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ㅣ 이어령 대화록 1
이어령 지음, 김태완 엮음 / 열림원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생각하라"는 의미

​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며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어요. 이런 경험 없으세요? 저는 어릴 때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확인해 보고 코밑에 손가락을 종종 대본적이 있었어요. 엄마는 자주 아팠고 생사를 넘나들 만큼 위태로운 시기도 있었거든요.

​

​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한 엄마는 제가 고등학생일 되었을 때 지난날 꿨던 꿈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무도 없는 드넓은 대지에 까마득한 기분으로 서 있는데 누군가 저 멀리서 손짓을 하더래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마치 홀린 듯 따라가게 되었대요.

​

​

한참을 걸어 다다른 곳은 거대한 붉은 강이었고 그 강 건너편에는 돌아가신 엄마의 할아버지가 환한 미소로 손짓을 하고 있었어요. 어서 건너오라고. 엄마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앞으로 나아가 강물에 발을 담그기 직전 멈칫하게 되었다고 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너면 안 될 것 같아 멈췄다고.

​

​

그 얘기를 듣고 소름이 돋더라구요. 만약 엄마가 그 강을 건넜으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서 엄마와 함께할 수 없었겠죠. 두렵고 무섭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저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어요.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맞게 될 죽음. 어떻게 맞아야 할지 늘 궁금했어요.




살아있는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이어령 선생님은 대부분 아실듯하지만 혹시나 모르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문학평론가이자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재직하셨고, 1987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개폐회식을 주관하기도 하셨고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전신인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지내신 분이에요.

​

​

죽음에 임박한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

1987년 삼성의 故 이병철 회장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신부님들께 종교와 신과 죽음에 대해 24가지 질문을 했다고 해요. '신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부터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까지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이었어요.

​

​

30여 년이 흐른 후 암 투병 중이신 이어령 선생님께 한 기자가 찾아옵니다. 지난날 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그대로 이어령 선생님께 하며 답을 청했어요. 이 <메멘토 모리>는 그 질문에 대한 이어령 선생님의 답이 담겨있는 책이랍니다.

​

​

스물네 가지의 질문 중 "영혼에 대하여"

영혼이란 무엇인가요?

찻잔으로 비유할 수 있어요. 찻잔을 만드는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해당해요. 플라스틱 혹은 유리. 우리의 육체도 그 컵들의 질료처럼 우리의 몸뚱이를 이루는 물질인 거예요.

​

​

그런데 컵과 그릇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들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합니다. 컵의 본질은 무언가 담는 것이고, 무언가 담으려면 비어 있어야 합니다.

​

​

다시 말해 컵의 본질은 유리나 플라스틱 같은 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비어있는 성질에 있어요. 그 빈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합니다.

​

​

그런데 제 빈 컵에 커피를 따르면 커피잔, 물을 따르면 물 잔이 되어 빈 공간이 없어져요. 그러면 이 컵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지요. 이미 무언가 담겨 있으니. 그게 '마인드(mind)'예요.

​

​

그리고 컵과 그릇 물질 자체는 '보디(body)'입니다. 만약 유리컵이 깨지면 담고 있던 액체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보디도 마인드도 없어지는 거예요.

​

​

하지만 텅 비어 있던 공간, 그것은 어디로 갔을까요. 깨졌나요?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저 은하계, 빅뱅이 일어난 저 우주와도 통하고 있지요.

​

​

상상해 보세요. 우주도 비어 있으니 우리가 달나라도 가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릇을 채우는 욕망이 마인드.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집니다.

​

​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 보이드. 그게 영혼이에요.

​

​

영혼은 우주의 것이지요. 내가 죽어도 내 안에 있던 우주의 스피릿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영성이 중요한 거예요. 몸뚱이도 내 것이고 마음도 내 것이지만 영혼만은 내 것이 아니에요.

