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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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미 소유한 사람이 눈앞에 있다. 이런 경우 부러운 마음과 들면서 나 역시 그렇게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거나 혹은 부러워만 하다가 끝나거나 하는 게 보통의 상식일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의 모든 걸 내가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출간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 판권이 계약되고,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영상화 판권을 획득하며 화제를 모은 스릴러 소설 <익명작가>. 두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 선악과 이중성 그리고 그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어릴 적부터 소설가가 꿈이었지만 현실의 벽에 어쩔 수 없이 출판사에서 보조로 일하던 플로렌스.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마음속 응어리를 지닌 채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일탈을 한다. 유부남이었던 회사 상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 이를 계기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다.

상사와의 일로 직장을 잃고 그의 가족에게 접근 금지 명령까지 받고도 그녀는 두려움보다는 기이한 쾌감을 느낀다. 통장 잔고를 걱정해야 하는 실직자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은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그 믿음이 이루어진 듯 좋은 제안을 받게 된다.

올해의 전미도서로 선정된 초대박 베스트셀러 <미시시피 폭스트롯>의 작가 모드 딕슨의 조수가 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모드 딕슨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필명 작가로 모든 일은 비밀로 유지해야 하는 계약 조건이 있었지만 뛰어난 작가 곁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모드 딕슨은 사실 헬렌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작가였다. 뉴욕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작가의 집으로 옮겨간 플로렌스는 한동안 조수로서의 생활을 만끽한다.

어느 날 차기작 준비를 위해 떠난 모로코에서 둘은 차를 타고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떠오르지 않는 사고 당시의 상황.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진 헬렌. 병원에서 깨어난 플로렌스는 자신이 이대로 헬렌이 되어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거침없지만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던 헬렌과 그녀의 곁에서 보고 배우며 모든 걸 닮고 싶어 하는 플로렌스. 선택의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두 사람의 행보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스릴러 소설의 매력을 꼽자면 특별히 잔인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스며드는 공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일인 것 같다. 호흡이 좀 더 빨랐다면 더 스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영상화되면 원작 소설과 비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 이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남의 것을 탐내면 그 대가는 더 비싸게 치러야 한다는 게 이 소설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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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면 - 수치심, 불안, 강박에 맞서는 용기의 심리학
브레네 브라운 지음, 안진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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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상처 입고 무시당하고 실망할 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는다. 어찌 보면 생존 본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성인이 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누군가를 상대할 때 자연스레 마음의 가면을 쓰고 행동하게 된다.

이 가면으로 인해 때로는(사실은 자주) 상대를 바라볼 때 좋은 점보다는 약점부터 찾게 되고, 나의 약점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애쓰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들이 우리를 수치심이나 불안, 강박에 더욱 얽매이게 한다는 점이다.

10년 이상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오래도록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마음 가면>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지난 20년간 현대인이 시달리는 수치심, 불안 강박 등 부정 감정 연구에 매진해왔다. 오랜 연구 끝에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은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의 힘과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라는 주제로 TED 강연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 두 강연은 TED 역사상 최다 시청률을 기록한 명강의 중 하나로 회자된다. 짧지만 임팩트 있었던 그 강연에 못다 한 이야기가 책에 상세히 담겨 있다.

🥕수치심, 불안, 강박처럼
현대인이 겪는 고통의 뿌리는
취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있다.

브레네 브라운에 의하면 취약해진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상처받거나 공격당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이걸 숨기기 위해 마음 가면을 쓰면 오히려 수치심과 불안, 강박에 더욱 시달리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취약성을 대담하게 드러내는 것.


'누가 그걸 모르나. 어렵다고..' 하는 생각이 들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이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취약성 드러내기'라는 수치심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먼저 수치스럽거나 불안한 방황을 마주했을 때 그 부정적 메시지를 직시한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인지한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따져본 후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도움은 현실적인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함께 지지하고 공감해 주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수치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즉 문제 상황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다.

