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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
필립 한든 지음, 김철호 옮김 / 김영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긴 여정 속에서 마주하는 자유로움과 평화,《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

 

 

 

 

 

 
꼭 챙겨야 할 무언가를 빠뜨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넘치도록 챙기는 게 낫다고 생각해왔다.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물건을 찾는 데에 실패한 날에는 그 물건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임에도 하루 종일 아쉬움이 남는 반면, 이것 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날에는 어깨가 조금 아플 지언정 기분이 나쁠 일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로 분주한 요즘도 이런 습관은 변함 없이 이어진다.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이를 다 마치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늘 계획한 바의 1.5배 정도는 들고 다닌다. 



이렇듯 채우기를 거듭하는 나날은 사실 귀찮고 힘들 때가 많다. 넘치게 담아내도 한 두 가지씩 놓치는 경우가 더러 생기기도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에 회의하던 차에 만난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은 선물과도 같았다. 처음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을 접하고는 막연히 여행에 관한 도서일 것이라 추측했다. 구력이 상당한 배낭여행가가 자신의 여행길을 함께 한 물품들을 소개하는 책이겠거니 했다. 마침 8월 즈음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지라 여러 모로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막상 첫 페이지를 넘겨 보니 그간의 추측이 공상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가볍게 떠나기'를 이야기하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자아낸다. 짐 없는 여행, 한 장 나뭇잎처럼 단아하게 걸어가는 인생길은 책을 통해 녹여내려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일본 여행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큰 자산이 될 수 있을테니, 또 그 자체가 삶의 일부이기에 나의 귀여운(?) 예상이 저자의 의도와 완전 동떨어진 것이라 보긴 어렵겠지만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나갈 생각이었기에 그 괴리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사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여행 계획이 취소되면서 이 책에 좀더 몰입할 수 있는 조성되었다. 얇은 두께, 가득 찬 여백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동화 같은 장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한 날에서 다른 날로

탄생에서 죽음으로







이 책은 총 41명의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을 담고 있다. 선정된 인물들 중에는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도 있고, 다소 생경하게 다가오는 인물도 있다. 마르셀 뒤샹,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이들은 전자에 해당하고 조시마 신부, 가모노 초메이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만을 수록했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보다 쉬웠을 것이고, 또 이야기를 꾸려가기 편했을지 모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담긴 어려웠을 테다. 그렇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행자들을 담아내면서 책의 구성은 한층 다채로워졌다. 소지품 목록을 제시하기 전에 해당 인물에 대한 설명을 수록하여 이해도와 설득력을 높였고, 이들 여행자들이 실천해 온 비움의 미학과 자유로운 삶을 어떠한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간단한 소지품들의 나열이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필통, 노트북, 종이 더미 등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근사한 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소지품을 모아 출판할 생각을 한 것도 신기하고, 이것들이 문학성을 지니도록 적절히 배치한 작업은 대단하게도 느껴진다. 특히 각각의 목록들은 정돈된 시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소유자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조시마 신부의 목록은 그가 검소한 삶 속에서 신앙의 길에 몰두해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레이먼드 카버의 할 일 목록은 그의 취향이나 성향, 천진난만한 면모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섬세한 작업은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구성을 유지하기에 지루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페이지에는 소소한 위트와 묵직한 한 방이 있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북극제비갈매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뜬금 없이 동물이 등장한 것도 특이한데 그 이름까지 생경한 지라 궁금증은 더해갔다. 생각해보니 동물들도 꼭 챙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마음을 너무 몰라준 것 같기도 했다. 기대감을 안고 페이지를 넘기니 예상치 못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35,000킬로미터 대장정에 나서는 북극제비갈매기는 그저 혈혈단신으로 비행에 집중할 뿐이다. 먼 길을 떠나는 존재는 당연히 커다란 짐덩어리를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채움에 주력한 관성에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편협함, 그리고 작은 장치로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 저자의 센스에 다시금 놀라는 순간이었다.







