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었을 때는 인생이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인 줄 알았다.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목적지에 닿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은 도착보다 항해에 가까웠다. 잠시 숨을 돌릴 만하면 또 다른 파도가 왔고, 어렵사리 고개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바랐던 것은 평온한 항구였는데, 정작 내게 주어진 것은 늘 바다였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도 그것이었다. 왜 하필 지금, 오디세우스인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십 년을 더 헤매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알게 되었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신화 속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처음에는 철학적인 질문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외로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살고 있을까. 매일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사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정해 놓은 길을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그것이 내 선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아무도 대신 노를 저어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누군가는 조언을 해줄 수 있고, 누군가는 위로를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내 삶은 내가 살아야 한다. 누구도 내 몫의 결정을 대신할 수 없고, 누구도 내 시간의 책임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뗏목을 만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뗏목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나무를 자르고 묶고 또 묶어야 한다. 고단하고 지루한 노동이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생을 바꾸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노를 젓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근육"이라고 말한다. 참 맞는 말이다. 살다 보면 의욕이 넘치는 날보다 의욕이 바닥인 날이 더 많다. 그래도 출근하고, 밥을 하고, 가족을 챙기고, 맡은 일을 해낸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는 것은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오래 길들여진 생활의 힘이다.

읽는 내내 여러 장면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로토파고스의 열매를 먹고 목적을 잊어버린 사람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보였고, 세이렌의 노래에서는 남들의 성공과 비교하며 흔들리는 마음이 보였다. 키르케의 섬에서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을 열심히 흉내 내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도 이 질문이 더 어려워진다. 젊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무엇이 내 욕망이고 무엇이 남의 욕망인지 구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몰리'라는 약초가 마음에 남았다. 눈앞의 달콤함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묻는 힘.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이성.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혜가 아니라 이런 정신의 맑음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책이 위로를 쉽게 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요즘은 괜찮다는 말이 너무 흔하다. 힘들었지, 잘하고 있어, 곧 좋아질 거야. 듣기 좋은 말들이 넘친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파도는 없앨 수 없다. 상처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늙고, 소모되고, 결국 죽는다. 그런데도 노를 저어야 한다고. 오히려 그 냉정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살다 보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고, 끝내 받아들여야 하는 상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특히 하데스 장면을 읽으며 나의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시간은 죽음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실감나게 하며 요즘 그 슬픔에 가슴이 져미는 중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 슬픔은 단순히 견뎌야 하는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이 소중한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어떤 슬픔은 흘려보내야 하지만 어떤 슬픔은 벼려두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대신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섬에 머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해 움직이지 못하는가. 나는 정말 내 삶의 키를 쥐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오늘 나의 이타카를 향해 단 한 걸음이라도 나아갔는가. 오디세우스는 십 년의 전쟁과 십 년의 귀환 끝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길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그렇다. 도착은 없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마침표를 찍어주는 책이 아니라 쉼표를 건네는 책이어서. 아직도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모를 때가 많고,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자신 없는 날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려 한다. 오디세우스가 그랬듯, 우리도 완벽해서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기에 노를 젓는다.
언젠가 이타카에 닿을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오늘도 자기 몫의 노를 놓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미 길 위에 있는 것 아닐까.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오래 망설여본 사람, 그리고 지금도 묵묵히 자기 몫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조용히 권하고 싶다. 오래된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놀랍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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