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20개의 키워드로 전하는 인생의 지혜
한상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흔이 되면 인생이 조금은 쉬워질 줄 알았다. 젊은 시절에는 늘 미래를 향해 달려갔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더 나은 연봉, 더 큰 성취. 그렇게만 살면 언젠가 마음도 편안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삶은 나아졌는데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문득 공허하고, 이유 없이 불안하며,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존재'라는 어려운 철학 용어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아주 평범한 삶을 이야기한다. 부모의 노쇠를 바라보는 슬픔, 직장에서 느끼는 피로감, 성공했음에도 가시지 않는 허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마흔의 불안까지. 책은 하이데거의 철학을 통해 그런 삶의 질문들을 하나씩 비춰준다.


 읽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고유함' 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너무 오랫동안 '쓸모'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살아왔다. 나무꾼에게 숲속의 나무는 땔감이고 목재일 뿐이다. 나무 자체가 아니라 이용 가치만 보이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돈을 벌 수 있는가, 도움이 되는가, 성공에 유리한가.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그런 기준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정작 나 자신도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누구의 부모이고, 누구의 상사이고, 어떤 직책을 가진 사람인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나'가 누구인지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은 늘어나는데 고유한 나는 점점 사라져간다. 그래서 마흔의 어느 날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값을 매기는 인생에서 가치를 드러내는 인생으로 전환하라."


 우리는 늘 값으로 평가받는다. 성과, 연봉, 집값, 직급, 스펙. 하지만 값과 가치는 다르다. 꽃은 비싸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이의 웃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에 더 소중하다. 나의 인생 역시 얼마짜리 상품이 아니다. 그 자체로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가치다. 하이데거는 끊임없이 인간의 고유함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마흔의 삶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이데거는 오히려 죽음 덕분에 삶이 빛난다고 설명한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은 더 소중해진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부모님의 늙어감.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 이 모든 경험은 우리에게 묻는다. "앞으로의 시간을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은가?"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남들이 정해놓은 길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바라보게 된다. 유한한 삶은 인간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을 사랑하게 만든다.



 또 하나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안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안정이란 파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나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안정만 되면 행복할 줄 안다. 하지만 인생에 파도가 없는 시기는 없다.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어가며, 직장은 변하고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한다. 하이데거는 파도를 없애려 하지 말고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다.


 나는 최근 들어 꽃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맑은 하늘이 반갑고, 낯선 바람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감각들이다. 책은 그런 변화 역시 잘 설명해준다. 삶의 의미는 거대한 성공이나 특별한 사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만난 사람, 우연히 본 풍경, 사소한 관계 속에서 조용히 피어난다고.


 책을 덮고 나니 '숲길'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았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거창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숲길 같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은 아니지만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바람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만나는 길이다. 아마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도 같은 것 아닐까. 더 성공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고유하게 살라고.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남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자기 삶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마흔은 인생의 정오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마흔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오늘도 숲길을 걷는다. 나무를 목재가 아닌 나무로 바라보기 위해. 세상을 성공의 도구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끝날 이 소중한 시간을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미자모#마흔에읽는하이데거#한상연#김영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