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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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깃든 밥과 숨, 그리고 삶을 읽다.





 
누군가와 깊은 유대감을 공유할 때 나는 그와 막역한 사이라 느낀다. 대체로 그러한 유대감은 서로에 대해 잘 알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단 한 가지의 접점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경우 생각지도 못하게 관계가 진전되기도 한다.

책을 읽은 후 드물게 작가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장르나 분야와는 상관 없이 작가의 생각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는 다르더라도 내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줄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신기한 점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많이 풀어 놓는다고 해서 작가와의 조우가 쉬워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책은 사람이 쓴 것이기에 관계 형성의 매개로 기능하곤 하지만, 그 매커니즘은 직접적인 인간관계 만큼이나 복잡하다.


<문성희의 밥과 숨>은 첫인상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던 누군가와 점차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로 발전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 문성희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보인다. 보통의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개인적 이야기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툭툭 던져내는 것이, 초반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내용이 전개되면서 이게 자신이 원하는 말을 전달하는 저자의 방식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저자 그 자체임을 느낄 수도 있었다. 독서를 마무리한 순간에 나는 마치 작가와 막역한 사이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을 경험했다.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삶을 읽어 내리면서 나와 같지는 않을 지언정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네 부분으로 짜여진 1부에서는 그녀의 삶과 철학을 덤덤히 풀어낸다. 요리를 하신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 사랑했던 연인을 먼저 떠나 보낸 상실감, 딸을 만나고 수행길에 오르며 깨달은 삶의 방식 등이 오롯이 담겨있다. 책에 실린 건 극히 일부분일 것임에도 저자를 만든 경험들은 다소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먹기와 숨쉬기만 잘하면 생명은 이어진다"는 말,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야.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달리되 초반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는 말거라. 지치지 않고 완주하려면 속도를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는 조언은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또 명상을 위해 인도에 다녀 오는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밥도 숨도 거저 얻어진 건 없다.


한편 2부에서는 작가와 그 딸이 엄선한 스무 가지 요리를 소개한다. 작가가 몸에 좋은 열 가지의 죽 요리를 꺼내들었고, 딸은 젊은이들이 쉽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열 가지의 음식을 공개했다. 자연적인 재료와 레시피를 통해 건강을 챙기면서도 모든 연령대가 좋아할만한 메뉴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요리에 담긴 이야기와 그 요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사진, 그리고 간단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내가 만들면 그와 같은 모양새와 맛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그저 존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166쪽)





책을 읽는 내내 누가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와 명상이라는 두 축 아래 다양한 갈래의 성찰이 담겨 꽂힐 만한 포인트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리 자체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는 거리가 멀고, 숨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는 더더욱 도달하지 못했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스파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삶'을 부정하려 했지만 결국 원래의 길로 회귀한 내게 작가가 추구하는 삶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상과 현실의 기로와 그 속에서 경험하는 무한대의 무기력. 작가에게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닐테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된다"는 이야기로 현실이 곧 이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자를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건 너무 많은 기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완전한 이상도 없고, 완전한 현실도 없지만 100%의 만족 혹은 크나큰 성공을 꿈꾸기에 선택이 더욱 어려웠던 것도 같다. 삶에 경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각각의 삶은 저마다의 모습을 지닌다. 그렇기에 획일적 모습은 '으레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 이렇듯 생각이 꼬리를 무는 과정에서 작가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간만에 형용하기 힘든 책을 만났다. 마땅히 설명할 만한 언어를 찾기도, 추천의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기도 난감하다. 그저 넓고 깊은 사유의 바다에 빠져들 수 있는 책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읽고 여운이 남은 이들은 작가가 상주하는 '시옷'에 방문해도 좋겠다. 연희동에 위치한 '시옷'은 작가가 딸과 함께 꾸린 공간이다. 저서 <평화가 깃든 밥상>을 구현하는 공간이자,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쿠킹클래스를 진행하고, 일주일에 딱 한 번 예약한 손님에 한해서만 평화가 깃든 '평밥'을 판매한다고. 식단은 문성희 씨와 딸이 협의를 통해 정하기에 메뉴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단다. 종종 연희동에 가지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슴슴한 자연 밥상을 좋아하기에 한 번쯤 들러 평밥을 맛보고 싶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통해 '숨'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느꼈으니 '시옷'에서 '밥'을 통해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숨쉬기를 멈출 때, 밥 먹기가 끝날 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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