​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 조금 어렵죠? 자칫하면 인생무상이라며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실제로 이 세상에서 통하는 공간은 컵 말고도 또 있었어요. 바로 엄마의 자궁 속.

​

​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곳에서 아무 일 없이 열 달 동안 자궁 속, 즉 우주의 보이드 속에서 자라나는 아기. 그러다 알에서 태어나요. 아이는 엄마가 낳으려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었어요.

​

​

출산이 임박하면 엄마들은 '아이가 나오려고 해요' 그러잖아요. 어머니의 자궁안에서 자라고 생일날까지 다 받아서 알아서 나오는 것이었어요. 이게 바로 엄마의 자궁과 우주의 보이드가 통해져 있다는 증거였어요.

​

​

플라톤은 이를 깨닫고 '코라(chora)'라고 불렀다고 해요. 아무것도 없는 거기가 바로 생명의 공간이요, 창조의 공간이었던 거예요. 영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어요.

​

​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관한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대역병이 지나가고 나면 인구도 불어나고 그 이전보다 번영이 이루어졌습니다. 페스트도 그랬어요. 런던 인구 3분의 1이 희생당한 1665년의 페스트, 이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 해 런던 대화재가 일어났어요.

​

​

그런데 어떤가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롯해 쟁쟁하고 왕성한 지식인의 활동과 산업혁명, 그리고 '팍스 브리태니카'로 영국이 전 세계를 지내하는 시대가 도래했어요. 런던만이 아닙니다.

​

​

페스트라는 재앙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파리 역시 페스트가 지나간 뒤 모든 면에서 발전하여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화려한 꽃을 피우게 돼요. 이것이 바로 팬데믹의 패러독스입니다.

​


코시국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분들이 힘든 시기잖아요.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 생각해 보면 이 포스트 코로나로 인해 죽음의 문제를 새롭게 직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더욱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주는 말씀이 아닌가 싶어요.

​

​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이고 태어나는 순서와 가는 순서는 달리할 테죠. 그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 하지만 마냥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며 앞으로 조금은 의연하게 남은 생을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

책을 읽으며 탄식이 나왔어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깨달음의 의미로요. 하지만 저의 표현력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수많은 문장들. 쉬운 말로 전할 수 없어 속상하네요. 두고두고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습니다.

​

​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이어령 선생님 얼른 쾌차하셔서 부디 가시는 날까지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壽衣)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

​

한밤에 눈을 뜨면

어머니 숨소리를 엿듣던

긴 겨울밤

어머니 손 움켜잡던

내 작은 다섯 손가락

​

​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 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길

​

​

여섯 살배기 아이의 빰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

​

굴렁쇠를 굴리다 흐르던 눈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

​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

​

- 「메멘토 모리」 전문

​


​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

메멘토모리(Memento mori)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으로..

​

​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

그 죽음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어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 신화가 아닌 보통 사람의 삶으로 본 그리스 로마 시대
개릿 라이언 지음, 최현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로마 이야기하면 수많은 영웅들과 신화가 먼저 떠오른다.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해 주기에 드라마나 영화도 자주 나오니 마치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설명하라고 하면 지퍼 잠금. 너무도 방대한 인물들에 치여 머릿속에 정리가 안되니 늘 헷갈리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



​

그렇게 등장하는 영웅들과 굵직한 사건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어릴 때 읽었던 우리 역사 속 일반인의 생활상을 담은 <고려 ·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의 그리스 로마 버전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



​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지내는지 요즘처럼 속옷은 다 갖춰 입었는지, 영화나 미드에서처럼 맨날 그렇게 술을 마셔댔는지, 동성애가 성행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는지 등등 유치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담겨있었다.

​




그들도 현대인처럼 면도했을까?

