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논의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고대 중국의 사람들은 관계를 중시했다. 이러한 차이는 현대까지 이어지며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만든 근본적 동인이 되었다. 동양인들은 상호의존성을 중시하여 대립각을 세우며 논쟁하기 보다는 적정한 선을 찾아 타협하려 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독립성을 중시하며 논쟁을 피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기 개념의 차이는 인과론에 대한 차이로 이어진다. 즉 동양인들은 수없이
많은 변인들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원인으로 보지만 서양인들은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저자는 동서양의 언어가 이러한 차이를 잘 드러낸다고 보았다. 동양의 아이들은 동사를 빠르게 배우는
데에 반해 서양의 아이들은 명사에 먼저 익숙해진다. 이는 범주화를 중시한 서양과 분명한 범주를 설정하는 데에 거부감을 가진 동양의 인식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동양에서도 일찍이 철학이 부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유체계의 발전과 형식논리의 경향은 서양에서만 관찰된다. 지식의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동양의 시각에서 볼때 이들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동서양의 차이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지리적, 생태적 특성 역시 제시한다. 동양과 서양은 상이한 지리적 환경을 지니고 있고, 이는 이들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산업이
싹트는 배경이 된다. 그 영향으로 공동체의 규모나 작동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논의를 마무리하며 저자는 동서양의 차이는 내재적이며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학습한 동양인 학생들은 동양과 서양의 중간쯤에 위치한 성향을 보이고, 반대로 동양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서양인들 가운데 동양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동서양의 상이한 사고 방식에는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고 부연한다. 특히 국가 간의 지리적, 문화적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핵심 논지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지니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생각의 지도>는 더더욱 의미 있는
통찰임을 알게 된다. 서양에서 인본주의가 등장한 것과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맥락을 같이 한다. 개별성의 내재화는 '개인' 개념을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었고, 동시에 현상에 대한 개별적 이해를 바탕으로 원리를 설명하도록 했다. 당장의 실용성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원리에 대해
우선적으로 탐독하는 과정을 통해 지적 팽창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양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서양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주체로 발전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호모데우스>를 통해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쪽이 아닌 변화를 창조하는 쪽이 주도권을 잡는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 유발 하라리의 견해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연구방법론의 우수성과 깔끔한
번역은 이 책의 격을 높인 또 다른 요인이다. 전자에 대해, 저자의 연구 속 실험들은 가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설계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이루어져 큰 충격과 놀라움을 느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후견지명 효과에 관한 연구 내용이다. 저자
니스벳은 '만일 세상에 대한 모델이 분명하지 않고 매우 많은 요인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막연히 믿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난 후에 그
일을 설명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라는 가정을 세웠다. 이를 규명하기 위한 실험 상황에서 세 개의 조건이 설정되었고, 각 조건 하에서 동서양
학생들의 반응 차이를 관찰하고자 했다. 실험의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세 가지 조건의 구체적 내용이나 그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이 책을 번역한 최인철 씨는 현재 서울대 교수이자 과거 저자에게 지도를 받은 제자이다.
사회심리학 분야에 대한 전문가이기에 어려운 내용을 수월하게 풀어낼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저자와 함께 공부하며 학문의 방향성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책은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읽히고,
다량의 실험, 관찰 결과가 수록되어 있지만 주된 맥락을 잃지 않으며 전개된다.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역자의 공은 저자 연구의 우수성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제목도 꽤 흥미롭다. 번역판 제목은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고 원제목은 "The Geography of Thought :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이다. 언뜻 비슷해보이나 조금만 뜯어보면 여기에도 저자가 이야기한 동서양의
차이가 드러난다. 원문의 부제는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반해 번역판의 제목은 상대적으로 포괄적이면서도
함축적이다. 번역판의 제목에 대한 비판이 가끔 눈에 띄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차이의 근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배하는 미래의 세계에서 동서양 사이의 불균형이 완전히 해소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에서 개체 위주의 사고가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맥락 위주의 사고를 지속하는 동양인들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일은 요원해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사고 방식의 차이가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또한 시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면서 유연한 사고를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구는 기존의 시각이 지닌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은 대체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미래지향적
입장에서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아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동서양의 불균형에 균열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저자의 연구가 다져놓은 초석 위로 다양한 후속 연구들이 등장하여 변화를 도모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