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 신화가 아닌 보통 사람의 삶으로 본 그리스 로마 시대
개릿 라이언 지음, 최현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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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이야기하면 수많은 영웅들과 신화가 먼저 떠오른다.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해 주기에 드라마나 영화도 자주 나오니 마치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설명하라고 하면 지퍼 잠금. 너무도 방대한 인물들에 치여 머릿속에 정리가 안되니 늘 헷갈리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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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등장하는 영웅들과 굵직한 사건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어릴 때 읽었던 우리 역사 속 일반인의 생활상을 담은 <고려 ·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의 그리스 로마 버전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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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지내는지 요즘처럼 속옷은 다 갖춰 입었는지, 영화나 미드에서처럼 맨날 그렇게 술을 마셔댔는지, 동성애가 성행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는지 등등 유치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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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현대인처럼 면도했을까?

유행은 돌고 돈다.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항상 턱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방식에는 여러 차이가 있었지만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은 콧수염은 깨끗이 면도하고 턱수염은 수북이 기르는 스타일이었다. 말끔한 턱 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통치 시기 이전까지는 여성적이고 나약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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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복자인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건지 이전의 유행과는 역행하며 정기적으로 면도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젊음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운 나쁘게 드문드문한 수염을 가져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우월한 지위가 턱수염 없는 말끔한 얼굴을 유행하게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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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르는 로마인들도 초반에는 그리스인들처럼 털이 수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 유행에 영향을 받아 구레나룻 제거를 시작으로 차츰 턱수염을 밀기 시작했는데 유행의 최전선에는 늘 고위층인 최고 권력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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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른 부위의 털은 어떻게 했을까? 모든 이들은 아니었지만 일부 여성들은 왁스나 화산석을 이용해 다리를 면도했고, 현대의 비키니 왁싱 같은 것도 상당히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로마 시대에는 많은 남성들도 털을 전부 혹은 일부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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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위는 일부 전통주의자들에게 많은 문제들을 제기했는데 털을 조금이라도 미는 것은 의도적으로 남성성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수북한 수염을 가진 철학자와 산뜻하게 매끈한 턱을 가진 웅변가 사이의 털 제거의 도덕성에 관한 열띤 토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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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는 안되는지 그들의 토론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요즘엔 남녀 모두 왁싱이 일반적인데 이 기원이 고대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니 유행은 정말 돌고 도는구나 싶다. 하지만 왁싱은 너무 아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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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진찰실의 풍경은 어땠을까?

생각보다 놀라웠던 건 당시에도 지금처럼 수술을 했고 기본 의료 도구는 현대 수술 도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메스, 겸자, 심지어 고름 추출용 주사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세균 이론에 관한 이해가 없었기에 수술 환경이 몹시 원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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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심각한 수술은 두개골 절개술인 천두술을 시행할 때였는데 마취약이 있을 리 만무했고 허브 추출물을 진정제로 투여하긴 했지만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수술 과정을 의식이 있는 채로 버텨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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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대 저술가의 태평스러운 말에 의하면 훌륭한 외과 의사의 자질은 고통으로 인한 환자의 비명에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쪼개고 자르고 나면 절개 부위를 핀으로 꽂거나 꿰매서 고정하고 나뭇진이나 꿀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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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신 마취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마취제와 진통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난 통증을 잘 참는 편이긴 하지만 고대에 태어났어도 과연 그럴 수 있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마취제와 진통제를 발명해 준 분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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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행위가 지극히 흔한 일로 여겨진 이유는?

그리스·로마인들은 소년과 성관계를 가지는 남성을 변태나 아동 성학대자로 간주하지 않았고 남성이 여성과 소년 모두에게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올바른 상대와 합법적으로 관계를 맺기만 하면 행위는 처벌당하거나 비난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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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에서 남성의 성 정체성은 욕구 대상에 의해 규정되지 않았고 성관계에서 맡은 역할에 의해 규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상대가 여성인지 소년인지는 비교적 덜 중요했다고 한다. 그들의 인식으로는 여성과 소년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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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도 볼 수 있듯 자신이 노예 소년들의 매력을 거부할 수 있는 절제심을 가졌음에 그는 감사했다. 지금은 범죄로 규정된 행위가 그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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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코끼리는 고대 최강의 무기였을까?

난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좀비 무리와 함께 싸우는 전투 코끼리를 처음 봤었다. 단지 스크린 속 설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고대에서 코끼리를 전투에 이용했다는 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에게 코끼리는 순둥이 같은 이미지인데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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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전투에 참여시키기 위해는 먼저 포획하여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수년간의 신중한 감독하에 훈련이 진행됐는데 각각의 코끼리는 호전적인 이름을 부여받았다.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아약스(트로이아 전쟁 영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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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 시에 코끼리들은 전투 무장을 하고 작전이 개시되면 코끼리 부대가 밀어붙이며 진격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코끼리 부대는 전쟁의 무대에서 반짝하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거대하고 육중한 덩치 때문에 숲이나 시가전 혹은 거친 지형에서 활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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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코끼리들은 쉽게 공포에 질리고 아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작은 부상에도 코끼리는 미친 듯이 날뛰었고 코끼리 한 마리가 날뛰면 근처에 있는 다른 코끼리들도 같이 날뛰었다. 그리고 일단 발광하면 코끼리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데 이미 아웃 오브 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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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전투 중 어린 전투 코끼리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지르자 근처에서 싸우던 어미 코끼리가 즉시 새끼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며, 가는 길에 있던 모든 병사를 밟아 뭉갰다고 한다. 양날의 검이었던 코끼리 부대는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잘했어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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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로마사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때로는 그 방대한 역사와 수많은 등장인물에 때론 접근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막상 책을 펼치면 비슷한 이름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아까 나온 사람이 또 나온 것 같은 데자뷔와 함께 머리에 과부하가 올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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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정사보다는 야사에 가까운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는 친근한 그들의 일상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해 준 동시에 곳곳에 산재한 머릿속 공백까지 메워주었다. 또한 그들의 역사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흥미를 유발해 주었기에 고마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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