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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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사라졌다.”

일제치하부터 근대화 시기까지 우리와 많이 닮은 대만은 여러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복잡한 역사를 품고 모여사는 나라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온 외성인들과 이전부터 대만에서 살던 본성인, 그리고 아주 오래전 태평양을 건너와 섬에 정착한 오스트로네시아족 원주민이 섞여 살고 있다.

지난 2018년 이 소설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르고 주최 측이 작가의 국적을 '대만, 중국'으로 표기한 일이 있었다. 그는 즉각 공개적으고 항의했고 이후 국적 표기가 '대만'으로 되돌려졌다고 한다. 그는 문학의 힘으로 대만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키고자 목소리를 내는 작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부재에 남은 가족들은 덤덤하게 지내왔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비어있던 '청'은 고물 자전거 수집에 몰두한다. 그때 그시절 집집마다 소중한 재산이었던 자전거의 역사를 훑으며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자전거를 찾으면 아버지의 흔적도 함께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전거 수집을 하며 알게 된 고물상 '아부'를 통해 사라진 아버지의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게된 '청'은 '압바스'와 함께 그 자전거가 거쳐온 여정을 더듬어 가보기로 한다. 자전거의 궤적은 시간을 거슬러 제2차 세계대전까지 올라가고 대만을 거쳐 말레이반도, 북미얀마의 밀림의 전장까지 이어진다.

전장의 소용돌이에 내몰린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도 이전의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숨긴채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떠났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았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각자 마음속 의문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무수히 많은 낯선 길 위에서 본의 아니게 적이 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지만 사실 모두가 피해자였다. 이 소설은 전란의 시대에 휩쓸려 상처입고 사라진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위한 의식이기도 했다. 그저 과거에 대한 감상이 아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었다.

소박한 제목과 함께 도입부만 읽고 고물 자전거와 한 가족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인가 했던 이 소설은 주인공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여정을 통해 한 가족사를 시작으로 중간중간 만난 사람들의 기억으로 넓혀간 뒤 대만 역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고증조사를 통한 실화를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 환상이 톱니에 맞춰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소설 <도둑맞은 자전거>. 마치 꿈을 꾼듯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신비하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속에 빠져들어 허우적대다 이제 막 빠져나온 것 처럼 아련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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