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문장 - 작고 말캉한 손을 잡자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
정혜영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씩 아이가 하는 말이나 글들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학년때는 한줄 쓰기, 2학년 때는 세줄 쓰기, 3학년이 된 지금은 매일 세줄 이상 쓰기를 하고 있는 엉뚱발랄 초3 아들은 심심(心審)노트 - 아이가 매일 학교 숙제로 쓰고있는 글쓰기 노트 - 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매일매일 읽어준다. 작가정신은 보이지 않지만 매일 무엇이든 쓰고 있다는 꾸준함에 박수를 보내며 아이의 마음을 좀 더 정성들여  살펴주어야겠다하는 중이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매일 아들의 문장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책 「어린이의 문장」에도 관심이 생겨 읽기 시작했다.    


 어린이처럼 자주 웃고, 투명하게 말하며 편견 없이 읽고 담백하게 쓰기를 희망한다는 저자님은 23년차 초등학교 교사로 앞만 보며 뛰어가다 지쳐버린 어른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어른들이 어린이의 말과 글, 문장을 만나 위로를 받고 잠시 쉬어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하셨다고 한다. 


<1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에서 동생과 바이킹을 타며 내려갈때마다 배가 간질간질했다는 어린이의 문장이 나온다. 사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바이킹 맨 끝자리를 탈 때 배가 간질간질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두려움에 대처하는 어린이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하신다. '수건돌리기'를 하며 술래가 되면 장기자랑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는 아이를 위해 '흑기사'를 도입했다는 저자님의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게 느껴졌는데 다정한 인류라는 말에 마음을 빼앗겼다. 

 



때로는 나를 돕는 손을 덥석 잡아보자. 세상엔 누군가를 돕는 일에 존재의 희열을 느끼는 '다정한' 인류가 생각보다 많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돌보는 모든 마음들 덕분에 부족하고 불완전한 나도 새날을 맞이하고 온전히 살아낸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도저히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내 주위에서 도울 거리가 없나, 하고 떠도는 흑기사의 다정한 손을 잡아보자. 그 덕에 좀 더 나아진 내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흑기사가 될 수 있도록. 



<2부 지루한 매일을 찬란하게 사는 법> 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종이봉지 공주」이야기,「온세상 사람들」을 읽고 정상과 비정상이 있다고 생각해 온 자신을 반성하는 어린이의 글에서 낯선 것을 마주하며 다른 세상에 대한 수용력을 높이고, 그릇된 인식을 인정하고 전환을 꾀하는 태도에 교훈을 얻는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침팬지나 고양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서 너와 나를 가르고 차별을 일삼는 우리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며 비카스 샤의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에서 제인구달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는데 연계독서로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물고기의 안부를 걱정하고 가엷이 여기는 마음을 표현한 어린이의 글에서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다정함'을 잃지 않으며 모든 다른 생명체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친화력'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저자님은 참 다정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인간이 동물들과 구분되는 근본적인 차이는 외형적인 모습이나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이익을 따지지 않고도 다른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소통방식에 있다고 하겠다. 


생명다양성의 불균형은 종래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삶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명체와 친구가 되었느냐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방학동안 쓴 글쓰기 공책이야기 중, 일광욕은 햇빛으로 하는 거라면 만약 월광욕이 있다면 달빛으로 하는 거냐며 밤에 커튼을 열고 월광욕을 해봐야 겠다는 어린이의 이야기, 방학 계획표 쓰는게 강아지 똥치우는 것보다 어렵다는 어린이의 엉뚱발랄순수천지 문장들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정혜영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게 되서 아쉽다는 아이의 문장에서 '내게는 붙들 만한 부도 없으려니와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한 깜냥도 없다'며 '나는 과연 이 세상에 왔다 가는 흔적을 어떤 식으로 남기게 될까 '라는 화두를 던지시는 저자님은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일부를 인용하시며 내가 남기는 흔적은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누군가가 널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고 너의 소중함을 평가하진 마.




<3부 바람 빠진 내 마음 다정 불어넣을 시간> 에서 ' 진심을 전하는 방법 ' 을 읽으면서는 옆에 앉아 있는 초3 아들의 작고 말캉말캉하고 귀여운 코딱지파는 보드라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다정함을 표현해보려한건데 평소 「엄마의 손뽀뽀」를 아이와 함께 즐겨 읽어서 그런지 아이가 무척 행복해하며 둘이 신나게 장난을 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챕터는 ' 반짝이는 존재, 다정한 존재, 공감하는 존재 '였다. 스피드 스태킹 연습을 하며 컵을 빨리 쌓고 내리면서 속도가 느리고 서툰 친구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멍군아 힘내! 잘할 수 있어!' 라고 응원해줬다는 어린이의 문장에서 그리고 친구가 보드타다가 다쳐서 많이 아플 것 같아서 나도 울었다는 어린이의 문장에서 나는 친구에게 반짝이는 존재였나, 다정한 존재였나, 공감하는 존재였나 반성하며 함께하는 시간이 깊은 위로가 되는 친구가 되어주어야지 했다. 




어디에나 다정한 존재들이 있었다. 뛰어나고 앞서가는 화려한 존재들에 가려, 열심히 노력하지만 걸맞은 보상도, 조명도 받지 못하는 이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빠르게 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느리고 서툰 이들에게 손 내밀어 함께 가려는 사람들 말이다. 세상은 반짝이는 존재들 덕분에 큰 변화를 맞지만, 다정한 존재들 덕분에 고르게 나아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힘이 되는 존재들도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슬픔을 어찌할지 모를 때 그저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우린 어쩌면 가깝지도 않고 알아온 시간이 짧을지라도 이 사람들을 '친구'라 믿고 싶어질지 모른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하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이미 세상을 반쯤 가진 것이다. 


 


 편견없는 말랑말랑한 투명 정직한 어린이의 마음과 만나볼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에세이 집이 발간되었다. 어린이들의 문장과 세계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고, 현재의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다면 또 궁극의 순수를 만날 때 몰려오는 감동을 느끼며 좀 더 단순한 내일을 살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미자모#어린이의문장#정혜영#흐름출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