유행은 돌고 돈다.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항상 턱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방식에는 여러 차이가 있었지만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은 콧수염은 깨끗이 면도하고 턱수염은 수북이 기르는 스타일이었다. 말끔한 턱 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통치 시기 이전까지는 여성적이고 나약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

위대한 정복자인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건지 이전의 유행과는 역행하며 정기적으로 면도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젊음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운 나쁘게 드문드문한 수염을 가져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우월한 지위가 턱수염 없는 말끔한 얼굴을 유행하게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



​

뒤따르는 로마인들도 초반에는 그리스인들처럼 털이 수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 유행에 영향을 받아 구레나룻 제거를 시작으로 차츰 턱수염을 밀기 시작했는데 유행의 최전선에는 늘 고위층인 최고 권력자가 있었다.

​



​

그렇다면 다른 부위의 털은 어떻게 했을까? 모든 이들은 아니었지만 일부 여성들은 왁스나 화산석을 이용해 다리를 면도했고, 현대의 비키니 왁싱 같은 것도 상당히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로마 시대에는 많은 남성들도 털을 전부 혹은 일부 제거했다.

​



​

이 행위는 일부 전통주의자들에게 많은 문제들을 제기했는데 털을 조금이라도 미는 것은 의도적으로 남성성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수북한 수염을 가진 철학자와 산뜻하게 매끈한 턱을 가진 웅변가 사이의 털 제거의 도덕성에 관한 열띤 토론을 했다고 한다.

​



​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는 안되는지 그들의 토론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요즘엔 남녀 모두 왁싱이 일반적인데 이 기원이 고대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니 유행은 정말 돌고 도는구나 싶다. 하지만 왁싱은 너무 아프다 ㅠㅠ

​




고대 진찰실의 풍경은 어땠을까?

생각보다 놀라웠던 건 당시에도 지금처럼 수술을 했고 기본 의료 도구는 현대 수술 도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메스, 겸자, 심지어 고름 추출용 주사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세균 이론에 관한 이해가 없었기에 수술 환경이 몹시 원시적이었다.

​



​

그중 가장 심각한 수술은 두개골 절개술인 천두술을 시행할 때였는데 마취약이 있을 리 만무했고 허브 추출물을 진정제로 투여하긴 했지만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수술 과정을 의식이 있는 채로 버텨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

​



한 고대 저술가의 태평스러운 말에 의하면 훌륭한 외과 의사의 자질은 고통으로 인한 환자의 비명에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쪼개고 자르고 나면 절개 부위를 핀으로 꽂거나 꿰매서 고정하고 나뭇진이나 꿀을 발랐다.

​



​

난 전신 마취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마취제와 진통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난 통증을 잘 참는 편이긴 하지만 고대에 태어났어도 과연 그럴 수 있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마취제와 진통제를 발명해 준 분들 감사합니다 :)

​




남색 행위가 지극히 흔한 일로 여겨진 이유는?

그리스·로마인들은 소년과 성관계를 가지는 남성을 변태나 아동 성학대자로 간주하지 않았고 남성이 여성과 소년 모두에게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올바른 상대와 합법적으로 관계를 맺기만 하면 행위는 처벌당하거나 비난받지 않았다.

​

​



고대 세계에서 남성의 성 정체성은 욕구 대상에 의해 규정되지 않았고 성관계에서 맡은 역할에 의해 규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상대가 여성인지 소년인지는 비교적 덜 중요했다고 한다. 그들의 인식으로는 여성과 소년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도 볼 수 있듯 자신이 노예 소년들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는 절제심을 가졌음에 그는 감사했다. 지금은 범죄로 규정된 행위가 그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




전투 코끼리는 고대 최강의 무기였을까?

난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좀비 무리와 함께 싸우는 전투 코끼리를 처음 봤었다. 단지 스크린 속 설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고대에서 코끼리를 전투에 이용했다는 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에게 코끼리는 순둥이 같은 이미지인데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



​

코끼리를 전투에 참여시키기 위해는 먼저 포획하여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수년간의 신중한 감독하에 훈련이 진행됐는데 각각의 코끼리는 호전적인 이름을 부여받았다.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아약스(트로이아 전쟁 영웅)였다.

