말랐거나 오랫동안 모래만 씹고 살았던 이라면 문득 그가 보일 것이다. 그러면 부탁하건데 망설이지 말고 그를 따라가보라. 짤막한 여행을 끝낸 뒤 먼 하늘을 보며 아, 이제 좀 살아봐야겠군, 하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2003년 11월 신이현>

 

 성매매에 관한 불쾌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아니다. 책의 전반에 흐르는 절묘한 믹스앤매치는 더러움과 순결함, 슬픔과 행복, 사랑과 증오 육체와 정신 등의 것들이다. 어울리지 않으나 어울리기도 하는 것들.

 

육체와 정신, 정신과 육체. 그것은 다르고 같은 이름이고 인간의 정신은 메마르고 육체 역시 메마르고 그래서 더더욱 슬프고 그래서 외롭다는 것이다.

 그 메마름에는 비싸게 카드로 팍팍 긁어 산 수분 앰플이니 수분 엣센스니 수분 마스크니 수분 크림이니 그런 따위의 종합셋트를 사다 모아 피부에 때려 바를 수 있는 응급조치도 없다.

 

원죄를 떠안고 사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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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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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신작을 사두고서 이제야 읽었다.

역시 유감이다...

김영하는 언제나처럼 흥미진진하고 치밀하고 재밌다.

또 한편으로는 무미건조하고 교활하다.

김영화 소설은 은밀하고 차갑고 또 읽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도도함이 있다.

소설가와 이야기꾼이 같은 맥락으로 쓰인다면야 말이 달라지겠지만

김영하는 이야기꾼까지는 가능하나 소설가는 아닌것 같다.

왜 이렇게 김영하 소설은 보면 볼수록 씁쓸한가.

그는 대단한 노력가이고 세속의 명예를 얻었고 영리한데다 세련됐다.

그는 나름 좋은 학벌과 넓은 오지랖으로 모든 매체를 섭렵하는데다가 나름 어얼리 어답터적은 소설가 분류에 속하다보니 늘 새롭다. 요즘은 교수까지 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느낌을 얻을 수가 없다.

그의 소설은 인터넷에서도 흔히 얻을 수 있는 재미만 있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어떤 반짝거림도 없다.

유감이다 김영하.

한동안은 그의 소설을 읽고 싶지 않다.

그의 소설에서는 영리한 주인공들이 가득하고 치밀하게 얽혀진 서사가 있지만

배움도 느낌도 얻을 수 없고 여성인 독자로서의 모멸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가끔 절로 욕이 나올만큼.

영민한 주인공의 말상대가 될만큼 잡학 다식하거나 그보다 더 차갑고 오만하지만 한편으론 어리석지 않으면 대부분 한심하거나 헤픈 여자 주인공들만 나오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설마설마 했던 그놈의 구멍동서까지 참았는데... 퀴즈쇼는 못참겠다.

 

소설에 대한 순결주의를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동안 김영하를 유심히 봤다. 아니 굳이 그러지 않으려해도 그는 주목받는 소설가였다. 단연.

그런데 요즘은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싶다.

김영하의 추천사를 보자면 김영하는 분명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꾼들을 좋아하나보다.

소설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설이라면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참 피곤하다. 사는 건 참 피곤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그렇다.

외로움은 이제 그림자이자 친구이고 그 누구보다도 친근해졌다.

나는 점점 아무도 믿지 않게됐고 어떤 일에든 조금씩 무감각해져간다.

행복은 물거품 같이 그 순간이 언제였나 싶을만큼 찰나의 반짝임만 남긴다.

아프고 슬프고 상처받고 때로 모욕을 듣는다.

그래도 나는 일상의 시계를 맞춰놓고 '사는' 사람이다.

 

피곤한 소설은 읽고 싶지 않다. 김영하는 당분간 사절이다.

나는 서울밤하늘에서 어떤 별빛도 기대하지 않는다, 어떤 대단한 연애나 사랑이나 명예도 내게 하늘에서 뚝 떨어져 주질 않으리란걸 안다. 하지만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볼 수 없는 별빛과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과 사랑 따위들이 그 속에서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어서다.

