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브랜딩 기술 - 마케팅 비용의 경쟁에서 벗어나는 좋은 습관 시리즈 29
문수정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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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소위 돈벌이가 좋다고 여겨지는 대표적 전문직 중 하나인 의사. 하지만 그 공식도 옛말이 되었다고 한다. 날로 상승하는 인건비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수가 정책으로 의사들 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졌고 심지어 폐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실 주변만 둘러봐도 편의점만큼이나 많은 병원들을 보면 그들 사이의 경쟁이 얼마나 심할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저자는 수많은 병원이 생긴 만큼 의료기술은 상향 평준화되었고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닌 좀 더 근본적인 브랜딩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 브랜딩 기술>은 오랜 시간 병원 경영 컨설턴트로서 일한 저자의 경험을 녹여 개원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개원했지만 병원의 마케팅과 브랜딩을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진료와 병원 경영의 전반적인 운영 가이드를 알려준다.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실제로 장기화된 팬데믹, 소상공인 경영난, 고금리 경제 위기 상황을 거치면서 병원의 폐업률은 높아졌지만 일부 브랜딩이 잘 되어 있는 병원은 더 호황을 누린다는 것.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만큼 병원 경영도 과거의 단순 노출 전략이 아닌 나만의 색을 담은 브랜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공하는 병원이 되기 위해 체계적인 퍼스널 브랜드 수립을 위한 A to Z를 상담 선생님처럼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브랜드 콘셉트 수립부터 디자인, 내부 경영, 인사채용, 브랜드와 일치된 고객 경험을 위한 고객 여정지도, 브랜드 가치를 어필하기 위한 콘텐츠 작성법과 효과적인 광고 매체까지 다룬다.


사실 요즘에는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의료법을 위반한 광고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정석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지, 사랑받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과 태도가 필요한지 고민할 수 있는 책이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병원을 고를 때 전문가로서의 의사 소견 못지않게 자신이 진료받고자 하는 병원 환자의 후기를 중요하게 본다. 그렇기에 첫 방문 때는 다른 이의 후기를 보고 병원을 찾지만 막상 찾아갔을 때 예상과 다르다면 그 병원은 다시는 찾고 싶지 않다.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브랜드의 영속성을 획득한 병원은 환자들이 먼저 알아서 입소문을 내준다. 그렇기에 여타 업종들과 마찬가지로 병원 역시 꾸준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진정을 담은 브랜딩은 필수 덕목이 된 것 같다.


자기만의 퍼스널 브랜딩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한 번 노출로 휘발되는 광고비를 계속 지출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일시적인 매출 상승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버려지지 않는 마케팅이 바로 브랜딩이며, 벽돌을 올리듯 쌓다 보면 거대한 성이 되는 마케팅이 바로 브랜딩인 것이다.


과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고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픈 의사를 비롯한 의료 관계자들에게 병원 경영의 바이블이 되어줄 책 <병원 브랜딩 기술>. 독자의 타깃이 명확하지만 병원 브랜딩뿐만 아니라 모든 업종에 관통하는 원리가 담겨 있어 나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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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 메신저 - 당신의 경험이 돈이 되는 순간이 온다
브렌든 버처드 지음, 위선주 옮김 / 리더스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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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다양한 경로로 수익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이 방법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중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된다. 이중 스스로 별다른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손쉽게 접근 가능한 곳이 바로 블로그일 것이다.


내 경험을 되돌아보면 우연한 계기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이곳에서 만난 이웃님의 조언으로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애드포스트 승인이 나고 치킨값만 생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수입이 늘어나니 욕심이 생겼고 성공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의 노하우가 궁금해 전자책을 구입해 읽기도 했다.


지금은 원고 제의를 받아 정보성 포스팅을 올리거나 서평 원고료를 통해 일정한 부수입을 얻고 있다. 매일 따로 시간을 내어 읽고 쓰는 게 쉽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은 수입의 스케일이었는데 이 책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조언이 담겨 있었다.


저자 브랜든 버처드는 19살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뒤 '인생의 골든 티켓'이라 부르는 제2의 기회를 맞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삶의 동기를 되찾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돕는 데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는 동기부여와 비즈니스 마케팅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탁월한 성과를 이뤘다.


메신저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메시지로 만들어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이다. 가령 좋은 부모 되는 법, 사업 시작하는 법,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실천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 같다. '내가 뭐라고, 내 경험이 과연 쓸모가 있을까'라고 한다면 저자는 단호히 그렇다고 말한다. 하찮아 보이는 경험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값진 조언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의미 있는 삶과 물질적인 만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고 말이다.