🥕어둠을 탐색할 용기가 있어야
우리가 가진 빛의 무한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혹시나 조금 더 손쉬운 방법이 없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역시나 없었다. 다른 모든 인생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다루는 일 역시 상처를 내보이지 않고는 치료받을 수 없듯 취약한 마음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한다.

완벽주의에 대한 그녀의 일침도 따가웠다. '완벽은 유혹적인 말이지만 우리 인생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무조건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아야만 한다. 경기장이란 새로운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껄끄러운 대화일 수도 있고, 창조적인 작업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참여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완벽주의와 같은 강박이나 불안이 쉽게 전염되는 현실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과감히 용기를 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둠을 탐색할 용기가 있어야 우리가 가진 빛의 무한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변화를 바란다면 직접 행동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때로는 작은 수치심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너무 창피해서, 두려워서, 미안해서 진짜 감정을 숨기고 마음 가면을 쓰고 있다면, 이제 그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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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왕 - 트랙의 왕, 러닝슈즈의 왕
이케이도 준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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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왕(陸王). 처음 제목을 보고 축산농가의 재기를 다를 다룬 일본 소설인가 잠시 착각했는데 한자를 보니 고기 육(肉)이 아니었다. 황당한 오해를 남긴 제목은 트랙의 왕, 러닝슈즈의 왕이라는 의미를 지닌 러닝화의 이름이었다.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니 전개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됐고 내 앞에 남은 건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벽돌 한 권. 기꺼이 맞아주겠노라며 책장을 넘겼고 알면서도 맞는 주먹처럼 훅 들어오는 감동은 이 소설의 묘미였기에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는 익숙하지만 그 외의 작품들은 잘 몰랐는데 그는 이미 정평이 난 일본 소설가였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이 영상화되었을 만큼 회사라는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의 면면을 재미와 감동을 곁들여 표현해 내는 작가로 유명한 분이었다.

🥕점차 쇠퇴하는 노포 '고하제야'

일본식 버선인 다비를 제작하는 고하제야는 100여 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작은 기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다비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레 사업도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주거래은행에 대출을 받아 근근이 이어왔지만 실적이 줄어드니 사업 개선을 요구받고 사장 미야자와는 고민을 거듭한다.

🥕러닝슈즈 사업에 뛰어드는 ‘고하제야’

4대째 이어온 노포의 자부심은 충만했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부심만으로는 그들의 전통을 이어갈 수 없었다. 냉정하게 현실을 되돌아본 미야자와는 도태되기보다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러닝슈즈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다.

호기롭게 시작한 새 사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자금 사정은 늘 목줄이 되어 따라다녔고 힘겹게 러닝슈즈 제작에 성공했지만 거대 업체의 훼방에 주저앉기도 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우리의 인생 그 자체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사람들과의 유대

'전통을 지키는 것과 전통에 사로잡히는 것은 다르다. 그 껍데기를 깰 것이라면 지금이 그때 아닐까?' 그 시기를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하지만 고비마다 찾아오는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엔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이 늘 존재했다.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당연한 것 중에 정말 소중한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유대도 그런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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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 - 꼭 가야 하는 도쿄 문구점 80곳
하야테노 고지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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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마니아들의 필수품! 문구류에 한번쯤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었던 것 같다.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펜을 색상별로 구비해놓고 색연필과 형광펜은 꼭 세트로 마련해두면 어찌나 든든하던지 거기에 각종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 그리고 포스트잇도 빠질 수 없다.

지금도 펜은 주로 일본제를 선호하지만 어릴적엔 오로지 하이테크만 썼던 것 같다. 유행하듯 친구들 사이에서는 0.38m펜이 필수품이었는데 볼이 자주 망가져 수시로 교환해야했음에도 왜그랬는지 꼭 그것만 고집했었다. 문구 덕후 신분은 학교와 함께 졸업하려나 했는데 사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은 기존 책들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보는 구조

문구 뿐 아니라 온갖 덕후들의 나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로 일본. 여행일지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하야테노 고지는 '문구 없이는 삶도 없다'(No stationery, No life)라는 모토를 가진 웹매거진 <매일, 문방구>에서 활동중인 열성적 문구 마니아기도 하다.