그게 때로는 지독한 슬픔이거나 가난이어도 연민을 느낄수 있다면 좋겠다.

이렇게 아둥거리며 살아도 나도 사실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걸 증명받고 싶다.

적어도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있어도 꿈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악을 쓰며 내뱉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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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최재경 지음 / 민음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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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의 <플레이어>. 최재경은 잘은 모르겠지만 프로필을 보아하니 공일오비의 작사가였다고 한다. 작사가였을때의 이름이 최리라였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앞서도 깔아뒀듯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짐작된다. 공일오비의 노래중에 잘 안 알려졌고 제목도 모르겠으나 그의 작사 중 일부였으리라 여겨지는 "가만히 놔둬, 다투다 지쳐 서로 껴안고 뒹굴듯이 후회할지도 몰라, 둘만 남겨지면."이라는 '어떤 우정'에 관한 가사가 언제나 입안에서 맴돌았었다.

방송작가이기도 했다는 이력까지 포함해서 최재경=최리라였을 확률은 꽤 높다. 뭐... 아닐수도 있지만...

신간들을 꽤 많이 보는 편이라서 인터넷 서점 등에서 보는 책광고의 허점들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출판사들의 더러운 속사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책을 내려면 어떠어떠 해야 한다는 소문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책을 낸다는 일이 고소득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런 음험한 사연들은 여러군데서 발각되기 마련이다.

신간 광고들을 보고 책을 줏어 읽다 보면 대체 이런 책을 그 정도로 광고하는 이유가 뭔가 쉽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작가들도 있을 것이고 동물적인 직관력의 작가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꼽고 싶진 않지만 그 사이에서 교묘하게 상업성과 결탁해 줄타기를 하는 작가들은 질색이다. 나 역시나 진정성에 대해서 고리타분한 면이 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책들에 비해 <플레이어>는 광고와는 다른 내용에 조금 당황했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결말의 허점은 허무하더라도 치밀하고 흥미진진했다. 곳곳에 배여있는 작가의 엘리트의식들도 그렇게까지 거슬리지는 않았다.

재밌다는 것은 소설의 최고의 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리소설같기도 하고 로드무비같기도 하고 속도감 있는 영화를 한편 보듯이 생생하게 스토리가 잡힌다.

마지막의 작가의 말 역시나 당연한 말이지만 재밌었다.

 

"대학 졸업 후 육 년간 프리랜서 작가로 자유롭게 살던 내게 대기업 입사랑 위장 취업과도 같았다. 내게는 도심 한가운데의 근사한 고층 빌딩, 그것도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일하고, 대리석이 깔린 로비를 정장 차림으로 오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무척 근사해 보였다. 심지어 일정한 시간에 점싱 식사를 하러 우르르 몰려나왔다가 우르르 들어가는 모습까지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내게도 기회가 주어졌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신선 하게만 느껴졌다. 빌딩의 지하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골고루 유람을 다녔다. 신이 나서 열심히 일했다. 멋진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야근도 자청했다. 일정한 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도 즐거웠다. 매일 점심때마다 어느 식당에 가서 무슨 메뉴를 먹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저녁에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한잔하고 노래방에 가는 것도 좋았다. 특히 매달 똑같은 날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기분이 아주 괜찮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갈 수 있는 식당과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 현명한 직장인이 되려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조금씩 갑갑함과 막막함이 솟아났다.

.......

 

일 년만 버티면 인내심을 인정해 주겠다던 조직 생활을 삼 년이나 하고 나서야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삼년을 버틴 것은 솔직히 인내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월급'에 길들여진 탓이었다. 월급이란 약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 자체로 중독성이 강했다.

......"

 

뭐 이런 조금은 재수없고 솔직히 자신의 한정적인 시각과 위치를 고백하는 작가의 말에서 <플레이어>의 탄생 비하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더욱 이 소설이 재밌었다.

이 쌔끈하게도 호기심에서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은 월급의 중독성과 조직생활의 안정감에 호의적이면서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고도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 놀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했다. 나름대로 깜찍하고 발랄하다.

