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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사랑하고 꽃피운 윤동주 김소월 필사북 - 뮤지컬, 영화, 노래가 된 동주·소월 시 108선
윤동주.김소월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26년 5월
평점 :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을 맞아 펴낸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낸 두 시인,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 108편이 담겨 있다. 한 글자씩 천천히 따라 쓰다 보면 시를 읽는 것을 넘어 시인의 마음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손끝으로 옮겨 적은 시어들이 어느새 마음속에 스며들어 오래 머문다. 오래전 시인들이 지켜낸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책이다.

몽산포 바닷가에 앉아 아이와 함께 「엄마야 누나야」를 불렀다. 바람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파도는 제 할 일을 하듯 밀려왔다. 노래를 부르다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 듣던 노래를 이제는 내 아이와 함께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도 뭉클했다. 소월의 시는 백 년도 더 전에 쓰였는데, 조금도 낡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 속에도,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속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좋은 시란 아마 그런 것일 테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가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 그날 우리는 시를 읽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다를 보며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한순간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말이 가진 아름다움도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누군가의 입에서 누군가의 마음으로, 오래오래 전해지면서 말이다.

내가 소월의 시 「진달래꽃 」을 펼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하고 입을 떼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다음 구절을 노래하듯 이어 불렀다. 학교에서 배운 적은 없다면서도 가락만큼은 제법 익숙해했다. 아마 어디선가 듣고 흘려보낸 말들이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소월의 시가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노래처럼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푸른 사자 와니니」를 좋아하는 아이는 윤동주의 「내일은 없다」를 읽고는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네요."라고 말했다. 아이의 짧은 한마디가 의외로 오래 마음에 남았다. 늘 다음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내곤 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는 시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용기를 읽어낸 듯했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아끼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월시인의 「개여울」을 읽다가 정미조의 노래도 듣고, 심수봉의 노래도 듣고, 아이유의 노래도 들었다. 같은 시를 바탕으로 한 노래인데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참 신기한 일이다. 오래전에 쓰인 시가 이렇게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거치며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 소월의 시어는 늙지 않았다. 물길을 따라 흐르는 개여울처럼 오늘도 사람들 마음속을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오래 마음에 남는 시어들이 많았다. 윤동주의 시 가운데서는 「달조각을 주으려」가 특히 그랬다. 달조각을 줍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순하고 아름다운지,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였다.
김소월의 시를 읽을 때는 자꾸 소리 내어 읽게 되었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같은 구절은 한 번 읽으면 저절로 입안에 맴돈다. 특히 「진달래꽃」은 우리말이 가진 부드러움과 품위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읽으며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라는 구절에는 한참 머물렀다. 마침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있어서였을까. 산바람이 스치고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짧은 한 줄이 계절의 흐름과 삶의 덧없음을 모두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이고, 노래이고, 삶의 기억이다. 아이와 함께 시를 읽고 노래를 듣고 한 글자씩 따라 적으며 백 년 전 시인들이 남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다시 만났다. 오래된 시어들이 오늘도 우리 곁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시어들은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손끝으로 따라 쓴 한글 한 글자가 어느새 위로가 되고 쉼이 되는 시간이었다. 훈민정음이 남긴 선물과 시인들이 지켜낸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천천히 시를 필사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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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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