고작 몇 시간 집을 떠날 때에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던 짐들이 문득 버겁게 느껴졌다. 단 하나의 짐 없이 긴 여정을 떠나는 북극제비갈매기, 최소한의 물품만을 지닌 채 느린 호흡으로 인생길을 걷는 여행자들. 그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고, 짓눌린 무게가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비움'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다. '내려놓음' 내지는 '무소유' 등의 삶의 방식들이 도서나 방송 등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 '멍 때리기의 기적'이 화제가 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실제 삶을 바꿔나가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욜로와 휘게를 외치며 매 순간을 즐기려 하지만 그 외침의 이면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회의, 부담 등이 각인되어 있는 건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주위를 둘러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시선은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자유로운 여행자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독한 관성을 곱씹을 수 있게 하고, 또 자유로운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자체로 이 책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찌보면 여행자에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내게 '더 나은 길'은 이 책에 실린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현실은 조금 다르지만, 긴 호흡으로 여유로이 걸어가다보면 언젠가 그와 유사한 모습을 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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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 크기의 생물학
모토카와 타츠오 지음, 이상대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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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척이다. 어느덧 티셔츠 위의 가디건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따뜻한 이불보다는 시원한 에어컨이 반가워진다. 계절의 변화야 으레 있는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게 뭐 있냐 싶으면서도, 곧 마주해야 할 불청객을 떠올리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름이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작은 거인, 다름 아닌 모기 이야기다. 고작 손톱만한 녀석이지만 가공할 파괴력을 가졌기에 등장했다 하면 경계태세를 발동해야 한다. 앵앵 소리에 잠을 설칠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내겐 그저 귀찮고 싫은 존재에 불과한 모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의 저자 역시 이 작은 생명체에게 관심을 갖는다. 모기 뿐만 아니라 곤충들, 곤충보다 훨씬 작은 미생물, 그리고 크기가 작은 애완동물에서부터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를 지닌 동물들까지 다양한 크기의 생명체들이 책 속에 등장한다. 크고 작은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건 특별할 게 없는 것이지만 저자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자연 법칙을 탐구함으로서 자신의 저작을 특별하게 만든다. 구체적인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동물의 크기와 시간 / 2. 크기와 진화

3. 크기와 에너지 소비량 / 4. 식사량, 서식 밀도, 행동권

5. 달리기, 날기, 헤엄치기 / 6. 왜 바퀴 달린 동물은 없는 걸까?

7. 작은 수영 선수들 / 8. 호흡계와 순환계는 왜 필요한가

9. 기관의 크기 / 10. 시간과 공간

11. 세포의 크기와 생물의 건축법 / 12. 곤충 - 작은 크기의 달인

13.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 / 14. 극피동물 - 조금만 움직이는 동물





이 책은 크기에 따른 차이에 착안하여 외형에서부터 근본적 구성원리로까지 논의를 이어간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러한 서술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가령 크기와 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서술에서는 크기가 큰 동물일수록 에너지 소비량이 많다는 결론을 예상했지만, 저자는 반대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에너지의 절대적 소비량은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사실이나 에너지 소비량를 체중과 결부시킨 상대적 수치는 생명체의 크기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크기와 시간의 관계에 대한 서술에서도 의외의 흐름이 이어진다. 우선 저자는 동물의 시간이 체중의 4분의 1제곱에 비례하고, 크기가 커짐에 따라 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후 굳이 '4분의 1'이어야 하는 이유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뒤따른다. 시간에 대한 서술은 책의 제목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에 나름의 이론이 제시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토머스 맥마흔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그 이유를 밝히고자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솔직함(?)이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왔지만 오히려 핵심적인 부분이 물음표로 남게 되면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한편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누군가에겐 불친절한 책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여러 논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수식이 주된 설명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교양서의 수준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수록해놓았기 때문에 사실 '수식'이라 표현하기 민망하긴 하지만, 수식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로 진입장벽이 형성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막연히 상관관계를 추정하기만 했던 부분들이 간단한 식을 통해 명쾌하게 해결되는 과정에서 쾌감이 느껴졌고, 수식이 언어로 기능하는 현장을 목도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언어로써의 수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책장을 넘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시사하는 바를 하나씩 짚고 넘어가는 작업이 지난하게 이루어졌다. 답답한 마음에 때때로 책을 덮고 싶기도 했지만 조금씩 계속 읽다 보니 내용이 점차 진행되었고, 생경했던 수식들도 점차 익숙해졌다. 저자의 의도를 보다 수월하게 파악하여 흥미가 커진 것 역시 유의미한 수확이었다.