​



​

출정 시에 코끼리들은 전투 무장을 하고 작전이 개시되면 코끼리 부대가 밀어붙이며 진격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코끼리 부대는 전쟁의 무대에서 반짝하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거대하고 육중한 덩치 때문에 숲이나 시가전 혹은 거친 지형에서 활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

​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코끼리들은 쉽게 공포에 질리고 아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작은 부상에도 코끼리는 미친 듯이 날뛰었고 코끼리 한 마리가 날뛰면 근처에 있는 다른 코끼리들도 같이 날뛰었다. 그리고 일단 발광하면 코끼리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데 이미 아웃 오브 안중.

​

​



가령 전투 중 어린 전투 코끼리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지르자 근처에서 싸우던 어미 코끼리가 즉시 새끼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며, 가는 길에 있던 모든 병사를 밟아 뭉갰다고 한다. 양날의 검이었던 코끼리 부대는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잘했어 코끼리!)


​

고대 그리스 로마사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때로는 그 방대한 역사와 수많은 등장인물에 때론 접근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막상 책을 펼치면 비슷한 이름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아까 나온 사람이 또 나온 것 같은 데자뷔와 함께 머리에 과부하가 올 때도 있었다.

​

​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정사보다는 야사에 가까운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는 친근한 그들의 일상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해 준 동시에 곳곳에 산재한 머릿속 공백까지 메워주었다. 또한 그들의 역사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흥미를 유발해 주었기에 고마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메타 페이스북 - 플랫폼 제국을 넘어 메타버스의 창조자로
스티븐 레비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한때 비관적으로 치부되던 주식시장에의 투자. 요즘에는 안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아 되팔 생각 없이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의 조금씩 주식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지금이 기회인 건가 싶은 일이 얼마 전 일어났다.

​



​

바로 메타(페이스북)의 주가가 폭락한 것. 대체 무슨 이유로 상장 이후 최악의 급락을 맛보게 된 걸까. 실적 발표 후 장외거래에서부터 무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놀라 검색을 해보았다. 뉴욕타임즈에서는 그 요인을 6가지로 분석하고 있었다.

​



​

<메타(페이스북)가 곤경에 처한 6가지 이유>

​


1. 사용자 증가 추세의 한계 _ 실제로 페이스북은 지난 분기에 비해 약 50만 명의 사용자를 잃었다.

​


2. 애플의 개인 정보보호 정책으로 인한 광고 매출의 감소

​


3. 구글의 온라인 광고 점유율 확대

​


4. 틱톡과의 경쟁으로 제대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릴스

​


5. 확실한 리턴이 없는 상황에서의 엄청난 메타버스 관련 지출

​


6. 아직도 남아있는 독점 규제의 망령





저커버그는 10년 뒤를 보고 투자하라고 했는데, 물론 그럴 생각으로 매수했고 걱정은 없지만 발을 더 담가도 되는지 고민되긴 했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메타 페이스북>

​



책에서는 페이스북이 오늘날 이토록 엄청난 기업이 된 이유, 이 회사의 리더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맹점은 무엇인지, 계획이 왜 자꾸 어긋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대학 앱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플랫폼 제국으로 성장한 페이스북. 소셜 미디어로 사람들과 세상을 연결한 이 빅 테크 기업은 이제 메타버스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2021년 10월 페이스북에서 메타 플랫폼스로 이름까지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



​

Connecting The World

​



​

세계를 연결하라는 미션 아래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성과에 집중하고 빨리 움직여 파괴하라는 모토를 갖고 무한 질주하던 페이스북은 분명 물리적인 한계를 초월해 많은 이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소통하고, 새로운 기회를 탐험하며,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



​

하지만 모든 현상에는 양면이 존재하듯 인류의 연결 역시 음지와 양지가 공존했다. 거대한 무역로를 연결하여 풍족한 자원을 공유했으나, 그 과정에서 노예시장이 형성되었듯 페이스북이 만들어낸 연결 또한 우리의 삶, 인류 문명에 상반된 측면이 있다.