책에서는 메신저의 유형을 구분하고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실질적인 수입으로 연결하는지에 대해 단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수입도 공개하고 있다. 메신저는 자신이 제공하는 메시지의 가치에 따라 대가를 받기 때문에 더 이상 일하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콘텐츠가 내 삶을 바꿔줄 수 있다면 얼마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소비자로서의 삶에 좀 더 익숙해서인지 그의 메신저로의 삶과 자신의 콘텐츠에 가치와 가격을 부여하는 방식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특히 새겨두고 싶었던 구절은 많은 메신저 지망생들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대신 대체로 산만하게 대충 생각한 뒤 일을 시작하고는 빨리 포기하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는 점이다. 아닌 길은 빨리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너무 쉽게 그리고 자주 포기한다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백만장자 메신저>는 1인 사업가들에게는 바이블로 통하며 절판되었을 때 중고서점에서 고가로 거래되기도 했다. 이에 수많은 독자들에게 재출간 요청을 받고 5년 만에 다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숟가락 위에 방법을 올려 눈앞에 가져다주는데 실천하는 건 이제 나의 몫이 되었다.


며칠간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메시지를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아직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만큼 매끄럽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브랜드의 본질이기에 당분간은 핵심 메시지를 담은 브랜딩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세상은 넓고 삶의 방식 또한 다양하다는 걸 배운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의 삶에 영감을 주고 또한 경제적 자유까지 이룰 수 있다니 서로에게 이로운 일이다. 종종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세상 사람들과 널리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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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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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 편의 시를 썼으나 평생 10편도 채 발표하지 못했던 시인, 발표한 시들조차 익명으로 했기에 생을 마감하고서야 유고 시집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시인, 바로 에밀리 디킨슨이다. 자연과 사랑, 죽음과 영원을 주제로 한 그녀의 시들은 대체로 추상적이지만 섬세한 필체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전한다.


생애 대부분을 집 안에서 머무르며 매일같이 시를 쓰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은 베일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일까 시를 통해 남다른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는 후대의 수많은 이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캐나다 퀘백의 소설가이자 에밀리 디킨슨 연구가인 저자 도미니크 포르티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남겨진 시와 편지, 기록을 바탕으로 에밀리 디킨슨이 살았던 종이로 이루어진 세상을 다시 재건했다. 자신의 이야기와 상상 속 에밀리의 삶을 조화롭게 녹여낸 전기 에세이 《종이로 만든 마을》


도미니크는 남편의 회사 일로 퀘백에서 보스턴으로 이주한다. 이후 여러 집을 거치지만 자신만의 집이라고 불릴만한 곳은 없었다. 보스턴에서의 첫 집은 홀리요크라는 지역에 있었다. 온전히 내 집으로 정을 붙일만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홀리요크는 에밀리가 다니던 학교의 이름이었음을 알게 된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 당시 여인들이 꿈꾸던 일상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과감히 평범한 다른 여인들의 일상을 거부하고 독신의 길을 걷는다. 누구보다 시를 사랑하고 자연에 귀를 기울이며 그저 지나칠만한 것들도 온전히 인식하며 사유한다.


”원주, 경계에 머무르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1862년 에밀리가 히긴슨에게 보낸 편지 中


이 세계와 저 세계, 시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삶은 결국 경계에 머무르는 은둔자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경계의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의 추를 맞추려 애쓰며 일생을 보내지만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도미니크의 상상 속 세계를 함께 유영하며 나 또한 자기만의 집을 그려보았다. 진정한 자기만의 집은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다는 걸 자신의 집 조그마한 방 안에서 우주를 창조했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이 보여주고 있었다.

”린든은 종이 마을이야.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마을이지.
자기들이 제작한 지도를
다른 사람들이 훔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적어놓은 거야.“

p48 오스틴이 에밀리에게 하는 말


돈독한 사이였던 에밀리와 오빠 오스틴은 어릴 적 함께 지도책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애머스트에서 보스턴으로 가려면 스프링필드, 레스터, 우스터, 린든, 월섬을 지나야 하는데 그중 린든이라는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스틴은 말해주었다.


에밀리가 되뇌었던 "종이 마을......". 가상의 린든 마을은 지도 제작자들이 표절의 증거로 만들었을 뿐이지만 오빠에게 전해 들은 후 에밀리에게는 삶의 증거가 된다. 소중히 간직했던 종이 위의 시들은 그녀의 사후에 신화라 일컬어질 만큼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에밀리 디킨슨의 사망 증명서 '직업'란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필체로 '집'이란 단어가 적혀있다고 한다. 낯선 도시 보스턴에서 자기만의 집을 찾아 헤매던 저자 도미니크는 결국 자신이 머무르던 공간에서 우주를 창조해낸 에밀리 디킨슨의 일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던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전기 에세이 《종이로 만든 마을》은 폐쇄적인 은둔자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애정 있는 상대에게 보이는 에밀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좀 더 부각되어 친근하게 다가왔다. 상상이라는 감미료를 더해 과거의 위인을 만나는 방식은 그리운 이와의 꿈속에서의 조우처럼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도미니크 포르티에는 이 에세이로 2020년 르노도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하고 같은 해 페미나상 에세이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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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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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처음 만나 인생 소설로 손꼽을 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 파스칼 메르시어의 신작이 나왔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본래 철학자로 페터 비에리라는 본명으로 남긴 《삶의 격》 《자기 결정》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소설 역시 철학적 사색이 짙게 묻어난다.