시간이 몸길이의 4분의 3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은, 길이는 공간의 단위이므로 동물에게는 시간과 공간이 어떤 일정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_172쪽







동물의 크기와 시간의 연계는 탈 생물학적 고민을 수반한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은 아인슈타인 이후 정설로 받아들여진 개념이나, 몸길이의 4분의 3제곱에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는 다른 차원의 논의로 확대될 여지를 남긴다. 이를테면 시간이 몸길이에 비례한다는 건 크기가 다른 생물종이 서로 다른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는 곧 모든 존재들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감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몸길이가 100% 일치할 수 없기에 조금씩의 오차를 둔 채 세계를 공유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감각의 동일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당면한 현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일 수도, 또 미래일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재 내가 감각한 어떤 것이 다른 이에게 '공유하는 현재'로서 온전히 전달된다고 보장하긴 어렵다. 조금 더 이상한 방향으로 확장시켜 보면, 보통 기민하게 움직이며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속도 면에서 우위를 지니기에 높은 사냥 성공률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이들 동물들이 다른 동물종보다 빠른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먹잇감이 채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낚아채는 것일 수도 있다. 매우 유아적인 발상이지만 이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전제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동물학에서는 시간이 결코 유일하고 절대 불변인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동물에는 동물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가는 각자의 시계가 있고, 우리의 시계로 다른 동물의 시간을 단순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_171쪽







저자는 시종일관 동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드러낸다. 그에게 동물은 단지 연구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동반자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관찰이 가능했고, 또 작은 변화 하나하나까지 캐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물을 통해 세계의 구성원리를 파헤치려는 거대한 작업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은 이러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독자의 입장에서 그걸 느끼게 되니 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됐다. 피상적으로 지식을 접하는 태도를 지양하고자 했고 저자의 질문에 보다 이입하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지 책을 다 읽은 후 동물학에 대한 거대한 장벽 하나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물 연구는 수의학이 전부인 줄 알았던 무지랭이에게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두께는 얇은 편이나 그리 가벼운 책은 아니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활자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있는 게 사실이고, 생명과학에서 철학까지 방대한 학문의 영역을 넘나든다. 그렇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아가 생명체의 신비와 세계의 구성원리에 대해 파헤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접해봄직한 책이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 완독을 이뤄내고 나면 한 뼘 자라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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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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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에 대하여

 


 

 
20세기의 국제사회는 격동의 공간이자 불균형이 지배하는 장이었다. 세계대전 이전까지 제국주의가 득세하면서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국 간에 비대칭적 관계가 형성되었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본격적인 패권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속에서 승자와 패자는 발생하기 마련이었으며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은 대체로 서방의 국가들이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약진하였고 중국의 굴기가 대단했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서방세계에 있었다. 진영간 충돌의 최전방으로 동아시아는 그저 특수한 지역에 불과했다.

수많은 '최초'가 중국에서 비롯되었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무려 고려에서 탄생했음에도 왜 동양은 서양과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일까. 21세기 들어 동아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특히 문화 부문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도전자의 입장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동서양 힘의 차이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대한 고민은 꽤 오랜 시간 이어지던 차였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접하며 궁금증을 해소하곤 했지만 조금씩 부족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생각의 지도>는 내게 단비와도 같았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을 통해 문화의 원형을 찾고 차이가 만들어 낸 현상을 규명하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저자 리처드 니스벳은 원래 보통의 서양인들처럼 인간의 사고 과정은 환경과 무관하게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형성 및 구성된다는 '보편주의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국인 학생이 그의 견해를 반박하며 문화권에 따른 시각의 차이를 주장했는데, 그 내용에 충격을 받은 저자가 본격적으로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학생의 주장이 일리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동서양의 사고 방식의 차이에 대해 탐독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였으며 <생각의 지도>는 그러한 연구가 담긴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차이의 기원, 그 차이가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까지를 포괄하고자 했다. 그리고 말미에는 상이한 두 접근이 서로를 향해 수렴할 것인지 혹은 간극을 벌릴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였다.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동양인의 도와 서양인의 삼단논법 -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철학, 과학, 그리고 사회 구조

