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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에 곰이라니 2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2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아들을 11년이나 키우고 있는데도 여전히 서툰 엄마인 나는 곧 다가올 아들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어떻게 건강하고 현명하게 지나가면 좋을지 생각한다. 마침 미자도 달달독서모임을 통해「열다섯에 곰이라니1」를 접하며 곰으로 변한 사춘기 태웅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후속편인 이 책을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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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는 제주 푸른 바다에서 동물화된 커다란 남방큰돌고래 '청해'와 검은 줄무늬를 가진 돌돔오빠 '중도' 그리고 예쁜 눈을 가진 감성돔 '미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벌꿀오소리 '영웅'과 노란목도리 담비로 변한 영웅의 엄마 '명혜', 부리만 새로 변한 '최섬', 레서판다 '정훈', 거식증 뱀순 볼파이톤, 평성의 잣까마귀 남매 '길애', '길영'이 그 주인공들이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동물화 현상이 일어난다는 설정은 1편과 다르지 않은데 갱년기 엄마도 동물화가 되고, 입만 새 부리로 변한 이상한 동물화를 겪는 '최섬'의 설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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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레서판다 정훈의 말에 참담함이 밀려들며 나는 나의 아이에게 통제받고 관리받는 삶을 살게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했다.
사람이었을 때 행복했냐고 물어봤어야죠. 만날 학교랑 집만 오가는 그 쳇바퀴 같은 일상이 좋았냐고 물어봤어야죠. 휴대폰 사용 시간도 잠겨 있고, 애들이랑 노는 것도 안 되고, 게임은 커녕 영화 한편 내 마음대로 볼 수 없어, 다 부모님이 짜준 스케줄대로 움직여야해, 동물이면 불행하면 사람이면 다 행복해?
특히 엄마 명혜가 영웅에게 해주는 말들은 부모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는데 나의 아이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번역하여 잘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한 훌륭한 마음 통역사가 돼야해. 자기 생각이랑 말을 더 좋은 표현으로 바꾸는 힘을 가져야 해.
'안 해'는 '다른 거 할래',
'하기 싫어'는 '생각 좀 해볼게요'라고 말하면 되고
'짜증'은 '30분 뒤에 사라질 감정'이라고 번역하고
죽겠네 라고 말하는 건 아직은 살 만하다는 거고
되는일이 없네 라고 말하는 건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 거고
귀신은 저런 놈 안 잡아가고 뭐 하냐 라는 말은 더 나쁜 놈 잡아가느라 바쁘니 저놈 순번은 다음에 오나 보다로 바꾸면 돼.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 좋은 통역사가 되어야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좋은 번역기를 쓰란 말이야! 네 마음, 네 생각을 네가 잘 번역해야 잘 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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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은 고독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뜻도 가지고 있어.
너희는 꽃집에서 살 수 있는 꽃이 아니잖아. 나한테 찔레꽃처럼 마냥 귀하디귀하고 예쁜 애들이지. 찔레꽃은 들판에 가도 때가 맞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꽃이야. 엄마는 저 예쁘게 피어 있는 찔레꽃을 보면 옹기종기 모여 밥 먹는 한식구가 떠올라. 다섯 개의 꽃잎이 제각각이잖아. 그렇게 모인 수많은 꽃이 조그만 꽃밭을 이뤄서 좋은 향기를 피우고...... 마치 우리 가족 같지 않니?
저 예쁜 찔레의 또 다른 꽃말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래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
엄마 명혜는 왜 생모를 찾아갔는지 묻는 대신 영웅에게 미술관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대학생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는데, 그때 오스트리아에 있는 한 미술관에 찾아갔었어. 근데 길을 잘못 들어서 원래 가려고 한 미술관 바로 옆에 있던 딴 미술관에 들어간거야. 실수로 들어간 곳이었지만 여행을 통틀어 이 잘못 들어갔던 미술관에서의 시간이 제일 즐거웠어. 엄마는 이때의 경험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 계획과 다르게 잘못 들어갔어도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곳을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더라고.
너한테 엄마가 잘못 들어온 미술관인거지. 네 여행을 통틀어서 엄마가 너한테 그런 미술관이 되어주고 싶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잘못 들어온 우리 집이 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기억이 되었으면 해.
아이의 진짜 모습이 아닌 아이가 보이고 싶은 모습을 그대로 믿고서 마음을 내려놓고 살았음이 미안했다.
사냥하는 법부터 목욕하는 법까지 개별종에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특수 동물화 캠프에서 인간화 주기는 한 달로 맞춰져 있지만 그 주기를 거스르는 최섬, 레서판다 그리고 볼파이톤은 매일 산소방에 가고 대청봉에 가서 매일 한 시간 이상 삼림욕도 하면 빨리 사람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함께 대청봉에 오른다. 레서판다와 볼파이톤까지 가방에 넣고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최섬은 다가오는 여명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설악산 대청봉 1708미터가 이곳에 올라오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을 묵묵히 견디는 시간은 아닐까 하고.
'어제도 떴던 해'라고 말했으나 막상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태양이 어둠을 깨고 세상을 물들이며 모든 만물을 눈뜨게 하는 광경 앞에 많은 생각이 마음을 스쳐 갔다. 레서판다 정훈에게 좋은 번역기를 써야 한다고 했지만 섬 자신도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번역해 낼 수 없었다. 어둠을 뚫고 힘든 새벽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되는 듯했다.
동물화가 되어 설악산에서 만난 남북한 청소년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집도 부모도 없는 처지에 춘정기(사춘기)가 되어 동물화된 북조선 잣까마귀 남매는 금강산에 며칠 머물며 태어나 처음으로 아무런 근심이 없는 시간을 보다. 남매는 자유로운 삶, 또한 내일이 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태어나 처음 제 머리로 생각하게 되며 아버지 리철용의 금강산 이야기를 떠올린다.
여름이면 녹음이 무성해서 봉래산, 가을에는 만이천봉이 단품으로 물들어 풍악산, 겨울에는 녹음이 지고 암석만 뼈처럼 드러나 개골산이고 다시 봄이 되면 온 산이 새싹과 꽃으로 뒤덮여 금강산이 된는 거디. 사람 인생도 그러하디. 좋은 날도 있고 시린 날도 있어서 인생이 풍성하고 아름다워지는 거이야. 인생의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것이지 네 인생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디. 추운 겨울날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거니 함부로 흘려보내지 말라.
동물화되어 바다를 떠도는 돔 오누이, 북한출신 평성의 잣까마귀 남매 등 동물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 그리고 아이와 함께 나누면 좋겠다 싶은 말들을 형광펜 꾹꾹 눌러가며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마음을 끌었던 문장들도 참 많은데 곧 사춘기를 겪을 아이와 함께 나누며 공유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가만히 있으면 동굴이지만 움직이면 터널이 된다. ' 조류과 선생님이 동물화가 되지 않아 낙담한 섬에게 해준 말이었다. 힘들수록 움직이고 생각하라고, 부딪치며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빛이 보이게 되고 그 빛이 나갈 수 있는 또다른 출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게 동굴과 터널의 차이라 했다.
빛과 그림자가 인생의 한 지점에 함께 머무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밝음 속에 있기에 어둠을 알 수 있고, 자신은 어둠 속에 있기에 그 빛의 존재를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었다.
명암이 뚜렷한 순간을 살고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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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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