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어본 미쓰다 신조의 미스터리 추리 소설 《하얀 마물의 탑》. '도조 겐야' 시리즈에 이어 새로운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검은 얼굴의 여우》를 읽지 않고서 만났지만 중간중간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몰입하는 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모토로이 하야타는 만주국에 위치한 건국대학에 큰 꿈을 품고 입학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고향에 돌아와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바닥에서 일하며 일본의 부흥을 뒷받침해 보고자 결심한다.원대한 포부를 품고 앞서 탄광과 암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았지만 무시무시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고 이번엔 등대지기가 되기로 한다. 다음 부임지인 고가사키 등대로 발령을 받고 배를 빌려 임지로 떠나는 날. 기암괴석 뒤로 우뚝 선 등대를 본 순간 하야타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뱃사공은 험한 파도로 접안이 어려우니 내일 산길로 되돌아가길 권한다. 그날 밤 마을의 숙소 주인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다시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하야타는 등대지기로서의 임무를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다음날 등대로 가기 위해 깊은 숲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괴이한 일을 겪게 된다."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 됩니다."하지만 해가 지면서 숲속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다 외딴 오두막을 찾는다. 사실 그 집은 마을의 숙소 주인이 만약 길을 잃더라도 절대 가지 말라고 한 곳이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달아날 기회는 떠났고 결국 그 오두막에 머무르면서 '시라몬코'라는 이 지역의 마물 이야기를 듣게 된다.어찌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이번엔 마물에게 끝없이 쫓기는 상황이지만 하야타는 주어진 임무를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등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만난 등대장과의 대화를 통해 하얀 마물과 이어진 20여 년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수께끼가 풀어나간다.미쓰다 신조는 이 소설을 통해 과거 패전 후 일본인들의 상실감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책으로 만나던 침략 국가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리게 된 일반 국민의 상실감과 여전히 벽처럼 느껴지는 일본의 전근대성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다.또한 낯익은 장면이 나온다 싶었는데 1900년 일어난 스코틀랜드 앨런모어 섬에서 일어난 등대원들의 실종 사건이 이 소설에도 녹여져 있었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행위이고 어디서부터 이성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 과정에서 오는 공포로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추리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