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시대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체제에 순응하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나름의 저항 방법을
찾는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낸 요인을 이 책에서는 '사랑'이라 이야기한다. 하찮은 청소부 엘라이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괴생명체와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 후 그를 연구소에서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곧 실행에 옮긴다. 동성애자 자일스는 엘라이자에 대한 사랑(=깊은
우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 계획에 일조하며, 흑인 청소부 젤다 역시 위기에 빠진 그녀를 돕는다. 스트릭랜드의 부인 레이니는 갈 곳 잃은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새로운 주체로 탄생한다. 여러 중심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해피엔딩으로 느껴지는 건 이야기 속
사랑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일 거다. 반면 스트릭랜드는 엘라이자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 발현이 시종일관 뒤틀린 형태로 이루어졌기에 그의
죽음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 대한 호평의 이유 중 하나는 모양도 형태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잘 풀어냈다는 것이다. 종을 뛰어 넘은 숭고한 사랑, 친구와의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이 작위적이지 않게 이어진다.
특히 이러한 작업이 소외된 이들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다양한 양상의
사랑들이 결국은 연인과의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여주인공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와의 사랑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게 사실이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두 주체가 서로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따스한 마음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네러티브다. 그럼에도 모든 인물들이 두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헌신하고 또 이것이 결실을 맺음으로써 비로소 다른 형태의 사랑들이 빛을 보는 구조를
통해 사랑에도 소위 '최종보스'는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흑인, 성소수자, 경제적 약자 등의 이야기를 은근히 담아내며 논의의 층위를
다양하게 구성했지만 후반부에 이들을 전부 사랑으로 귀결시키면서 이전까지의 작업들이 허공에 흩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적절히
녹여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성공적인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랑만능주의'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라 아쉬움이 남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다양한 감상포인트를 지닌 책이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인물을 중심으로 읽어낼 수도 있고, 두 주인공의 사랑에 집중할 수도
있으며 약자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중요한 소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극에 영향을 주기에 이를 따라가도 흥미로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리처드 스트릭랜드를 보면서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떠올라 두 인물을 비교하는 작업 역시 즐거웠다. 이런
매력 탓에 이 책을 그저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마음이 든다. 많은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주의가 분산된 감이 조금 있지만,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소설을 읽으며 그 세계 속에
빠져든 건 꽤 오랜만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면서 극 속의 전지적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유형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소득이다. 내용 측면의 장점 외에도, 전체적 분위기를 잘 담은 표지 디자인 역시 소장욕구를 키우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표지의 질감이 일반적인 책과 달라 손에 쥐고 있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영화를 본 이들은 영화가 담지 못한 의미들을 알아가기
위해서라도 읽어봄직 하고,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은 감각적인 소설을 접한다는 기대를 갖고 읽으면 좋겠다. 습기 어린 요즘 같은 날씨에 특히나 잘
어울리는 책이기에 구매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