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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리허설 - 살기 위해, 한 번 죽어 보기 ㅣ 세계척학전집 8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평점 :

시어머니를 보내드린 지 이제 겨우 보름 남짓 지났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늘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여름 시어머니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모신 뒤부터는 달랐다. 죽음은 더 이상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통증이 심하셨다. 진통제로 고통을 다스렸지만 몸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대화는 줄어들었고, 우리는 그저 곁을 지켰다. 나는 아직 죽음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런데 그 조용함은 오래 남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장 자주 떠오른 것은 거창한 장면들이 아니었다. 시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바지락 도라지나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던 병어구이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 음식 만드는 법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늘 다음이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은 오지 않았다.

이 책은 죽음을 끝까지 들여다본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생각을 따라간다. 처음에는 다소 음울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오히려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죽음에 붙들리는 일이 아니라 삶을 선명하게 바라보는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날 손님이다. 누군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더 따뜻하게 대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역시 언젠가는 떠날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아끼고,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시어머니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하루가 덤으로 받은 시간이라면? 이미 삶이 끝났는데 하늘이 하루를 더 허락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아침에 눈을 뜨는 일도,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도,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원래 없던 하루를 선물 받은 사람처럼 하루를 쓰게 된다.

죽음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몸도, 늙음도, 병도, 죽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는 내 몫이다.

요즘 나는 남은 삶에 대해 자주 묻는다. 내게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그만둘까? 지금 붙들고 있는 일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죽으면 가장 오래 울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쓰며 살고 있는가?

무엇이 있으면 살 만하냐는 질문에는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남편. 가장 먼저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삶의 의미는 생각보다 거창한 곳에 있지 않았다.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랑한 사람, 함께 보낸 시간, 나누었던 대화, 어려운 날 곁에 있어 준 기억 같은 것들이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돌은 가라앉아도 물결은 한동안 퍼져 나간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시어머니는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남긴 말과 습관, 그리고 마음은 여전히 가족들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래도 내가 건넨 말 한마디와 사랑 하나쯤은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물결처럼 번져 가기를 바란다.

시어머니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시간이 충분한 줄 안다. 다음에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한 번 더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다음은 끝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오늘이 덤으로 받은 하루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좋은 죽음보다 좋은 삶을 생각하며 살고 싶다. 죽음은 결국 피할 수 없지만 오늘 하루는 아직 내게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은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내게 허락된 오늘. 그 하루를 정성껏 살아내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남은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뒤 삶이 이전과 같지 않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오늘을 조금 더 깊고 따뜻하게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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