​

​



기업가치는 시가 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고,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35억 명이 넘는다. 또한 페이스북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왓츠앱까지 인수하여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 기업이 되었고, 최고의 가상현실 기업인 오큘러스까지 인수하면서 차세대 플랫폼 가상현실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

​

​



분명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선의로 시작했으나 반작용도 많았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의 도가니가 되어버렸고, 각종 낚시성 클릭 베이트로 많은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지난 미국 대선 때는 예상을 뒤집고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에 일등공신 플랫폼이 되기도 했었다.

​

​



언론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 또는 늑장 대응이 초래한 결과라고 하고 있었고 마크 저커버그 역시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다. 이 모든 현상이 다가올 장래에는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나는 계속 이 회사의 주식을 사도 되는 건지 궁금했다.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과정을 비롯해 어떻게 회사를 세웠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그리고 회사의 또 다른 중심축인 COO인 셰릴 샌드버그에 관한 이야기도 자세히 실려 있다.

​



​

또한 이 회사의 성장 추구가 어떻게 도리어 발목을 잡아 현재의 곤경을 낳았는지 자료에 근거해 세세히 풀어 놓았는데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복잡 미묘했다.



기술 트렌드, 미래, 그리고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 번역을 참 잘하셨다.

직설적으로 때론 은유적인 찰진 표현 덕에

벽돌 책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것 빼면 거의 모든 게 다른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이 만드는 환장의 궁합

​



​

지난 어느 포스팅에서 코시국이 마무리되면 제가 가장 먼저 가고픈 나라는 익숙한 일본이라고 했었어요. 그걸 본 어느 이웃님께서 다음 희망 여행지가 일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뭐라고 답글을 써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답하지 않기로 했어요.

​



​

저에게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상반되는 양가감정이 존재합니다. 역사 책들을 보며 과거 일제 강점기 때 그들의 만행을 보면 치가 떨리도록 화가 났고, 그의 연장에서인지 한일전이라도 열리면 언제부터 그리 좋아했다고 마치 오랜 축구팬인 양 치열하게 응원했었어요.

​

​



성인이 되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여행도 가고 개인적으로 그들과 교류하다 보니 과거에 지녔던 앙금은 눈 녹듯 사라졌고, 그들의 친절함과 배려심에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참 많았습니다. 과거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원전 사고가 났을 땐 친구들이 걱정되어 잠도 못 잤던 기억이 나구요.

​



​

나는 줏대 없는 사람이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걸까 싶기도 했었어요. 같은 대상을 놓고 이러한 양가감정이 드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답답했지만 그 문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일도 없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지냈습니다.

​

​



그러다 읽은 이 책에서 그런 감정이 드는 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웃님께 유쾌하고도 명쾌한 답글을 달아드릴 수 있지 않았나 싶었어요.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더불어 유교 문화권에 속하죠. 그래서 비슷한 점도 무지 많지만 꽤 명확하게 차이 나는 지점이 많아요.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

​

​



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흔히 말하는 보편성과 특수성. 식상하리만치 많이 들어온 말이지만 그 안에 답이 있어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사람들은 보편적인 욕구를 갖지만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



​

즉 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지만 옷의 재료나 형태, 기능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미의식, 습관에 따라 다 다르기 마련이에요. 그래 그건 나도 알게 하면서도 막상 다른 부분을 맞닥뜨리면 이해한다고 했던 생각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뭐야 신기하다 혹은 왜 저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

​



각자의 자리에서 한 나라로 수천 년을 이어오며 빚어낸 문화들을 한 개인이 속속들이 모두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하는 굵직한 이슈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의 원인을 알려주니 무릎을 치며 신나게 읽었어요.

