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고백
최승현 지음, 서민정 그림 / 비온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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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건네지 못하는 독백들이 가득했던 단편 소설집 《부재중 고백》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가님이신 최승현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부재중 고백》을 만났다. 단순히 전화의 부재중이라고 생각하던 내게,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상태에서 건넬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읽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다섯 편의 단편들은 소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본다면 현실에서 없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단편들이었고, 담담하게 쓴 글이어서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이었다.

모든 것은 공정함과 투명함을 위해서라고 했다. p.32 <완벽한 심사>중에서

<완벽한 심사>를 하겠노라 장담하는 듯 보이는 면접관 X, Y, Z는 지원자들에게 하는 질문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조차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Z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정함과 투명함을 내세우고자 그녀를 면접장에 앉혀둔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완벽함을 내세우고 있다. 공정한 선택이 아닌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눈치를 보면서 선정하는 그 방식, 어쩌면 어딘가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양보호사로 간 곳에서 만난 그녀는 여타 노인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고귀함과 천박함, 선함과 악함의 오묘한 혼재 속에, 체면을 차릴 줄 아는 그녀. 자신의 어머니처럼 96세에 죽을 거라고 이야기하던 그녀. 그녀가 미용실에 간 사이 정신을 잃게 된 나는 그녀가 자신감 넘치며 주장하던 것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당신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노라 이야기하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음을. 그 이유를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자신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듣게 된 이야기였다. 구급차에 실려간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이야기한 진실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었을까?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부재중 고백>은 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마음 아팠다.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친구 수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를 하려고 들른 곳에서는 단정한 차림으로 문상객들을 마주하는 수연의 엄마가 계셨다. 그녀의 모습에 남다른 정신력을 지녔기에 큰 사업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나에게 죽은 친구 유수연에게 '부재중 고백'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수신된다. 그 메일을 읽으면서 자신이 몰랐던 수연의 가정사를 마주하게 되고 나서야, 수연의 엄마를 보고 느낀 그 느낌은 변하지 않았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있다. 내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일도 당연히 여기 있을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내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내일이 내게 또 당연히 올 거라 말을 건넨다. 차마 받아 줄 수 없는 나는 고개를 돌려 욕실 밖으로 나오고야 만다. p.93 <어느 미래> 중에서

갑자기 찾아온 두통과 온몸의 통증으로 머지않아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죽음을 마주할 준비를 한다 오래전 받은 편지들, 공인인증서 번호, 도장 등을 챙긴 후 자신의 부탁과 고마움을 담은 쪽지도 함께 놔둔다. 병원으로 간 그녀는 예상치 못한 병명을 듣게 되고 언젠가 찾아올 <어느 미래>를 준비했다는 만족감이 아닌 부끄러움으로 딸을 마주해야만 했다.

자존감이 희미해지지 않고 선명해지는 그 순간이 자신을 따르던 동생들에게 <형님>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들의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을 때라고 느끼던 영진은 우연히 만난 자신의 전 애인으로부터 자신의 지금 상황을 뒤흔들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영진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형님으로 군림하며 지낼까, 아니면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앞에서는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뒤에서는 그에게 욕을 날리는 동생들의 모습을 영진은 알기나 할까.

부재중이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어두운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던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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