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리아 (보급판 문고본)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플라나리아>를 읽었다. 얼마 전에 언론에서 '진단하신'대로 나 역시나 최근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대량 쏟아지는 그만큼 질적인 부분도 담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새롭지 않은가? 적어도 나에겐 새롭다.

<플라나리아>의 주인공은 이십대에 유방암을 앓고 한쪽 가슴을 도려낸 여자다. 그리고 여전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몸 뿐 아니라 마음 역시나. 스스로 해석할 수 없는 자신의 성격이 있는데 무언가가 알 수 없게 꼬여 있다는 것이다. 자기 모순을 알지만 그보다 더욱 남의 모순에 밝고 타인의 친절에 심술을 내고 그 친절을 베푼이의 '굴욕'적인 이면을 상상하게 되는 한 마디로 '악취미'를 가진 여자다. 주변에서 누군가의 인사치레로라도 칭찬을 할라치면 자신이 유방암 환자이며 얼마나 절망적인 사람인지를 가시돋게 설명해준다. 상대방은 할 말을 잃고 그 자리는 곧 불편해진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친절했던 사람에게 가장 비열하고 예의없는 방법으로 뒷통수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를 악인이라 할 수 없다. 심보가 고약한 여자일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그런 사실에 늘 쓸쓸함마저 느낀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친절에 화답하는 방법이 삐뚤어져 있을 뿐 아니라 내 모순과 단점을 잘 아는 만큼 타인의 것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내가 얼마나 그런 칭찬에 합당하지 못한 인간인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넋두리를 해주며 그 칭찬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명인들에 대해서도 싫고 좋음이 나름대로 분명한데 의외로 단점을 짚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얼마 전엔 '최연소' 꼬리표를 달고 화려하게 등단한 한 젊다 못해 어린 잘나가는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책을 집어던져 버렸다.

"최연소, 최연소 강조할때 내가 알아봤다."

하면서.

사실 대단한 필력이었던 건 사실이다. 책 표지에 최연소라고 강조한 점이며 미디어에의 잦은 노출에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며 하나 굴곡없는 이력이며 얼짱 각도의 작가 사진까지 박아놓은 것이 첨부터 거슬렸던 게 정직한 감정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꽤 어린 나이의 소설가의 작품치고 어딘지 난창난창한 성석제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었고 트랜드를 따르지 않고 그냥 답보적인 형태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필력이 있었다. 촌스럽지도 도회적이지도 않고 어딘가 한 방이 있는 딱 성석제표 소설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가 짜증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소설도 끝까지 읽어주기 힘들었다.

사실 그것이 크게 대단한 문제가 아닐 일이고 순수문학도 꾸준하고 강력한 소비자가 필요한 시대다. 가장 우스운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일 또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기만 하다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또 어쩌면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고...

아무리 못 마땅하다 하더라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럽고 기분좋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그렇게 되고 싶다. 정말로. 그에게도 그렇듯이.

누군가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회를 이해하는 무관심과 아량이 내게는 절실하다.

 

그런데... 나는 그냥 <플라나리아>같은 사람인 것이다. 죽지도 살지도 않고... 어느 한 모순을 잘라내도 또 끈질기게 다른 모순이 머리를 디미는 어찌보면 혐오스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