​

​



야동의 나라 일본 vs 먹방의 나라 한국

소위 '성(性)진국'이라 불리는 일본. 이미 산업화된 성산업의 경제적 측면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욕구가 있었어요. 문화적 욕구보다 더 근본적인 교류의 욕구, 사회적 욕구. 이러한 보편적인 욕구가 일본에서는 성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요.

​

​



일본인은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그로부터 안정감이 비롯되고요. 따라서 일본인은 타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돼요. 사람은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존재니까요 ㅎㅎ

​



​

이러한 보편적인 사회적 욕구를 한국에서는 어찌 표현할까요? 바로 밥이에요. 이성에게도 "저랑 밥 한번 드실래요?", 누군가 고마울 때도 "내가 밥 한번 살게.", 친구가 아플 때도 "밥은 꼭 챙겨 먹어."라고 말하죠. 이렇게 밥을 통해 한국인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왔어요.

​



​

하지만 최근 여러모로 사회가 변하면서 누군가와 머리 맞대고 밥 먹을 시간이 별로 없어졌어요. 생활 주기도 패턴도 많이 달라지고 있구요. 그렇다고 해서 함께 밥을 먹으며 충족해왔던 욕구들마저 사라진 건 아니에요. 먹방이 그 증거입니다.

​



​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이상한 걸 먹느냐는 먹방이 본질이 아니었어요. 한국인은 나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보고 싶은 거였어요. 저는 내가 왜 다른 사람 먹는 걸 보고 있지 하며 의아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함께 밥을 먹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외로우니까요 (씁쓸 ㅎㅎ)

​

​



반일의 이유 vs 혐한의 이유

한국의 반일 감정은 단순히 오랜 이웃의 해묵은 감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요. 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님 등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분들이 여전히 생존해계시고, 그 일제강점기로 말미암아 6.25와 분단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의 원인이기도 해요.

​

​

문제는 일본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역사, 영토, 산업 등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도발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에요. 일본 학생들의 교과서에 역사왜곡은 물론이고,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최근 무역 제제처럼 한국이 우위를 점하는 산업들에 끊임없이 부당한 조치를 하고 있어요.

​



​

일본 측에서는 한국은 왜 이미 끝난 문제를 계속 걸고넘어지느냐, 이미 사과했는데 왜 계속 사과를 요구하느냐며 불만일 거예요. 하지만 역사 왜곡은 현재 진행형 문제이고 앞서 사과한 내용도 내각이 달라지면 순식간에 뒤집히니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



​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입장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떼쓴다.' '감정적으로 나온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데요. 이런 반응은 일본의 문화적 배경에 따르면 상대를 아주아주 낮게 평가하는 어법이라고 해요. 다시 말해 일본은 한국을 어린아이로 보고 있는 거예요.

​

​



일본의 혐한 감정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들의 인식으로는 과거 약하고 힘없는 나라 아우국 한국이 형한테 맞먹으려 들고, 약자가 강자인 자신들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또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의 성장과도 관련 있어요.

​



​

군사력 세계 7위의 군사 강국이자 IMF가 발표한 세계 10대 선진국에 드는 한국은 이제 일본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죠. 여기에 더해 한류를 위시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 또한 전통적인 문화강국 일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



​

그래서 일부 일본인들은 이런 한국이 마음에 안 들었고, 혐한이라는 용어가 특히 보수파 장년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 같아요. 작아 보이던 이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지 않죠. 우리 개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

​



(여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 보고 싶네요.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너무 길어지고 있어요^^::)

​

​



산으로 들어가는 자연인 vs

방으로 들어가는 히키코모리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유형의 분들이 계시죠. 히키코모리 연구자인 어느 정신과 의사는 '일본 히키코모리가 에스프레소라면 한국 은둔형 외톨이는 카페라테'라고 하고 있어요. 그 빈도나 증상의 심각성 면에서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더 심하다는 뜻일 거예요.

​



​

사회생활에서 상처를 받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는 이들이 있는 것은 문화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더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죠. 하지만 자신이 상처받는 이유를 일본인들은 자신의 존재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인들은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요.

