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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 김상근 교수가 전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김상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8월
평점 :

어릴 적 「오디세이」를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몇 번이나 책을 펼친 적이 있다. 그러나 늘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이름은 왜 그리 어려운지, 신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전은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오디세우스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읽은 청년을 위한 「오디세이」는 나를 고대 그리스로 데려가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로 데려왔다. 책 속의 이야기는 3천 년 전 바다 위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느꼈던 불안과 닮아 있었다. 내가 최근 겪은 상실과도 닮아 있었고,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걱정과도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라기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저자는 청년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청년만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오며 몇 번쯤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 하나쯤은 이 긴 항해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오디세우스는 흔히 영웅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만난 그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실수도 많았고 자만도 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속여 탈출하는 기지를 발휘했지만,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바람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샀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했고, 유혹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인간다웠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넘어지지 않아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기 때문에 성장한다.

저자님은 「오디세이」를 두 사람의 성장 이야기라고 말한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텔레마코스의 여정과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 나는 이상하게 텔레마코스보다 오디세우스 쪽에 더 마음이 갔다. 젊을 때는 세상에 나가는 일이 성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진짜 어려운 일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이라는 것을.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저자님이 말하는 노스토스는 단순한 귀향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한다. 좋은 직장, 더 큰 집,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이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 머물렀던 것처럼. 영원히 늙지 않아도 되고, 고통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곳.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에게도 칼립소는 너무 많다.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게 만드는 화면들. 잠시 현실을 잊게 만드는 자극들.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결국 나를 멈춰 세우는 것들. 오디세우스가 끝내 칼립소를 떠난 것은 고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진짜 삶을 선택한 것이었다. 불완전한 아내 페넬로페. 늙어가는 시간. 언젠가 끝날 생. 그 유한함 자체를 사랑한 것이다. 그 대목을 읽으며 문득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다.

최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중이다. 죽음은 아무리 준비해도 낯설고 잔인하다. 오디세우스 역시 저승에서 어머니의 혼령을 만난다. 그는 어머니를 안아보려 하지만 품에 안을 수 없다. 몇 번을 시도해도 손끝은 허공을 가른다. 그 장면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다시는 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는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말한다. 슬픔에 머물지 말고 빛을 향해 돌아가라고. 남아 있는 사람의 곁으로 가라고. 살아 있는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그 말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오늘의 삶과 연결해주는 저자님의 시선이었다. 세이렌을 유튜브와 숏폼 중독으로 읽어내고, 칼립소를 안락함과 현실 도피로 읽어내고, 폴리페모스를 자만과 절제의 결여로 읽어낸다. 억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고전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좋은 고전은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읽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책을 덮은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마지막 장이었다.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 처음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20년을 떠돌았는데 또 떠나야 한다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삶도 그렇다. 어느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는다. 입시가 끝나면 취업이 오고, 취업이 끝나면 결혼이 오고, 결혼이 끝나면 또 다른 책임과 선택이 기다린다. 인생은 종착역이 아니라 기착지의 연속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를 창고에 넣어두지 말라고 말한다. 다시 들고 길을 나서라고.

그 대목을 읽으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금 자신의 노를 메고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상실이라는 노를, 누군가는 불안이라는 노를,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노를.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짐처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채 앞으로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3천 년 전 눈먼 시인이 남긴 이야기가 오늘의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다. 《오디세이》는 결국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은 이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타카를 향해 노를 젓는 그 여정 속에 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쩌면 각자의 이타카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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