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이발소 - 소심하고 찌질한 손님들 대환영입니다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정미애 옮김 / 리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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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골치아픈 고민으로 머리가 아픈 요즘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인생도 리셋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눈썹의 중요성>, <야쿠자의 기억상실>, <우당탕탕 취업기>, <멜론빵 머리의 영웅>, <호신술의 여신>, <한여름날의 기적> 이렇게 6개의 옴니버스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모음집으로 각 단편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강변 산책로로 들어서기 전 작은 이발소이다. 이 이발소에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여자 이발사가 있는데 작은 체구에 귀여운 인상의 그녀는 싹싹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고, 수다떨기를 좋아한다. 같이 일하던 남편과 이혼하면서 이 가게를 빼앗았다는 이야기, 남자 손님 중심의 이발소가 신경쓸 일이 적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공감과 격려의 말로 삶에 지친 소심한 손님들이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유능한 상담가의 재주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특히 어깨와 목 마사지를 잘하는데 어찌나 솜씨가 좋은지 방문하는 손님마다 스르르 잠이 들게 만든다. 깜빡 잠든 손님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스타일에 깜짝 놀라 당황하는데 6개 이야기 주인공들이 모두 이런식으로 스타일 변신을 하며 소심하고 찌질한 주인공들의 인생도 180도 바뀌게 된다.   


 <눈썹의 중요성>의 주인공은 학교법인 총무과에서 보람없는 일을 견디는 대신 월급을 받는 스가와 사키 주임이다. 서른이 다 된 여자인 스가와 사키는 회사 후배 이케시타 하루미의 말을 빌자면 소심해서 후배한테 단호하게 말 한마디 못하는 만만해 보이는 타입의 찌질이로 일은 제법 잘해서 쓸모는 많지만 협상 능력이나 대인관계는 꽝이라 다들 무시하는 인물이다. 서른을 앞두고 애인도 없고, 고압적인 상사에 건방지고 신경 거슬리는 후배, 외로움, 불안, 자기 혐오로 우울한 스가와 사키는 과감하게 이미지 변신을 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 이발사가 운영하는 이발소를 찾게 된다. 이발사는 어깨와 목 마사지도 해주었는데 덕분에 졸음이 쏟아져 편안한 무의식의 시간을 가진후 깨어나는데 거울 속 가늘고 매끈하게 치켜 올라간 눈썹을 보고 깜짝 놀란다. 선잠을 자며 머리모양에 어울리게 눈썹을 다듬어달라고 했다는데 새로운 눈썹때문인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 같다. 이발사가 멋대로 눈썹을 민 것이 발단이 되어 변신을 하게 된 스가와 사키는 눈썹밀고, 머리 모양이랑 화장 좀 바꿨을 뿐인데 예전과 달리 힘이 넘치고 당차 보인다. 우울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던 그녀는 이발소에 다녀온 뒤 기분을 리셋하게 되고 다부진 눈썹의 힘으로 회사의 비리에 용감하게 맞선다. 