​

​



원인이 어찌 됐든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고 실제로 개선이 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때 일본인은 방으로 들어가고, 한국인은 산으로 들어간다고 해요.중년의 <나 혼자 산다> 버전인 <나는 자연인이다>.

​



​

각자만의 다양한 사연으로 산에 정착한 이들은 자신이 그곳에서 자유롭다고 이야기해요. 히키코모리와 마찬가지로 외톨이 생활이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산으로 들어간 이들은 산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삶의 이유를 찾아낸 것 같아요.

​

​



이 <나는 자연인이다>가 시청률이 높다는 건 한국인들에게 그런 욕구가 있다는 걸 방증하고 있어요. 사는 건 고되고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산으로 떠나는 이가 많지 않은 이유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

​



청소년기에 방으로 틀어박히는 히키코모리와 달리 자연인들이 대게 중년 이후인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해요. 우리가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다 산으로 들어갔다면 제 아무리 전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일지라도 남아날 산이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사람들에게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지 알쏭달쏭했었던 적이 참 많았어요. 그리고 이해한다는 말이 내가 그걸 수용한다는 뜻인지도 궁금했었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 그저 미완의 문제로 남겨뒀었어요.

​

​



간지러웠는데 긁을 수 없던 등을 누가 시원하게 긁어준 기분이예요. 이해하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이해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의 차이를 배우며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알아두면 좋은 교양서적?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에이든 세계지도로 세계여행 계획하기 - 전세계 여행/문화, 역사이야기를 담은 세계지도, 2022-2023 개정판 ㅣ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에이든 여행지도 시리즈 中

세계지도로 세계 여행 계획하기

​

​


​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교과서가 있어요.

​

​


​

그것은 바로 사회과부도

일명 지도책이죠.

​

​


​

수업시간에 참고자료로

잠깐씩 들춰보긴 했지만

거의 쓰임은 없었던 듯 해요.

​

​


​

지루한 수업시간에는

전 언제나 사회과부도 책을 바닥에 깔고

열심히 들여다 봤던 기억이 나요.

​


​

많이 보니 자연스레 외워졌고

다른 나라 수도 맞히기 게임하면

언제나 승 ㅎㅎ

​


​

​

요즘에는 여행 다닐 때

구글맵 하나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지만

지도 보기는 여전히 취미로 남아있어요.



​



예쁜 패키지에 담겨 있는 지도






여행지도 1장

역사지도 1장

미니맵북 1권

다녀온 곳을 표시할 수 있는

물방울 스티커 2종

​


​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평소에는 벽에 뭘 붙여놓진

않지만 특별히 한번 붙여보기로 해요.

​

​


마스킹테이프 준비





역사 지도

​


​

각국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되어 있어요.

​


​

아이들과 지리 역사 공부하기에도

좋을듯해요.

​






여행 지도

​

​


색감이 무척 예뻐요.

전 짧은 여행보다는 한 도시에서 머무르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해보는 게 좋더라고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오래도록 있고 싶어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떠올리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다녀보고 싶기도 하고

​


​

캠핑카 하나 마련해서

작렬하는 태양빛 쬐며

드넓은 미국 대륙을 누벼보고 싶기도 합니다.

​





그치만 코로나가 마무리 되면

가장 먼저 가고픈 곳은

​


​

이곳입니다!

일본 🇯🇵

​


​

익숙한 곳부터 다시 밟아보고 싶어요.





방수 지도라니 호기심 발동

​

​


물을 부어 보기로 해요🥰

​

​


다른 나라에게 하긴 미안하고

편한 나라 일본에 물 들이붓기 ㅎㅎ





물 붓고 한참 뒀다가

닦아 냈어요

​

​


오 정말 방수 지도예요

닦으니 다시 말끔해졌어요.






지도 보니 떠나고 싶은 곳 천지네요.

​

​


얼른 코로나가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