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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전 ㅣ 재미만만 우리고전 22
보린 지음, 유현진 그림, 한국고소설학회 감수 / 웅진주니어 / 2026년 8월
평점 :

표지를 보자 아이가 먼저 "이상하게 생겼다"며 웃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 역시 마음이 끌렸다. 평범한 사람들 같지 않은 인물들의 엉뚱함과 생기가 그림 가득 담겨 있었다.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은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펼쳤는데, 예상대로였다. 이야기가 시작되자 아이는 연신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웃음을 따라가며 박지원이라는 사람의 매력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박지원의 단편 「양반전」, 「광문자전」, 「민옹전」을 담고 있다. 「양반전」은 제목 정도만 알고 있었고 「광문자전」과 「민옹전」은 이번에 처음 만났다. 옛이야기라고 해서 점잖고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장터 한복판에서 마당극 한 편을 구경하는 기분이 들었다.

박지원의 풍자는 지금 읽어도 통쾌하다. 「양반전」에서는 양반이라는 이름만 앞세우는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양반이 되면 자유롭고 점잖은 삶이 펼쳐질 줄 알았던 정선골 부자는 양반의 규범과 체면을 들여다보다가 끝내 양반 사기를 포기한다. 이를 통해 박지원은 사람의 가치를 신분이나 재산으로 판단하는 세상을 유쾌하게 비튼다.

「광문자전」의 광문도 잊기 어려웠다. 못생긴 거지였지만 누구보다 의롭고 따뜻한 사람이다. 겉모습과 처지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민옹은 신나고 괴상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세상을 풍자한다. 백성을 괴롭히는 벼슬아치들을 벌레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다가도 씁쓸한 마음이 스쳤다.

세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단연 민옹이었다. 가난한 노선비였지만 말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에도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농담처럼 툭 내뱉는 말 속에는 세상을 꿰뚫는 통찰이 숨어 있다.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것 같다가도 곱씹어 보면 틀린 말이 하나 없다. 웃다가도 문득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책을 읽으며 아이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람의 진짜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될까?”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훌륭한 사람일까?” 박지원은 정답을 앞에 내놓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이상한 사람과 우스운 상황, 재치 있는 대화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살아 있는 이야기꾼이 있다. 허연 눈썹에 눈이 부리부리한 이야기꾼이 등장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특히 「민옹전」에서는 이야기꾼이 박지원을 대신하는 듯한 설정이 흥미롭다. 덕분에 글을 읽는다기보다 누군가 곁에서 입담 좋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아들과 번갈아 이야기꾼 흉내를 내며 읽었더니 더욱 재미있었다. 글 속 추임새를 살려 읽다 보니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웃음이 터졌다. 광문의 익살스러운 그림을 보며 한참을 깔깔 웃었고, 등장인물들을 흉내 내며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아이는 광문이 아빠를 닮았다며 놀렸고, 그 한마디에 온 가족이 배를 잡고 웃었다. 책 한 권이 집안에 웃음을 가져다준 셈이다.

고전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준 책이었다. 엉뚱하고 우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람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읽은 책인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조용해졌다. 사람은 이름이나 신분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로 남는다는 사실이 광문과 민옹의 이야기를 통해 오래 남았다. 세월이 흘러도 고전이 읽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와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며 읽을 수 있는 좋은 고전을 찾는다면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웃으며 읽었지만, 다 읽고 나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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