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 심리학의 눈으로 보는 두 나라 이야기
한민 지음 / 부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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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것 빼면 거의 모든 게 다른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이 만드는 환장의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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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느 포스팅에서 코시국이 마무리되면 제가 가장 먼저 가고픈 나라는 익숙한 일본이라고 했었어요. 그걸 본 어느 이웃님께서 다음 희망 여행지가 일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뭐라고 답글을 써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답하지 않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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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상반되는 양가감정이 존재합니다. 역사 책들을 보며 과거 일제 강점기 때 그들의 만행을 보면 치가 떨리도록 화가 났고, 그의 연장에서인지 한일전이라도 열리면 언제부터 그리 좋아했다고 마치 오랜 축구팬인 양 치열하게 응원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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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여행도 가고 개인적으로 그들과 교류하다 보니 과거에 지녔던 앙금은 눈 녹듯 사라졌고, 그들의 친절함과 배려심에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참 많았습니다. 과거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원전 사고가 났을 땐 친구들이 걱정되어 잠도 못 잤던 기억이 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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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줏대 없는 사람이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걸까 싶기도 했었어요. 같은 대상을 놓고 이러한 양가감정이 드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답답했지만 그 문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일도 없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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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읽은 이 책에서 그런 감정이 드는 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웃님께 유쾌하고도 명쾌한 답글을 달아드릴 수 있지 않았나 싶었어요.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더불어 유교 문화권에 속하죠. 그래서 비슷한 점도 무지 많지만 꽤 명확하게 차이 나는 지점이 많아요.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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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흔히 말하는 보편성과 특수성. 식상하리만치 많이 들어온 말이지만 그 안에 답이 있어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사람들은 보편적인 욕구를 갖지만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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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지만 옷의 재료나 형태, 기능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미의식, 습관에 따라 다 다르기 마련이에요. 그래 그건 나도 알게 하면서도 막상 다른 부분을 맞닥뜨리면 이해한다고 했던 생각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뭐야 신기하다 혹은 왜 저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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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한 나라로 수천 년을 이어오며 빚어낸 문화들을 한 개인이 속속들이 모두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하는 굵직한 이슈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의 원인을 알려주니 무릎을 치며 신나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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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의 나라 일본 vs 먹방의 나라 한국

소위 '성(性)진국'이라 불리는 일본. 이미 산업화된 성산업의 경제적 측면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욕구가 있었어요. 문화적 욕구보다 더 근본적인 교류의 욕구, 사회적 욕구. 이러한 보편적인 욕구가 일본에서는 성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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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그로부터 안정감이 비롯되고요. 따라서 일본인은 타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돼요. 사람은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존재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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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보편적인 사회적 욕구를 한국에서는 어찌 표현할까요? 바로 밥이에요. 이성에게도 "저랑 밥 한번 드실래요?", 누군가 고마울 때도 "내가 밥 한번 살게.", 친구가 아플 때도 "밥은 꼭 챙겨 먹어."라고 말하죠. 이렇게 밥을 통해 한국인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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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여러모로 사회가 변하면서 누군가와 머리 맞대고 밥 먹을 시간이 별로 없어졌어요. 생활 주기도 패턴도 많이 달라지고 있구요. 그렇다고 해서 함께 밥을 먹으며 충족해왔던 욕구들마저 사라진 건 아니에요. 먹방이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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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이상한 걸 먹느냐는 먹방이 본질이 아니었어요. 한국인은 나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보고 싶은 거였어요. 저는 내가 왜 다른 사람 먹는 걸 보고 있지 하며 의아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함께 밥을 먹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외로우니까요 (씁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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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의 이유 vs 혐한의 이유

한국의 반일 감정은 단순히 오랜 이웃의 해묵은 감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요. 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님 등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분들이 여전히 생존해계시고, 그 일제강점기로 말미암아 6.25와 분단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의 원인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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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본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역사, 영토, 산업 등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도발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에요. 일본 학생들의 교과서에 역사왜곡은 물론이고,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최근 무역 제제처럼 한국이 우위를 점하는 산업들에 끊임없이 부당한 조치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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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측에서는 한국은 왜 이미 끝난 문제를 계속 걸고넘어지느냐, 이미 사과했는데 왜 계속 사과를 요구하느냐며 불만일 거예요. 하지만 역사 왜곡은 현재 진행형 문제이고 앞서 사과한 내용도 내각이 달라지면 순식간에 뒤집히니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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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입장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떼쓴다.' '감정적으로 나온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데요. 이런 반응은 일본의 문화적 배경에 따르면 상대를 아주아주 낮게 평가하는 어법이라고 해요. 다시 말해 일본은 한국을 어린아이로 보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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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혐한 감정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들의 인식으로는 과거 약하고 힘없는 나라 아우국 한국이 형한테 맞먹으려 들고, 약자가 강자인 자신들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또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의 성장과도 관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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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세계 7위의 군사 강국이자 IMF가 발표한 세계 10대 선진국에 드는 한국은 이제 일본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죠. 여기에 더해 한류를 위시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 또한 전통적인 문화강국 일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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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부 일본인들은 이런 한국이 마음에 안 들었고, 혐한이라는 용어가 특히 보수파 장년들 사이에서 나타난 것 같아요. 작아 보이던 이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지 않죠. 우리 개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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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 보고 싶네요.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너무 길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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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어가는 자연인 vs

방으로 들어가는 히키코모리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유형의 분들이 계시죠. 히키코모리 연구자인 어느 정신과 의사는 '일본 히키코모리가 에스프레소라면 한국 은둔형 외톨이는 카페라테'라고 하고 있어요. 그 빈도나 증상의 심각성 면에서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더 심하다는 뜻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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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에서 상처를 받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는 이들이 있는 것은 문화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더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죠. 하지만 자신이 상처받는 이유를 일본인들은 자신의 존재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고, 한국인들은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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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어찌 됐든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고 실제로 개선이 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때 일본인은 방으로 들어가고, 한국인은 산으로 들어간다고 해요.중년의 <나 혼자 산다> 버전인 <나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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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만의 다양한 사연으로 산에 정착한 이들은 자신이 그곳에서 자유롭다고 이야기해요. 히키코모리와 마찬가지로 외톨이 생활이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산으로 들어간 이들은 산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삶의 이유를 찾아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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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는 자연인이다>가 시청률이 높다는 건 한국인들에게 그런 욕구가 있다는 걸 방증하고 있어요. 사는 건 고되고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산으로 떠나는 이가 많지 않은 이유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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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방으로 틀어박히는 히키코모리와 달리 자연인들이 대게 중년 이후인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해요. 우리가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다 산으로 들어갔다면 제 아무리 전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일지라도 남아날 산이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사람들에게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지 알쏭달쏭했었던 적이 참 많았어요. 그리고 이해한다는 말이 내가 그걸 수용한다는 뜻인지도 궁금했었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 그저 미완의 문제로 남겨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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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러웠는데 긁을 수 없던 등을 누가 시원하게 긁어준 기분이예요. 이해하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이해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의 차이를 배우며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었던 책이었어요. 알아두면 좋은 교양서적?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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