식당에 쓰는 용어인 줄 알았던 '노포'라는 단어를 오래된 문구점에도 사용하는 그는 일로도 사적으로도 문구점에 아주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한다. 산책하며 문구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문구를 손에 쥐어보고 직원분들과 문구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문구에 진심인 일러스트레이터의 덕심가득 도쿄 문구점 탐방기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작가가 문구점을 즐기는 방법은 정말 덕후스러움이 느껴질만큼 꼼꼼했다. 가장 먼저 가게 분위기, 상품 진열 방식을 살피고 그 가게에는 어떤 테마가 있고 어떤 상품을 추천하는지 체크한다. 필수 체크 포인트는 계산대였는데 가게마다 다른 계산대 디자인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인만큼 모든걸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현해두어서 마치 잡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문구점이 등장하면 한참을 쳐다보다가 도쿄에 문구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꼭 들러보고 싶은 문구점은 체크해두기도 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문구점은 분구박스 오모테산도점. 시즈오카 현에 있던 인기만년필 전문점이 도쿄로 진출한 케이스였는데 만년필부터 만년필 굿즈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오리지널 상품이 있어 손님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세계 만년필 애호가들이 굿즈를 구하러 오기도 하는 곳이라고.

🥕문구 덕후의 시작은 사실 유행을 따르는 것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라는 게 생긴다. 아무거나 유행따라 사기보다는 나만의 취향에 꼭 맞는 값진 물건을 구해 소중히 사용하고 간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덕후의 자세가 아닐까 싶었다.

문구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도쿄의 개성 넘치는 문구점을 누벼보면 좋을 것 같다. 취향이 없다면 탐색을 통해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이미 잘 알고 있다면 더욱 열광적으로 즐기라는 번역자의 말처럼 둘러본 만큼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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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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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사라졌다.”

일제치하부터 근대화 시기까지 우리와 많이 닮은 대만은 여러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복잡한 역사를 품고 모여사는 나라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온 외성인들과 이전부터 대만에서 살던 본성인, 그리고 아주 오래전 태평양을 건너와 섬에 정착한 오스트로네시아족 원주민이 섞여 살고 있다.

지난 2018년 이 소설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르고 주최 측이 작가의 국적을 '대만, 중국'으로 표기한 일이 있었다. 그는 즉각 공개적으고 항의했고 이후 국적 표기가 '대만'으로 되돌려졌다고 한다. 그는 문학의 힘으로 대만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키고자 목소리를 내는 작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부재에 남은 가족들은 덤덤하게 지내왔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비어있던 '청'은 고물 자전거 수집에 몰두한다. 그때 그시절 집집마다 소중한 재산이었던 자전거의 역사를 훑으며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자전거를 찾으면 아버지의 흔적도 함께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전거 수집을 하며 알게 된 고물상 '아부'를 통해 사라진 아버지의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게된 '청'은 '압바스'와 함께 그 자전거가 거쳐온 여정을 더듬어 가보기로 한다. 자전거의 궤적은 시간을 거슬러 제2차 세계대전까지 올라가고 대만을 거쳐 말레이반도, 북미얀마의 밀림의 전장까지 이어진다.

전장의 소용돌이에 내몰린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도 이전의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숨긴채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떠났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았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각자 마음속 의문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무수히 많은 낯선 길 위에서 본의 아니게 적이 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지만 사실 모두가 피해자였다. 이 소설은 전란의 시대에 휩쓸려 상처입고 사라진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위한 의식이기도 했다. 그저 과거에 대한 감상이 아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었다.

소박한 제목과 함께 도입부만 읽고 고물 자전거와 한 가족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인가 했던 이 소설은 주인공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여정을 통해 한 가족사를 시작으로 중간중간 만난 사람들의 기억으로 넓혀간 뒤 대만 역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고증조사를 통한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 환상이 톱니에 맞춰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소설 <도둑맞은 자전거>. 마치 꿈을 꾼듯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신비하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속에 빠져들어 허우적대다 이제 막 빠져나온 것 처럼 아련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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