2.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 현대 동양인과 서양인의 자기 개념

3.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의 차이

4.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 동양과 서양의 인과론적 사고

5.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 동양의 관계와 서양의 규칙

6.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중용

7.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 - 경제 구조와 사회적 행위

8.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 실생활에 주는 교훈





저자의 논의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고대 중국의 사람들은 관계를 중시했다. 이러한 차이는 현대까지 이어지며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만든 근본적 동인이 되었다. 동양인들은 상호의존성을 중시하여 대립각을 세우며 논쟁하기 보다는 적정한 선을 찾아 타협하려 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독립성을 중시하며 논쟁을 피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기 개념의 차이는 인과론에 대한 차이로 이어진다. 즉 동양인들은 수없이 많은 변인들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원인으로 보지만 서양인들은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저자는 동서양의 언어가 이러한 차이를 잘 드러낸다고 보았다. 동양의 아이들은 동사를 빠르게 배우는 데에 반해 서양의 아이들은 명사에 먼저 익숙해진다. 이는 범주화를 중시한 서양과 분명한 범주를 설정하는 데에 거부감을 가진 동양의 인식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동양에서도 일찍이 철학이 부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유체계의 발전과 형식논리의 경향은 서양에서만 관찰된다. 지식의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동양의 시각에서 볼때 이들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동서양의 차이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지리적, 생태적 특성 역시 제시한다. 동양과 서양은 상이한 지리적 환경을 지니고 있고, 이는 이들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산업이 싹트는 배경이 된다. 그 영향으로 공동체의 규모나 작동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논의를 마무리하며 저자는 동서양의 차이는 내재적이며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학습한 동양인 학생들은 동양과 서양의 중간쯤에 위치한 성향을 보이고, 반대로 동양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서양인들 가운데 동양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동서양의 상이한 사고 방식에는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고 부연한다. 특히 국가 간의 지리적, 문화적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핵심 논지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지니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생각의 지도>는 더더욱 의미 있는 통찰임을 알게 된다. 서양에서 인본주의가 등장한 것과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맥락을 같이 한다. 개별성의 내재화는 '개인' 개념을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었고, 동시에 현상에 대한 개별적 이해를 바탕으로 원리를 설명하도록 했다. 당장의 실용성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원리에 대해 우선적으로 탐독하는 과정을 통해 지적 팽창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양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서양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주체로 발전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호모데우스>를 통해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쪽이 아닌 변화를 창조하는 쪽이 주도권을 잡는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 유발 하라리의 견해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연구방법론의 우수성과 깔끔한 번역은 이 책의 격을 높인 또 다른 요인이다. 전자에 대해, 저자의 연구 속 실험들은 가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설계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이루어져 큰 충격과 놀라움을 느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후견지명 효과에 관한 연구 내용이다. 저자 니스벳은 '만일 세상에 대한 모델이 분명하지 않고 매우 많은 요인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막연히 믿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난 후에 그 일을 설명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라는 가정을 세웠다. 이를 규명하기 위한 실험 상황에서 세 개의 조건이 설정되었고, 각 조건 하에서 동서양 학생들의 반응 차이를 관찰하고자 했다. 실험의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세 가지 조건의 구체적 내용이나 그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이 책을 번역한 최인철 씨는 현재 서울대 교수이자 과거 저자에게 지도를 받은 제자이다. 사회심리학 분야에 대한 전문가이기에 어려운 내용을 수월하게 풀어낼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저자와 함께 공부하며 학문의 방향성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책은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읽히고, 다량의 실험, 관찰 결과가 수록되어 있지만 주된 맥락을 잃지 않으며 전개된다.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역자의 공은 저자 연구의 우수성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제목도 꽤 흥미롭다. 번역판 제목은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고 원제목은 "The Geography of Thought :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이다. 언뜻 비슷해보이나 조금만 뜯어보면 여기에도 저자가 이야기한 동서양의 차이가 드러난다. 원문의 부제는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반해 번역판의 제목은 상대적으로 포괄적이면서도 함축적이다. 번역판의 제목에 대한 비판이 가끔 눈에 띄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차이의 근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배하는 미래의 세계에서 동서양 사이의 불균형이 완전히 해소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에서 개체 위주의 사고가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맥락 위주의 사고를 지속하는 동양인들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일은 요원해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사고 방식의 차이가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또한 시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면서 유연한 사고를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구는 기존의 시각이 지닌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은 대체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미래지향적 입장에서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동서양의 불균형에 균열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저자의 연구가 다져놓은 초석 위로 다양한 후속 연구들이 등장하여 변화를 도모할 수 있었으면 한다.



