때로 느낌으로만 어렴풋이 인지하던 그 감정에 매료되어 한참을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매듭짓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미묘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 바로 파스칼 메르시어였다. 소설의 내용면에서나 분량면에서나 쉽지만은 않지만 그의 유려한 문체는 묘한 끌림이 있다.

어릴 적 동양학자인 삼촌의 영향으로 낯선 언어에 매료된 주인공 영국인 레이랜드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번역가로 살아가고 있었다. 소통의 매개로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누구나 쓸 수 있는 언어라지만 그에게는 좀 더 특별했다. 그렇게 언어에 묻혀 살아가던 레이랜드는 어느 날 시한부 판정을 선고받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조급해 하며 보내는 대신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는 레이랜드. 먼저 떠난 아내를 대신해 경영해오던 유서 깊은 출판사를 매각하고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소울메이트와 같았던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시한부 판정은 이내 오진임이 밝혀졌고, 비슷한 시기 작고한 삼촌에게 물려받은 영국의 저택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삼촌이 남긴 집에서 삼촌이 써준 편지를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60대가 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본다.

어릴 적 삼촌의 집에서 보았던 지중해 지도를 보며 주변국 모두의 언어를 배울 거라 선언하던 모습, 대학에서 뛰쳐나와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번역을 배우며 지새던 수많은 밤, 아내를 처음 만난 기차, 아이들이 생기고 급작스레 아내가 출판사를 물려받게 되면서 트리에스테로 이주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까지.

레이랜드는 '모든 것은 이름이 불리고 이야기된 후에야 실제로 존재했다'고 하며 언어로 이해해야 모든 걸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에겐 그만큼 언어는 중요했고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조차 자신의 언어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 강박적으로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점검했다.

그만큼 언어에 기대어 살아왔던 레이랜드는 삼촌의 편지를 계기로 자신과 주변인들과의 삶을 반추하면서 미쳐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쓰는 것이었다. 단순히 읽고 쓰는 언어를 넘어 자신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내 삶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 중 하나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한 자신의 가치관을 《언어의 무게》속 레이랜드의 삶에 녹여낸 걸 보면 어쩌면 파스칼 메르시어 그리고 페터 비에리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든 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잊은 채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문학의 효용을 우아한 방식으로 설파한다. 글로 쓴 생각은 문학의 형식으로 누군가에게 전해져 자신의 생각과 정신을 점검하는 도구이자 불안한 마음을 일시적인 쾌락이나 욕망에 내맡기는 대신 온전한 정신으로 세상을 대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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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물의 탑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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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어본 미쓰다 신조의 미스터리 추리 소설 《하얀 마물의 탑》. '도조 겐야'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검은 얼굴의 여우》를 읽지 않고서 만났지만 중간중간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몰입하는 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만주국에 위치한 건국대학에 큰 꿈을 품고 입학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고향에 돌아와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바닥에서 일하며 일본의 부흥을 뒷받침해 보고자 결심한다.


원대한 포부를 품고 앞서 탄광과 암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무시무시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고 이번엔 등대지기가 되기로 한다. 다음 부임지인 고가사키 등대로 발령을 받고 배를 빌려 임지로 떠나는 날. 기암괴석 뒤로 우뚝 선 등대를 본 순간 하야타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뱃사공은 험한 파도로 접안이 어려우니 내일 산길로 되돌아가길 권한다. 그날 밤 마을의 숙소 주인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다시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하야타는 등대지기로서의 임무를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다음날 등대로 가기 위해 깊은 숲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괴이한 일을 겪게 된다.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해가 지면서 숲속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다 외딴 오두막을 찾는다. 사실 그 집은 마을의 숙소 주인이 만약 길을 잃더라도 절대 가지 말라고 한 곳이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달아날 기회는 떠났고 결국 그 오두막에 머무르면서 '시라몬코'라는 이 지역의 마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찌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이번엔 마물에게 끝없이 쫓기는 상황이지만 하야타는 주어진 임무를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등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만난 등대장과의 대화를 통해 하얀 마물과 이어진 20여 년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수께끼가 풀어나간다.


미쓰다 신조는 이 소설을 통해 과거 패전 후 일본인들의 상실감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책으로 만나던 침략 국가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리게 된 일반 국민의 상실감과 여전히 벽처럼 느껴지는 일본의 전근대성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다.


또한 낯익은 장면이 나온다 싶었는데 1900년 일어난 스코틀랜드 앨런모어 섬에서 일어난 등대원들의 실종 사건이 이 소설에도 녹여져 있었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행위이고 어디서부터 이성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 과정에서 오는 공포로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추리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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