'몰입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놀이'는 맴을 돌다 찢겨진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하더라도 고통은 고통대로 고통에 대한 무감각은 무감각대로 또 무아지경의 퇴폐와 향락은 또 그대로... 그렇게 섞이고 섞여서 속도도 형체도 색깔도 짐작할 수 없게 현기증만 안겨준다.

나는 내 현재의 단순 여성 인력이 일하는 회사의 노골적인 관계들 속에서 여지껏 흰손으로 지내오며 누렸던 가식과 허영들 때문에 힘들고 플레이어 속의  인간군상들에 대한 분석 그런 분석자들의  훨씬 깊은 치졸함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는 또 뭔데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빅브라더와 빅브라더와 빅브라더와 또 그 상위의 빅브라더와.... 피라미드처럼 얽히고 설킨 감시망들....  

자... 현대인의 두통약 타이레놀을 건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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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보급판 문고본)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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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를 읽었다. 얼마 전에 언론에서 '진단하신'대로 나 역시나 최근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대량 쏟아지는 그만큼 질적인 부분도 담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새롭지 않은가? 적어도 나에겐 새롭다.

<플라나리아>의 주인공은 이십대에 유방암을 앓고 한쪽 가슴을 도려낸 여자다. 그리고 여전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몸 뿐 아니라 마음 역시나. 스스로 해석할 수 없는 자신의 성격이 있는데 무언가가 알 수 없게 꼬여 있다는 것이다. 자기 모순을 알지만 그보다 더욱 남의 모순에 밝고 타인의 친절에 심술을 내고 그 친절을 베푼이의 '굴욕'적인 이면을 상상하게 되는 한 마디로 '악취미'를 가진 여자다. 주변에서 누군가의 인사치레로라도 칭찬을 할라치면 자신이 유방암 환자이며 얼마나 절망적인 사람인지를 가시돋게 설명해준다. 상대방은 할 말을 잃고 그 자리는 곧 불편해진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친절했던 사람에게 가장 비열하고 예의없는 방법으로 뒷통수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를 악인이라 할 수 없다. 심보가 고약한 여자일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그런 사실에 늘 쓸쓸함마저 느낀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친절에 화답하는 방법이 삐뚤어져 있을 뿐 아니라 내 모순과 단점을 잘 아는 만큼 타인의 것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내가 얼마나 그런 칭찬에 합당하지 못한 인간인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넋두리를 해주며 그 칭찬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명인들에 대해서도 싫고 좋음이 나름대로 분명한데 의외로 단점을 짚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얼마 전엔 '최연소' 꼬리표를 달고 화려하게 등단한 한 젊다 못해 어린 잘나가는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책을 집어던져 버렸다.

"최연소, 최연소 강조할때 내가 알아봤다."

하면서.

사실 대단한 필력이었던 건 사실이다. 책 표지에 최연소라고 강조한 점이며 미디어에의 잦은 노출에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며 하나 굴곡없는 이력이며 얼짱 각도의 작가 사진까지 박아놓은 것이 첨부터 거슬렸던 게 정직한 감정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꽤 어린 나이의 소설가의 작품치고 어딘지 난창난창한 성석제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었고 트랜드를 따르지 않고 그냥 답보적인 형태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필력이 있었다. 촌스럽지도 도회적이지도 않고 어딘가 한 방이 있는 딱 성석제표 소설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가 짜증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소설도 끝까지 읽어주기 힘들었다.

사실 그것이 크게 대단한 문제가 아닐 일이고 순수문학도 꾸준하고 강력한 소비자가 필요한 시대다. 가장 우스운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일 또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기만 하다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또 어쩌면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고...

아무리 못 마땅하다 하더라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럽고 기분좋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그렇게 되고 싶다. 정말로. 그에게도 그렇듯이.

누군가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회를 이해하는 무관심과 아량이 내게는 절실하다.

 

그런데... 나는 그냥 <플라나리아>같은 사람인 것이다. 죽지도 살지도 않고... 어느 한 모순을 잘라내도 또 끈질기게 다른 모순이 머리를 디미는 어찌보면 혐오스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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