44쪽_그리스인들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보았고,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논쟁을 중시했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인들은 인간을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조화라고 생각했다.


222쪽_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 방식과 기술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든지 같은 문화권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해결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해결할 때 문제 해결이 훨씬 쉬울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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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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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마주하다,
모양도 형태도 다양한 사랑을 위하여




 

 
지난 3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가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판의 미로>, <퍼시픽 림> 등으로 유명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 바 있었는데, 여러 부문에 걸친 수상을 통해 작품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책 <셰이프 오브 워터>는 동명 영화의 원작소설로, 델 토로 감독과 대니얼 크라우스가 집필한 작품이다. 원작을 읽은 후 영화를 보면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하여 영화를 먼저 보려고 했으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약간의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는 해리포터 시리즈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의 경우 원작소설을 먼저 읽은 후 영화를 봤음에도 영화는 영화대로, 또 소설은 소설대로 감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기에 굳이 순서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햇빛이 잔잔히 비추는 어느 오후, 카페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볼륨이 좀 있어서 다 읽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 자리에서 마지막장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미소 냉전이 심화되던 1960년대 미국의 항공우주 연구센터 비밀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시간적, 장소적 배경이 극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중심사건인 '데우스 브랑퀴아'의 등장과 최후도 이 배경의 맥락에서 펼쳐지기에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을 꼽자면 배경보다는 인물을 들 수 있다. 소챕터가 바뀔 때마다 초점인물이 달라지는 복잡한(?) 구성을 택했음에도 오히려 그러한 구성이 다채로움으로 다가오는 건 각각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극 중 인물들은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 미시적 개인으로 읽히면서도, 당시의 사회상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기도 한다. 이를테면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 리처드 스트릭랜드와 온정을 지닌 연구원이자 소련의 스파이인 호프스테틀러는 국가에 종속된 인물을 의미한다. 또한 고아원에서의 불우한 유년기를 뒤로한 채 연구소의 청소부로 일하는 벙어리 엘라이자, 동성애자 노인이자 화가인 자일스, 연구소의 청소부인 흑인 여성 젤다, 그리고 스트릭랜드의 부인 레이니는 당시 사회의 소외된 약자를 대변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자 주인공 엘라이자는 벙어리라는 이유로 고아원 친구들과 원장에게 끊임 없이 핍박을 받았고, 고아원을 떠난 이후에도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자일스와 젤다는 그런 그녀의 곁을 지켜 준 든든한 친구였으며 괴생명체 데우스 브랑퀴아는 그녀를 그 자체로 바라봐 준 유일한 존재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건 운명과도 같았으며, 저자들은 로맨스를 꽃피우기 위해 곳곳에 복선을 위치시킨다.

