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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 - 노인정신의학 전문의가 발견한 마음 노화의 비밀
와다 히데키 지음, 김세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올봄,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 치매와 우울증이 함께 찾아온 뒤였다.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가족은 당황했고, 나 역시 많은 것을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노년과 돌봄,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반백의 나이를 지나며 예전 같지 않은 몸과 기억력을 실감한다. 지천명을 넘긴 동갑내기 남편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지 않고 가족과 나 자신을 위해 마음의 노화를 조금 더 이해해 보고 싶었다.

「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은 제목만 보면 치매를 다룬 의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치매보다 우울증, 그리고 마음의 노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30여 년 동안 노년정신의학 분야에서 환자들을 만나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오랜 진료 경험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정말 치매일까?"
우리는 기억력이 떨어지면 쉽게 치매를 떠올린다. 하지만 노년기의 우울증 또한 기억력 저하, 집중력 감소, 무기력, 말수 감소 같은 증상을 만든다. 그래서 치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치매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단순히 마음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여러 상실을 경험한다. 배우자와의 이별, 사회적 역할의 축소, 건강의 변화, 인간관계의 단절,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까지. 저자는 이런 상실과 불안이 마음뿐 아니라 뇌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상실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세로토닌을 감소시키며, 부족해진 세로토닌은 사고를 더욱 경직되게 만든다. 결국 우울과 무기력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의욕도 없었다.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말수도 줄었다. 당시 우리는 치매만 걱정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우울증의 신호 역시 분명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모두 치매인 것은 아니라고. 무기력하고, 즐겁던 일에 흥미를 잃고, 표정이 어두워지며, 잠과 식욕에 변화가 생겼다면 우울증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무엇보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며,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여주는 항우울제와 인지치료 등 다양한 치료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 하지만 저자가 정말 강조하는 것은 약 그 자체보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예전처럼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예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한다. "왜 예전 같지 않을까?" 저자는 그 질문 대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정도면 괜찮다."
이 문장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아이에게는 자주 해주는 말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쉽게 해주지 못했던 말이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예전만 못해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자기 비난보다 자기 수용인지도 모른다.

책 후반부에서는 세로토닌을 늘리는 생활 습관도 소개한다. 아침 햇빛 쬐기, 가벼운 산책, 충분한 수면, 사람과의 대화, 스트레스 관리 같은 방법들이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대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습관들이다.

특히 좋았던 것은 '운동'보다 '산책'을 권하는 대목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시간. 어쩌면 마음을 돌보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작은 여유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치매를 두려워하지만 정작 우울증의 신호는 놓치고 있지 않을까? 부모님의 깜빡함과 무기력함을 나이 탓으로 넘기고, 나 자신의 지침과 우울감도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치매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마음의 노화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그 노화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돌본다면 충분히 늦추고 회복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기억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겁먹지 말아요. 먼저 마음부터 살펴보세요.
그리고 오늘도, 이 정도면 괜찮아요.

부모님의 변화가 걱정되는 사람, 중년 이후 자신의 마음 건강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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