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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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20대를 장식했던 추억속의 책「냉정과 열정사이」를 회상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신작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를 손에 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글을 쓰고 계신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제목의 '혼.자.서.'라는 말에서부터 느껴지지만 표지에 등장하는 우산을 쓴 한 사람이 참 쓸쓸해 보인다. 하늘에는 덩그라니 달님이 홀로 외로이 떠있고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표지를 보고 책장을 넘기니 저자님의 메시지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자어 네글자 "강국향락( 江國香樂)"이 눈에 들어온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열심히 검색을 해봐도 도대체 나오지가 않는다. 그래서 검색은 포기하고 책을 읽으며 퀴즈를 풀듯이 이 네 글자의 의미를 추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츠토무가 쥰이치에게 했다던 생생유전(生生流轉,만물은 끊임없이 변해간다)이라는 말대로 어렵게 생각말고 흐름에 맡기고 삶을 살아가라는 뜻인가? 쥰이치의 말대로 뭐,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이란 게 있는 법이고, 미도리의 말처럼 쓸쓸하지만 애초에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기에 나는 굳이 그 뜻을 정의하려 애쓰지 않고 물흐르듯 즐기며 책을 읽기로 했다. 



가와이 준이치는 자신도 이혼 경험자이며 이직의 엑스퍼트이기도 했다. '흐름에 맡기면 된다.'라는 말은 그런 쥰이치에게 일찍이 츠토무가 건넨 말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츠토무라는 사람도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주거도 전전하고, 돈도 여자도 생겼다가 잃었다가 자신은 갖지 못한 채 마지막에는 묘석조차 거부하고 여행길에 나섰다. 생생유전(生生流轉,만물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피차 술기운이 돌면서 케이와 쥰이치는 몇 번이고 그 말을 입에 올렸다. 마치 암구호인가 무엇처럼




애초에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미도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쓸쓸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비로소 용납되는 일이 있고, 미도리는 그것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통감했다.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바이올렛 피즈 칵테일, 비올 적의 달님이라는 동요, 자살한 세사람이 수목장으로 선택한 수목 칼미아가 그것이다. 책을 읽는동안 새해를 앞둔 섣달 그믐날 밤 치사코할머니가 호텔바에서 마셨던 달고 진하고 어쩐지 쓸쓸한 맛이 났다던 그 연보라색 칵테일 바이올렛 피즈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고, 치사코 할머니가 평범한 새색시 달님이 시집가는 이야기라고 했던  <비올 적의 달님> 이라는 동요의 가사에 대한 해석은 슬프면서 뭔가 먹먹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커다란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칼미아를 기회가 되면 꼭 실제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님은 언제든 밤하늘에 외따로 혼자 있으니까, 시집갈때도 혼자려니 상상했다는 단지 그런 이야기


딱히 달님이 아니어도 시집갈 때는 누구든 혼자일 거라고 간지는 생각한다. 게다가 물론 죽을 때도.




시노다 하즈키의 안데르센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미운오리새끼>에서 얄궂게 묘사되는 세상의 각박함, <인어공주>에서 묘사되는 일그러진 연애, <장난감 병정>의 주인공을 덮치는 불합리한 사건들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노인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의 일상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쓸쓸했다. 



A.S.바이어트가 그 옛날 안데르센을 '심리적 테러리스트'라 일컬은 것에 대해 하즈키는 생각하고 있다. 안데르센이 쓰는 이야기에는 '병적인 공포에 의해 정신을 일그러뜨리는' 힘이 있다는 게 그 호칭의 근거인데 하즈키에겐 그것은 오히려 안데르센이라는 작가의 상궤를 벗어난 천진함에서 비롯된 것인 양 여겨진다. 실제로 자서전 속에서 본인이 '하나의 연극 안에서 인물이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나는 그 작품이 재미있게 느껴진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안데르센은 사람을 공포에 빠뜨린다거나 사람의 정신을 일그러뜨리려 했던 게 아니라 단순이 자신도 즐겁고 남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려 했던 것뿐이라고 짐작된다.  




 가족이 어색하고 동물들과 어울리는 편이 훨씬 좋다는 유우키, 두 아이(유우키와 도우코)를 두고 집을 나와 엄마다운 일을 전혀 못하고 살았던 엄마 미야시타 료코, 23년 결혼생활 후 남자가 생겼다며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이혼을 선언하는 케이의 부인 치카코, 할아버지 시노다 간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한 덴마크에서 유학중인 손녀딸 시노다 하즈키, 다섯살인데 중년여성스러운 언동으로 딱 부러지게 말을 하는 도우코의 이웃 하루히짱,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을 좋아한다는 도우코. 그들은 모두 내게 기묘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고, 가족의 파장 읽기 힘들다는 료코와 유우키를 비롯해서 유족과 지인들의 말들에서 외로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관계성에 크게 좌우된다고는 해도 어느 특정 상대와의 파장이라는 것이 있고 로코에게는 그것을 잘못 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가족이나 친구가 되면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여서 우선 공포가 앞서고 곧이어 망설임이 찾아온다. 생각다 못해 지쳐버리고 결국 연락하지 않기로 되는 거였다. 




지금 다다미방에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라면 주량도 취미도 가족 구성도, 어디 그뿐인가 개개인의 연애편력까지도 아는데 남동생 일이 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새소리에 위로받고 있는 자신을 도우코는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나는 약해졌다고. 그리고 그것은 아무래도 자신이 외톨이라는 사실을 싫든 좋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옆집 아이와 연인. 그 외에 걱정할 상대조차 없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우리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기. 선택할 수 있는 건 '언제'냐는 것일 뿐, 그건 만인에게 공평하게 오는 거니까


치사코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하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 싶은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말쑥하고, 품위와 지성과 좋은 성품이 베어나오는 1950년대 말 미술관련 서적을 다루는 작은 출판사에서 만난 세사람. 쭉 사이좋은 친구지간이었던 세 노인이 도쿄역근처 호텔에서 함께 엽총자살을 하고 그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내용과 남겨진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이 소설은 세 노인의 죽음을 통해 산다는건 뭘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 읽는 내내 외로움, 공허함, 상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고, 달고 진하고 어쩐지 쓸쓸한 스산하고 허한 마음이 느껴지게 하는 소설이었다. 마치 인생의 맛이 느껴지는 기묘한 책이랄까?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아직도 세 노인의 죽음의 연유를 모른다. 다만 생각하게 된건 카르페디엠(현실에 충실)하되 메멘토 모리(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를 알면 삶이 더없이 소중해 진다는 것이다. 미도리가 고민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즐기고 내 삶을 아끼자 다짐해본다. 



최근의 미도리에게는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충실한 인생이랄까 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그게 큰 수수께끼이자 관심사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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