자일스와 젤다는 약자이면서도 현실에 항거하는 적극성을 지닌다. 일례로 젤다는 청소부라는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더해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탓에 멸시를 받는다. 심지어 엘라이자와 함께 있을 때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한 차별을 겪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언론을 통해 흑인의 항거 소식을 접하며 가슴 속에 불씨를 키우고, 말미에는 엘라이자를 위해 위험을 자처한다. 자일스 역시 동성애자이자 노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비난과 무시의 대상이 되지만 때때로 불합리한 처사에 항거하고, 결정적 순간에는 엘라이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리처드 스트릭랜드의 부인 레이니도 의미 있는 인물이다. 이전까지 그녀의 삶은 자식과 남편을 위한 희생으로 점철되었지만, 우연한 기회로 직업을 얻으면서 점차 주체성을 확보한다. 억압적 구조 하에서 있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며 독립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대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한편 연구원 호프스테틀러와 군인 리처드 스트릭랜드는 항공우주 연구소의 직원으로 일하며 비밀스러운 연구에 깊이 관여한다. 사실 호프스테틀러는 소련 당국에 부모님을 볼모로 잡혀 반강제적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며 임무가 종료될 날만을 기다리는 스파이다. 동시에 스파이라는 정체에 걸맞지 않게 온정을 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괴생명체에 대해 냉엄한 태도를 취하는 스트릭랜드와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대부분의 경우 스트릭랜드에게 깨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후에는 엘라이자의 시도를 돕기도 하고, 소련 정부에 거짓 보고를 한 사실이 들통나 죽음을 맞이한다. 호프스테틀러와 스트릭랜드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나, 미소 간의 대립 구조 속에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길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호프스테틀러가 그 요구 속에서도 보편적 가치를 놓지 않은 인물이라면, 스트릭랜드는 끝까지 시대에 순응하여 구조와 자신을 동일시한 인물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미소 냉전이 심화되던 1960년대 미국의 항공우주 연구센터 비밀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시간적, 장소적 배경이 극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중심사건인 '데우스 브랑퀴아'의 등장과 최후도 이 배경의 맥락에서 펼쳐지기에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을 꼽자면 배경보다는 인물을 들 수 있다. 소챕터가 바뀔 때마다 초점인물이 달라지는 복잡한(?) 구성을 택했음에도 오히려 그러한 구성이 다채로움으로 다가오는 건 각각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극 중 인물들은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 미시적 개인으로 읽히면서도, 당시의 사회상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기도 한다. 이를테면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 리처드 스트릭랜드와 온정을 지닌 연구원이자 소련의 스파이인 호프스테틀러는 국가에 종속된 인물을 의미한다. 또한 고아원에서의 불우한 유년기를 뒤로한 채 연구소의 청소부로 일하는 벙어리 엘라이자, 동성애자 노인이자 화가인 자일스, 연구소의 청소부인 흑인 여성 젤다, 그리고 스트릭랜드의 부인 레이니는 당시 사회의 소외된 약자를 대변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자 주인공 엘라이자는 벙어리라는 이유로 고아원 친구들과 원장에게 끊임 없이 핍박을 받았고, 고아원을 떠난 이후에도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자일스와 젤다는 그런 그녀의 곁을 지켜 준 든든한 친구였으며 괴생명체 데우스 브랑퀴아는 그녀를 그 자체로 바라봐 준 유일한 존재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건 운명과도 같았으며, 저자들은 로맨스를 꽃피우기 위해 곳곳에 복선을 위치시킨다.

자일스와 젤다는 약자이면서도 현실에 항거하는 적극성을 지닌다. 일례로 젤다는 청소부라는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더해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탓에 멸시를 받는다. 심지어 엘라이자와 함께 있을 때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한 차별을 겪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언론을 통해 흑인의 항거 소식을 접하며 가슴 속에 불씨를 키우고, 말미에는 엘라이자를 위해 위험을 자처한다. 자일스 역시 동성애자이자 노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비난과 무시의 대상이 되지만 때때로 불합리한 처사에 항거하고, 결정적 순간에는 엘라이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리처드 스트릭랜드의 부인 레이니도 의미 있는 인물이다. 이전까지 그녀의 삶은 자식과 남편을 위한 희생으로 점철되었지만, 우연한 기회로 직업을 얻으면서 점차 주체성을 확보한다. 억압적 구조 하에서 있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며 독립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대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한편 연구원 호프스테틀러와 군인 리처드 스트릭랜드는 항공우주 연구소의 직원으로 일하며 비밀스러운 연구에 깊이 관여한다. 사실 호프스테틀러는 소련 당국에 부모님을 볼모로 잡혀 반강제적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며 임무가 종료될 날만을 기다리는 스파이다. 동시에 스파이라는 정체에 걸맞지 않게 온정을 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괴생명체에 대해 냉엄한 태도를 취하는 스트릭랜드와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대부분의 경우 스트릭랜드에게 깨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후에는 엘라이자의 시도를 돕기도 하고, 소련 정부에 거짓 보고를 한 사실이 들통나 죽음을 맞이한다. 호프스테틀러와 스트릭랜드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나, 미소 간의 대립 구조 속에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길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호프스테틀러가 그 요구 속에서도 보편적 가치를 놓지 않은 인물이라면, 스트릭랜드는 끝까지 시대에 순응하여 구조와 자신을 동일시한 인물이다. 