자기 내면을, 성격을 완전히 바꾼다는 건 꽤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기라고 자기암시를 건다면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말투를 쓰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진정한 화장은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야쿠자의 기억상실>은 어떤 문제에 휘말려 산속에서 기억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생활사 기억을 전부 잃은 전건망 상태인 이 남자는 우선 먹고 살기 위해 요네바라 가즈히코라는 가명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하수도 배관공사 보조 일자리 면접을 보기위해 이발소를 찾는다. 목과 어깨 마사지를 받으며 저항하기 힘든 졸음이 쏟아진 남자는 끝났다는 목소리에 잠이 깼는데 이발소 거울을 마주하고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적당히 다듬어달라고 하고 잠이 들었는데 머리카락은 싹둑 잘려나가고 옆머리에 줄무늬가 생겨있다. 꾸벅꾸벅 조는 상태에서 조금 대범한 스타일은 어떠냐는 이발사의 제안에 괜찮다고 해서 이렇게 해봤다는 말에 남자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드는 한편 기묘한 만족감도 느낀다. 이발소를 나와 하수도 배관공사 면접을 갔으나 누가 봐도 야쿠자인 남자의 모습에 불합격이 예상된다. 호구지책으로 뭐라도 해야했기에 쓰레기통 잡지 구인코너에서 기숙사가 있는 기업 정보지 잇시키 타임즈의 구인 광고를 보고 남자는 또 면접을 보러 간다. 잇시키 타임즈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기업의 부정을 고발하는 블랙 저널리스트 일을 도우며 잡일을 하게 된다. 회사 대표 니시자카 겐이치가 술한잔 사겠다고 해서 번화가의 고급 클럽에서 술을 허용치 이상을 마신 남자는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안 양복주머니에서 살짝 노란빛이 도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금붕어 모양의 간장통을 발견한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으며 술김에 객기로 그 액체를 단숨에 마셔버리는데 이 후 잠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며 자신의 역사를 되찾는다. 남자의 이름은 미요시 오사무, 서른한 살의 미혼으로 시카마 건설 총무부 자재과 주임이었다. 시카마 건설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는 사귀던 회사 홍보부 후배 여성에게도 이별 통보를 받았다. 인생을 비관하며 우울증에 빠졌던 그는 죽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산속을 헤메다 수면제를 삼키고 발을 헛디뎌 가파른 비탈을 굴러떨어져 기억을 잃었던 것이다. 지금의 그는 기억을 되찾았지만 고작 실직했다고, 재취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죽으려 했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이발사가 머리는 이렇게 만들어놔서 멋대로 야쿠자라고 착각하고 스스로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발단으로 야쿠자 혹은 그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일 거라는 자기암시를 했던 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찾은 미요시 오사무 시카마 건설회사의 비리를 알게 돼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회사에 설명하고 잇시키 타임즈를 통해 정리 해고를 목적으로 모욕적인 연수 통지서를 건넨 전 직장상사 우메하라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우당탕탕 취업기>는 취준생 마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조직안에서 일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프리랜서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 마미는 기분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서 이발소에 가게된다. 머리를 감고 이발사가 어깨와 목 마사지를 해주어 스르르 잠이든 마미는 깨어나보니 거울속에서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숏컷 금발을 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당황스럽다. 이발소를 나온 마미는 왠지 '아오야기'의 우동이 먹고싶어 아빠의 우동가게에 가는데 한동안 가게에 머물면서 몇몇 손님이 드나드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며 예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광경이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신선해 보이는 경험을 한다.그리고 마미는 손님을 대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아빠의 우동가게 '아오야기'에서 일을 배우기로 한다. 


 요즘 회사가 한참 구조조정중이어서 그런지 <우당탕탕 취업기>에는 직장인으로서 공감할만한 문장들이 참 많다 느꼈다. 나다운 삶에 대해 생각해보며 나도 적성에 맞는 나의 업을 찾는 변화를 꽤할때가 되었다 싶었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인생을 180도 바꿔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 자부심이다, 자부심. 가슴을 펴고 나는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자부심이 있다면 작은 악행에 가담할 필요 없이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마미의 취업기를 통해 스트레스가 당연해진 나의 자본주의 노예 모습이, 적성에 안맞는 회사생활을 벌써 이십여년째 계속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리고 이제는 어느새 회사가 내쫓고 싶어하는 마흔 넘은 관리직이 된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헛헛하다. 한때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의 유지태머리(짧은 재색 머리)를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회사생활 이십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직도 그 머리는 못해봤다. 문득 이 수상한 이발소에 가서 '조직에서 일하는 인간은 절대 못 하는 머리'를 꼭 해보고 싶다. 짧은 머리에 재색 염색 머리를. 


 소심하고 찌질한 주인공들이 수상한 이발소에서 예상치못하게 스타일을 바꾸게 되면서 삶의 태도와 내면까지 변화하게 되어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다소 엉뚱하지만 유쾌 통쾌한 힐링 소설모음집이 발간되었다. 마음속에 새로운 인생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이 소설을 통해 새로운 삶을 향해 작은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수상한 이발소에서 스타일의 변신을 하게되면서 내면의 변화를 통해 통쾌한 복수도 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반전 모습을 보면서 인생역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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