"그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란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절체절명의 시대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체제에 순응하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나름의 저항 방법을 찾는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낸 요인을 이 책에서는 '사랑'이라 이야기한다. 하찮은 청소부 엘라이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괴생명체와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 후 그를 연구소에서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곧 실행에 옮긴다. 동성애자 자일스는 엘라이자에 대한 사랑(=깊은 우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 계획에 일조하며, 흑인 청소부 젤다 역시 위기에 빠진 그녀를 돕는다. 스트릭랜드의 부인 레이니는 갈 곳 잃은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새로운 주체로 탄생한다. 여러 중심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해피엔딩으로 느껴지는 건 이야기 속 사랑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일 거다. 반면 스트릭랜드는 엘라이자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 발현이 시종일관 뒤틀린 형태로 이루어졌기에 그의 죽음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 대한 호평의 이유 중 하나는 모양도 형태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잘 풀어냈다는 것이다. 종을 뛰어 넘은 숭고한 사랑, 친구와의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이 작위적이지 않게 이어진다. 특히 이러한 작업이 소외된 이들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다양한 양상의 사랑들이 결국은 연인과의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여주인공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와의 사랑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게 사실이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두 주체가 서로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따스한 마음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네러티브다. 그럼에도 모든 인물들이 두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헌신하고 또 이것이 결실을 맺음으로써 비로소 다른 형태의 사랑들이 빛을 보는 구조를 통해 사랑에도 소위 '최종보스'는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흑인, 성소수자, 경제적 약자 등의 이야기를 은근히 담아내며 논의의 층위를 다양하게 구성했지만 후반부에 이들을 전부 사랑으로 귀결시키면서 이전까지의 작업들이 허공에 흩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적절히 녹여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성공적인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랑만능주의'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라 아쉬움이 남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다양한 감상포인트를 지닌 책이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인물을 중심으로 읽어낼 수도 있고, 두 주인공의 사랑에 집중할 수도 있으며 약자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중요한 소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극에 영향을 주기에 이를 따라가도 흥미로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리처드 스트릭랜드를 보면서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떠올라 두 인물을 비교하는 작업 역시 즐거웠다. 이런 매력 탓에 이 책을 그저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마음이 든다. 많은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주의가 분산된 감이 조금 있지만,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소설을 읽으며 그 세계 속에 빠져든 건 꽤 오랜만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면서 극 속의 전지적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유형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소득이다. 내용 측면의 장점 외에도, 전체적 분위기를 잘 담은 표지 디자인 역시 소장욕구를 키우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표지의 질감이 일반적인 책과 달라 손에 쥐고 있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영화를 본 이들은 영화가 담지 못한 의미들을 알아가기 위해서라도 읽어봄직 하고,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은 감각적인 소설을 접한다는 기대를 갖고 읽으면 좋겠다. 습기 어린 요즘 같은 날씨에 특히나 잘 어울리는 책이기에 구매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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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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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깃든 밥과 숨, 그리고 삶을 읽다.





 
누군가와 깊은 유대감을 공유할 때 나는 그와 막역한 사이라 느낀다. 대체로 그러한 유대감은 서로에 대해 잘 알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단 한 가지의 접점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경우 생각지도 못하게 관계가 진전되기도 한다.

책을 읽은 후 드물게 작가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장르나 분야와는 상관 없이 작가의 생각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는 다르더라도 내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신기한 점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많이 풀어 놓는다고 해서 작가와의 조우가 쉬워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책은 사람이 쓴 것이기에 관계 형성의 매개로 기능하곤 하지만, 그 매커니즘은 직접적인 인간관계 만큼이나 복잡하다.


<문성희의 밥과 숨>은 첫인상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누군가와 점차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로 발전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 문성희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보통의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개인적 이야기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툭툭 던져내는 것이, 초반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내용이 전개되면서 이게 자신이 원하는 말을 전달하는 저자의 방식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저자 그 자체임을 느낄 수도 있었다. 독서를 마무리한 순간에 나는 마치 작가와 막역한 사이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을 경험했다.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삶을 읽어 내리면서 나와 같지는 않을 지언정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네 부분으로 짜여진 1부에서는 그녀의 삶과 철학을 덤덤히 풀어낸다. 요리를 하신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 사랑했던 연인을 먼저 떠나 보낸 상실감, 딸을 만나고 수행길에 오르며 깨달은 삶의 방식 등이 오롯이 담겨있다. 책에 실린 건 극히 일부분일 것임에도 저자를 만든 경험들은 다소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먹기와 숨쉬기만 잘하면 생명은 이어진다"는 말,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야.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달리되 초반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는 말거라. 지치지 않고 완주하려면 속도를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는 조언은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또 명상을 위해 인도에 다녀 오는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밥도 숨도 거저 얻어진 건 없다.


한편 2부에서는 작가와 그 딸이 엄선한 스무 가지 요리를 소개한다. 작가가 몸에 좋은 열 가지의 죽 요리를 꺼내들었고, 딸은 젊은이들이 쉽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열 가지의 음식을 공개했다. 자연적인 재료와 레시피를 통해 건강을 챙기면서도 모든 연령대가 좋아할만한 메뉴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요리에 담긴 이야기와 그 요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사진, 그리고 간단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내가 만들면 그와 같은 모양새와 맛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166쪽)





책을 읽는 내내 누가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와 명상이라는 두 축 아래 다양한 갈래의 성찰이 담겨 꽂힐 만한 포인트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리 자체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는 거리가 멀고, 숨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는 더더욱 도달하지 못했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스파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삶'을 부정하려 했지만 결국 원래의 길로 회귀한 내게 작가가 추구하는 삶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상과 현실의 기로와 그 속에서 경험하는 무한대의 무기력. 작가에게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닐테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된다"는 이야기로 현실이 곧 이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자를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건 너무 많은 기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완전한 이상도 없고, 완전한 현실도 없지만 100%의 만족 혹은 크나큰 성공을 꿈꾸기에 선택이 더욱 어려웠던 것도 같다. 삶에 경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각각의 삶은 저마다의 모습을 지닌다. 그렇기에 획일적 모습은 '으레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 이렇듯 생각이 꼬리를 무는 과정에서 작가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간만에 형용하기 힘든 책을 만났다. 마땅히 설명할 만한 언어를 찾기도, 추천의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기도 난감하다. 그저 넓고 깊은 사유의 바다에 빠져들 수 있는 책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읽고 여운이 남은 이들은 작가가 상주하는 '시옷'에 방문해도 좋겠다. 연희동에 위치한 '시옷'은 작가가 딸과 함께 꾸린 공간이다. 저서 <평화가 깃든 밥상>을 구현하는 공간이자,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쿠킹클래스를 진행하고, 일주일에 딱 한 번 예약한 손님에 한해서만 평화가 깃든 '평밥'을 판매한다고. 식단은 문성희 씨와 딸이 협의를 통해 정하기에 메뉴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단다. 종종 연희동에 가지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슴슴한 자연 밥상을 좋아하기에 한 번쯤 들러 평밥을 맛보고 싶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통해 '숨'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느꼈으니 '시옷'에서 '밥'을 통해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숨쉬기를 멈출 때, 밥 먹기가 끝날 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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